전국 미분양 10만 호 코앞, 건설사 줄도산 우려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2023. 4. 2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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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인사이드] 사명 바꾸고 新사업 사활 거는 건설사들

● 미분양 증가·PF 난항→활로 모색
● 친환경·에너지·디지털 사업 다각화
● 지방 건설사 17%가 한계기업, 신사업 여력無
● “대형 건설사 사업 독식, 양극화 심화될 듯”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가구는 약 7만5000가구다. 1년 사이 3배가량 증가했다. 부동산 시장 침체에 건설사들은 신사업을 활로로 택하고 있다. 사진은 2월 1일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3월 포스코건설이 포스코이앤씨(E&C)로 사명을 바꿨다. 이앤씨(E&C)는 친환경을 의미하는 에코(Eco)와 도전을 의미하는 챌린지(Challenge)의 약자다. 기존 건설업을 뛰어넘어 친환경 미래 사회 건설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는 게 사측의 설명이다.

국내 건설사가 사명을 바꾼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DL이앤씨(DL E&C)와 SK에코플랜트 역시 2021년에 각각 간판을 바꿔 단 바 있다. 대림그룹의 경우 지주회사 체제 전환과 함께 그룹명을 DL로 변경했고, 대림산업 건설사업부 이름을 DL이앤씨로 바꿨다. 이후 SK건설도 친환경 사업에 힘을 주겠다며 SK에코플랜트로 이름을 바꿨다.

건설사들이 회사 이름에서 '건설'을 떼는 것은 기존 건설업체 이미지에서 탈피해 다양한 사업 영역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로 풀이된다. 국내 주택 사업 위주 포트폴리오로는 지속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택 사업만으론 생존 어려워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고 신사업을 확장해 지속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주력 사업 영역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지난 수년간은 그럴 이유도 크지 않았다. 국내 부동산 시장 활황이 지속되면서 건설사들은 그야말로 전성기를 구가했고, 신사업이나 해외 사업의 경우 국내 주택 사업과는 달리 안정적이지 않아 다소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그간 건설사들은 국내 주택 사업에서 돈을 벌어서 그 외 사업 영역에 돈을 붓는 식으로 경영을 해왔다고 해도 무방하다"며 "주택 사업에 소홀히 할 경우 자칫 경쟁에서 밀릴 수 있었기 때문에 너도나도 집중하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이젠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신사업에 도전하고 해외사업을 확대하겠다는 외침이 단순히 구호에 그치는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 됐다.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침체하며 미분양이 급증하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 자금줄이 막히면서 더는 주택 사업으로만 생존하기가 어려워진 탓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월 말 기준 국내 미분양 주택은 약 7만5000가구다. 1년 전 약 2만5000가구에서 3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업계 안팎에서는 국내 미분양 주택이 조만간 10만 가구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주택 사업 리스크는 이미 지난해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주택 사업 비중이 높은 GS건설과 DL이앤씨의 경우 지난해 높은 원가율을 반영하면서 영업이익이 줄었다. 원자재 값과 인건비 인상 등으로 수익성이 떨어졌다. GS건설의 경우 연간 영업이익 5550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보다 14.1% 줄었다. DL이앤씨 역시 지난해 별도 기준 영업이익이 약 4030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약 6800억 원) 보다 40%가량 감소했다.

3월 20일 신사명 선포식에서 한성희 포스코이앤씨 사장이 깃발을 흔들고 있다. 이날 포스코건설은 포스코이앤씨로 사명을 변경했다. [포스코이앤씨]
포스코건설의 사명 변경은 이런 흐름 속에서 이뤄진 결정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당분간 주택 시장 침체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그동안 건설사들은 주택 외 사업에 힘을 들여야만 한다.

송유림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건설사들의 경영 전략과 관련해 "올해부터는 분양 물량의 감소가 가시화됨에 따라 이에 대한 방어와 동시에 해외와 신사업 수주에 열을 올릴 때"라며 "그래야만 향후 1~2년간 이어질 주택의 실적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친환경·에너지… 너도나도 新사업 박차

포스코건설뿐 아니라 다른 건설사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지고 있다. 너도나도 주택 외 신사업에 발을 들이려는 분위기다. 우선 현대건설의 경우 3월 23일 주주총회에서 신사업을 추진하겠다며 '재생에너지전기공급 사업 및 소규모전력중개사업'을 정관에 새로 넣어 눈길을 끌었다. 계룡건설은 '데이터센터 관련 사업'과 '벤처사업 발굴' 등을 사업 목적에 새로 추가했고, 한신공영 역시 사업다각화 등을 위해 주총에서 '통신 및 방송장비 제조업', '전자상거래업' 등을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신설했다.

지난해 11월 기존 한화건설에서 지주사로 흡수 합병된 한화 건설부문은 종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그린 인프라 디벨로퍼'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단순 시공을 넘어 수처리(식수 공급, 수질 개선 등) 사업의 제안부터 시공, 운영까지 개발을 주도하는 신규 사업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SK에코플랜트 자회사 ‘환경시설관리’가 운영하는 경북 경산시 공공하수처리시설(왼쪽)과 2018년 GS이니마가 준공한 스페인 라가레스 수처리 시설 전경. [SK에코플랜트, GS건설]
이미 신사업에 공을 들이던 건설사들은 속도를 더 내려는 분위기다. SK에코플랜트의 경우 사명을 바꾼 뒤에는 아예 비즈니스 모델을 환경·에너지 기업으로 전환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폐배터리 재활용이나 음식물폐기물에서 나오는 가스를 연료로 전환해 공급하는 바이오에너지 사업, 또 디지털 기반 폐기물 솔루션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SK에코플랜트는 환경·에너지 사업 등 신사업 매출 비중이 2021년 14%에서 지난해 27%로 확대되는 등 성과를 거두고 있다.

삼성물산은 2020년 국내 비금융사로는 최초로 탈석탄을 선언하고 친환경·에너지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GS건설은 수처리 업체인 자회사 GS이니마를 앞세워 해외 각국의 해수 담수화, 바이오 폐수 처리 시장에 진출했다. 지난해에는 신사업 부문 매출이 처음으로 1조 원을 넘겨 주목받았다. DL이앤씨도 친환경 탈탄소 사업 확대를 위해 전문회사 카본코를 설립해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사업은 말 그대로 새로운 사업 영역이기 때문에 당장 기업의 실적을 끌어올릴 만큼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건설사들은 올해 수주 목표를 보수적으로 잡았다. 특히 국내 주택 사업 수주 목표를 크게 줄였다. 그간 주력해온 주택 사업을 줄이려다 보니 전체 목표도 낮춰 잡을 수밖에 없었다.

올해 경영 목표를 공개한 주요 상장 건설사들을 살펴보자. 지난해 현대건설은 별도 기준으로 국내에서 16조9000억 원가량의 신규수주를 기록했다. 올해엔 10조8000억 원이 목표다. 지난해 역대 최대치 신규 수주 실적을 기록하며 주목받았지만 이 흐름을 올해도 이어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삼성물산도 올해 국내 신규 수주 목표(7조9000억 원)를 전년(11조5000억 원)보다 크게 낮춰 잡았다. GS건설 역시 국내 신규 수주 목표를 9조5000억 원가량으로 제시했다. 지난해엔 국내에서만 13조7000억 원의 신규 수주 성과를 거뒀었다. 주요 상장 건설사 중 유일하게 전체 수주 목표를 올린 DL이앤씨 역시 국내 주택 부문 신규 수주 목표(6조 원)만큼은 전년(6조3000억 원)보다 낮은 수준을 내걸었다.

"신사업 못하는 중소건설사 줄도산할 수도"

3월 30일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1~2월 주택 인허가 실적은 전국 5만4375가구다. 지난해 같은 기간 7만128가구보다 22.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0년 평균(7만445가구)과 비교해도 20% 넘게 줄어든 규모다.

건설업계의 특성을 고려하면 신규 수주를 줄인다고 해서 당장 매출액이 크게 줄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사업을 수주하면 이후 수년간 사업을 진행하면서 단계마다 매출액이 나오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까지 넉넉하게 수주해놓은 영향으로 매출액이 1~2년 안에 눈에 띄게 악화하지는 않을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주택 시장 침체로 신규 수주가 지속적으로 줄고, 신사업 확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먹거리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수년 뒤부터는 줄줄이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신사업 영역에서 언제 자리 잡느냐가 향후 건설사들의 경쟁력을 좌우할 거라는 전망이 많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주택 사업 외에 포트폴리오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지속해 나왔지만 여전히 이렇다 할 성과를 내고 있는 건설사는 눈에 띄지 않는다"며 "지난 주택 호황기 때부터 사업 영역을 확장하려 노력해온 건설사들이 앞으로 두각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중소형 건설사의 경우 주택 사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신사업이나 해외 진출을 할 여력이 크지 않아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고 해도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도 어렵다. 업계에선 대형사와 중소형사의 양극화가 심화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중소 건설사들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지방 중소 건설회사 가운데 17%가량이 연간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이다. 3월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외부 회계감사대상 건설사 1613곳(대기업 307개, 중소기업 1306개)의 재무 위험을 살핀 결과 지방 중소 건설사의 취약성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지방 중소 건설사 중 한계기업 비율이 2021년 12.3%에서 지난해 16.7%로 올랐다. 이는 서울·수도권 중소 건설사(13.4%), 대형 건설사(9.4%)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조만간 건설사들의 줄도산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최근 흐름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하곤 한다. 부동산 시장의 경우 주식 시장 등에 비해 움직임이 다소 느리다는 점에서 당시처럼 경고음이 커지기 시작한 2~3년 뒤부터 뇌관이 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10여 년 전 터진 건설사들의 줄도산과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도 단순히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인해 터진 게 아니다. 이미 2000년대 후반 이후 미분양 주택이 늘어나며 우려의 목소리가 큰 상태였다. 이후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가 결정타로 작용하며 건설사들이 줄줄이 도산하기 시작했고, 이는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지금은 금리도 높고 원자잿값도 높아진 영향으로 주택 사업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이라며 "결국 환경이나 에너지, 신사업 등에서 이를 메꿔야 하는데 중소 건설사들의 경우 이제 와서 사업을 확대할 여유가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주택 호황기에는 대부분 건설사가 아파트를 지으면 수요가 몰려들며 분양에 성공했지만, 앞으로는 양극화가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신사업뿐만 아니라 주택 사업에서도 브랜드 아파트를 보유한 대형사들이 수익성이 괜찮은 사업을 독식할 개연성이 크다는 점에서 중소건설사들의 고민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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