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개념 OUT!” YG·JYP·하이브가 음반 판매사를 손절한 이유

윤혜진 프리랜서 기자 2023. 4. 2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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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판매 전통 강자 ‘신나라레코드’가 한 사이비종교 재단과 관련이 깊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해당 판매사를 ‘손절’하는 아이돌 기획사가 하나둘 늘고 있다. 이제 아이돌은 비주얼과 실력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3월 3일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의 파장이 연예계에도 닿았다. 대형 음반 판매사 '신나라레코드’의 현 회장이 종교 집단 '아가동산’ 교주 김기순으로 알려지며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 해당 판매사 불매운동이 시작된 것. 김기순은 살인, 성 착취, 사체 유기 등의 범죄 의혹을 받았다.

아이돌 기획사도 즉각 보이콧에 나섰다. 걸 그룹 아이브는 3월 20일 팬카페에 공개한 음반 예약 판매 공지에서 판매처 중 신나라레코드를 제외했다. 아이돌 그룹 케플러와 에이핑크, 르세라핌, 세븐틴, NCT 도재정, 가수 지수(블랙핑크)와 이채연도 공지에 신나라레코드를 기재하지 않았다.

특히 신나라레코드에서 열리던 이벤트가 눈에 띄게 줄었다. 유통 계약상 음반 판매는 이어가지만 지원을 줄여 판매 장려책을 주지는 않겠다는 기획사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다수의 아이돌 팬은 포토 카드와 팬 사인회 응모권을 받고자 여러 장의 음반을 구매한다. 해당 판매사에서 열리는 이벤트가 없다면 팬들도 이를 이용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대형 판매사를 잃는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불매운동에 힘을 싣는 기획사의 결단에 팬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인성이 아이돌 셀링 포인트?

갈등이 생긴 ‘보이즈플레닛’의 한 장면.
신나라레코드에 대한 불매운동이 처음은 아니다. 아가동산 사건이 처음 세상에 드러난 1996년에도 아이돌 팬덤 사이에선 불매 움직임이 일었다. 소식 빠른 엔터사가 당시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지만 당시엔 별다른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그땐 눈감았지만 지금은 손절한 이유는 무엇일까.

컴백을 앞둔 아이돌마다 해당 판매사와 관계를 지속했다가 괜한 불똥을 맞을까 우려했다는 후문이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로 사회 소식에 관심이 많고, 미닝아웃(소비를 통해 신념이나 가치를 드러냄) 성향을 지닌 젠지(GenZ) 팬덤의 영향이 크다. K-팝의 영향력이 확대되며 아이돌에 대한 도덕적 잣대가 엄격해진 이유도 한몫한다. 요즘 팬덤은 과거와 달리 스타에게 맹목적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 잘못은 지적하고 모범적인 행동은 칭찬한다. 비주얼, 실력과 함께 인성도 아이돌 영업 포인트로 자리 잡은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인 Mnet '보이즈플래닛’에서도 '인성’의 영향력이 드러났다. A 연습생은 방송 내내 무성의한 태도로 등장했고 성실한 B 연습생을 뒷담화했다. A 연습생이 팀 성적에서 1위를 획득하자 전 세계 K-팝 팬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탈락 위기였던 B 연습생은 투표 마감을 앞둔 9시간 동안 무려 13만3000여 표를 받으면서 다음 단계로 진출할 수 있었다.

‘인성 갑’ 칭호가 스타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엄격한 도덕적 잣대는 공평하게 팬덤으로도 향한다. 팬덤이 곧 '아이돌의 얼굴’로 여겨지기 때문. 과거 존재했던 아이돌 팬덤을 향한 부정적 인식을 벗고자 자체적으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성숙한 응원 문화를 추구하기 위해 비공개 스케줄은 따라가지 않고 타 팬덤을 비방하지 않는 식이다. 얼마 전 아이돌 그룹 NCT 멤버 도영은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1억 원을 기부했다. 이에 팬들은 환경보호 프로젝트 '모여봐요 도영의 숲’으로 기부에 화답했다. 팬도 최애를 따라 선행을 베푸는 것이다. 이 외에도 아이돌 생일에 맞춰 팬덤 이름으로 기부하는 축하 방식도 점점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배신감으로 돌변하는 호감

이러한 선한 영향력을 활용하는 윈윈(win-win) 마케팅도 눈에 띈다. 신한카드에서 JYP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별로 출시한 'JYP 체크카드’는 일종의 기부 카드다. 체크카드 사용 금액 중 일정 비율이 아티스트와 팬덤의 이름으로 난치병 아동을 돕는 '메이크어위시 코리아’에 기부된다.

아이돌(idol)의 사전적 의미는 우상이다. 지켜보는 눈도, 듣는 귀도 많은 요즘 세상에서 동경의 대상이 되기란 쉽지 않다. 겉치레에 불과한 생색내기용 선행은 먹히지 않는다. 특히 '개념돌(사회 문제에 인식을 가진 아이돌)’로 사랑받을수록 더 신경 써야 한다. 대중에게 인성으로 호감을 산 아이돌의 경우, 같은 '병크(‘병맛’과 '크리티컬’의 합성어로 치명타를 의미)’를 터뜨려도 그렇지 않은 아이돌보다 큰 배신감이 느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

올해 3월 병역면탈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보이 그룹 빅스 출신 라비가 그 예다. 라비는 과거 방송에서 천안함 추모 모자를 쓰거나 군 입대를 이유로 고정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 행동을 보여 개념돌로 떠오른 바 있다. '아이돌 고인물’ 사이에서 실력 영업은 해도 인성 영업은 하지 않는 게 불문율로 통하는 이유겠다.

본업에 충실한 사례로 올해 데뷔 11년째를 맞이한 방탄소년단(BTS) 지민이 있다. 4월 3일 미국 빌보드 최신 차트에 따르면, 3월 24일 발매된 지민의 솔로 앨범 'FACE’의 타이틀곡 'Like Crazy’는 메인 싱글차트 '핫 100’ 1위를 차지했다. 국내 솔로 가수로는 최초다. 1위 소식을 접한 직후 그가 한 행동이 더 대단하다. 지민은 4일 새벽 팬 소통 플랫폼 '위버스 라이브’를 통해 "새벽 시간에 라이브를 해서 죄송하지만 말로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켰다"며 "더 노력하고, 더 잘하겠다. 여러분의 가수인 게 더 자랑스러울 수 있게 돼보겠다"고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이돌’이란 이름값을 해내겠다는 그 마음, 그것이 결국 팬들이 1순위로 꼽는 아이돌의 미덕이다.

#개념돌 #아이브 #신나라레코드 #여성동아

윤혜진은 
아이돌 조상 H.O.T.부터 블락비, 에이티즈까지 마라맛에 중독된 K-팝 소나무다. 문화교양종합지와 패션 엔터테인먼트 매거진 기자를 거치며 덕업일치를 이루고, 지금은 '내돈내산’ 덕질 하는 엄마로 살고 있다.

사진 뉴시스 
사진제공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웨이크원·스윙엔터테인먼트 
사진출처 유튜브‘보이즈플래닛’캡처

윤혜진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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