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으로 숨 가다듬으니 차분해지더라…기분 아닌 과학이었다
대뇌 운동피질 검증 과정서 확인
운동신경 영역 사이 세곳에 분포
명상호흡 진정효과 등 근거 확보
대뇌를 감싸고 있는 피질에는 감각과 동작을 관장하는 감각피질과 운동피질이 있다. 이 피질에는 몸의 각 부위 감각과 움직임을 조절하는 뇌신경 부위가 각각 정해져 있다. 예컨대 운동피질의 경우 발목 옆에 발가락, 엄지 옆에 목을 관장하는 신경 영역이 있다.
각각의 신체 부위에 뇌 신경이 일대일로 대응해 있는 모습이 인간의 몸을 축소한 것과 같다고 해서 이를 ‘호문쿨루스’(작은 사람이란 뜻의 라틴어)라고 부른다. 뇌에서 차지하는 영역이 클수록 해당 신체 부위에 대한 통제력이 크다. 손가락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피질 영역은 허벅지를 관장하는 영역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를 반영해 호문쿨루스 인형을 제작하면 매우 기형적인 모습이 된다. 오늘날 신경과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으로 익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호문쿨루스다.
그런데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진이 대뇌의 1차운동피질(primary motor cortex)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 장비로 촬영해 분석한 결과 운동 피질(운동 호문쿨루스)의 또다른 기능이 발견됐다.
연구진은 운동피질에서 단순히 몸의 각 부위 움직임을 관장하는 것을 넘어 혈압, 심장박동 등 인체의 생리 기능에도 관여하는 영역을 발견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는 대뇌의 운동피질에 몸과 마음을 연결해주는 영역이 있다는 걸 뜻한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은 불안한 마음이 들면 왜 안절부절 못하고 주변을 왔다리갔다리하는지, 소화기관이나 심박수 등을 담당하는 미주신경을 자극하면 왜 우울증이 완화되는지, 그리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왜 삶에 더 긍정적인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논문 제1저자인 에반 고든 교수는 “명상을 하는 사람들은 호흡을 통해 몸을 진정시키면 마음도 차분해진다고 말한다”며 “하지만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많지 않았는데 이번에 그 연결점을 찾았다”고 말했다. 예컨대 ‘까짓거 해보자’라는 식으로 매우 목표 지향적이고 적극적인 마음 영역이 호흡과 심박수를 조절하는 뇌 영역과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이 네트워크의 한 쪽을 건드리면 다른 쪽에도 그에 상응하는 효과(피드백)가 나타나게 된다.
1930년대에 발견한 ‘뇌 속의 작은 인간’
연구진이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한 해묵은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번 연구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연구진의 애초 목적은 현대 첨단 뇌 영상 기술을 이용해 운동을 조절하는 뇌 영역 지도, 즉 운동 호문쿨루스를 검증하는 것이었다. 21세기 들어 신경과학계에서는 운동을 담당하는 호문쿨루스가 알려진 것과 일치하지 않는 것도 있으며 구성도 더 복잡하다는 연구가 간간이 발표됐다.
호문쿨루스의 원조는 1930년대 미국 출신의 캐나다 신경외과의사 와일더 펜필드가 뇌 수술을 받는 사람들의 뇌에 미약한 전기 충격을 가한 뒤 반응을 기록한 것이었다. 그는 뇌의 양쪽 반구에 있는 좁고 긴 띠 모양 조직을 자극하면 신체의 특정 부위가 경련을 일으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뇌의 제어 영역은 공교롭게도 신체 부위와 같은 순서로 배열돼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띠의 한쪽 끝은 발가락, 다른 쪽끝은 얼굴의 움직임과 정확히 일치했다.
워싱턴의대 연구진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펜필드의 연구를 검증해 보기로 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는 이를 관장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하면서 그쪽으로 혈액이 쏠리게 된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은 이같은 뇌의 혈류 변화를 측정하는 기기다.
연구진은 건강한 성인 7명을 모집한 뒤, 이들에게 누워서 쉬거나 25가지의 다양한 동작을 하도록 하고 몇시간에 걸쳐 이들의 뇌를 촬영했다. 그런 다음 이 영상을 3개의 대규모 데이터세트(휴먼게놈프로젝트, 청소년뇌인지개발연구, 영국바이오뱅크)에 수록돼 있는 5만명의 뇌 영상과 비교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우선 펜필드의 뇌 신경 지도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드러났다. 다리, 손, 얼굴 세가지 핵심 부위를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영역은 펜필드가 발견한 곳과 같았다. 그러나 각 영역 내에서 세부적인 신체 관장 부위의 배열은 달랐다. 각 영역의 중심에는 해당 신체 부위의 가장 바깥쪽을 제어하는 뇌 신경이 있었다. 예컨대 다리를 관장하는 운동피질 영역의 중앙은 발가락에 해당한다. 여기서부터 양쪽 끝으로 종아리, 무릎, 엉덩이를 관장하는 신경 부위가 차례로 이어진다. 요약하면 다리 신경 영역은 ‘엉덩이-무릎-발목-발가락-발목-무릎-엉덩이’식의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작 중’엔 잠자코 있다 ‘생각 중’에 활성화
연구진이 발견한 더 놀라운 사실은 특정 신체 부위와 연결돼 있지 않은 또 다른 영역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것들 역시 3개로 나뉘어 있었다. 운동을 관장하는 세 영역 사이에 위치해 있는 이것들은 운동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연구진이 ‘인터이펙터 영역’(intereffector regions)으로 명명한 이 영역은 특히 생각, 계획, 각성, 통증, 혈압, 심박수 등을 조절하는 다른 뇌 신경 영역과 강하게 연결돼 있었다.
연구진은 인터이펙터 영역은 행동의 목표와 신체의 움직임을 결합해주고, 이들 사이의 공간(운동 호문쿨루스)은 각 신체 부위가 정확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진은 실제로 후속 뇌 영상 촬영을 통해, 인터이펙터 영역은 몸이 움직이는 중에는 활성화하지 않다가 실험 참가자가 몸을 움직이는 것에 관해 생각하자 활성화하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새로 발견한 이 네트워크를 ‘스캔’(SCAN=Somato (body)-Cognitive (mind) Action Network), 즉 인체-인지 동작 네트워크로 명명했다.
1살 때 나타나 9살 무렵 거의 완성
연구진은 이어 이 네트워크가 어떻게 발달하고 진화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신생아, 1살, 9살 어린이의 뇌를 촬영했다. 또 과거에 수집해 놓은 9마리의 원숭이 뇌 데이터와도 비교했다.
그 결과 신생아에서는 이 네트워크가 형성되지 않았으나 1살 아이 뇌에서는 뚜렷이 나타나고, 9살 아이 뇌에서는 어른과 거의 같은 형태로 성숙해진 것을 확인했다. 반면 원숭이의 뇌는 사람과 같은 광범위한 연결망이 아닌 더 작고 더 초보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고든 박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 네트워크는 처음엔 운동과 생리를 통합하는 단순한 시스템으로 시작해, 훨씬 더 복잡한 사고와 계획을 수행하는 유기체로 진화하면서 매우 복잡한 인지 요소를 연결하도록 업그레이드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인터이펙터 영역의 구체적인 작동 기제, 즉 어떤 유형의 통증에 작동하는지 등에 대해 살펴볼 계획이다.
이번 발견은 뇌졸중이나 부상으로 인한 일차 운동 피질 장애에 대한 치료법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예컨대 현재 운동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재활에 사용되는 신경자극의 대상이 되는 뇌 영역은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한 인터이펙터 영역을 이용하면 더 나은 재활 방법을 개발할 수 있다.
필라델피아 모스재활연구소의 신경재활 전문가 딜런 에드워즈는 <네이처>에 “이번 발견은 환자별로 맞춤형 재활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mens sana in corpore sano).”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의 한 풍자시에서 비롯됐다는 이 말은 몸과 마음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경구로 통한다. 고대 시인의 통찰이 2천년의 세월이 흘러 마침내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게 됐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38/s41586-023-05964-2
A somato-cognitive action network alternates with effector regions in motor cortex.
Nature(2023)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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