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은마보다 비싸… '문래 남성맨션' 공사비 1년새 40% 올랐다

정영희 기자 2023. 4. 2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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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록] 시공사 선정 5번째 고배, 재건축 향방은

[편집자주][정비록]은 '도시정비사업 기록'의 줄임말입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해당 조합과 지역 주민들은 물론, 건설업계에도 중요한 이슈입니다. 도시정비계획은 신규 분양을 위한 사업 투자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장을 직접 찾아 낡은 집을 새집으로 바꿔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겠습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남성맨션 2동 전경. 1동과 마주보는 구조로 지어져 있다./사진=정영희 기자
서울 지하철 2호선 문래역에서 내려 '핫플레이스'로 알려진 문래 창작촌 골목을 지나 10여분을 걷다 보면 제법 연식이 돼 보이는 아파트가 나타난다. 영등포구 문래동2가에 위치한 남성맨션이다. 1983년 준공(입주)한 단지로 2개동에 390가구로 구성돼 있다.

1동과 2동이 서로 마주보는 구조로 외벽 칠이 대부분 벗겨져 있고 기둥 군데군데 녹이 보인다. 각 동 출입문 앞 벽돌로 만든 계단은 여러 군데 깨지고 떨어져 콘크리트로 보수한 흔적도 있다. 정문 바로 앞 작은 상가 역시 천장과 복도 곳곳이 누렇게 바랬다.

남성맨션의 재건축 항해는 2010년 6월 안전진단을 통과하며 닻을 올렸다. 15층짜리 아파트를 지하 3층~지상 28층 488가구로 재건축하는 사업이다. 공공임대와 일반분양 물량은 각각 52가구다. 2013년 정비구역 승인, 2017년 조합설립인가까지 큰 파도 없이 사업에 속도를 냈지만 2022년 6월 시공사 선정에서 제동이 걸렸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남성맨션 재건축조합은 지난 4월7일 다섯 번째 시공사 선정에 실패했다. 조합은 지난해 1월부터 시공사 찾기에 나섰지만 앞선 네 차례 입찰에서 연달아 고배를 마셨다. 시공사 선정 실패 원인이 공사비에 있다고 판단한 조합은 지난해 6월 2차 공고를 통해 3.3㎡당 공사비를 525만원에서 630만원으로 대폭 인상했다. 이후 현장설명회에 시공능력 상위권인 삼성물산, 포스코이앤씨, 동부건설 등 7개 업체가 참여했으나 결과는 무응찰이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남성맨션 2동 벽면의 모습. 외벽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었다./사진=정영희 기자
이후 조합은 지난해 11월 3차 입찰 공고에서 1차 입찰 때보다 공사비를 400억원 증액하고 올 1월 4차 입찰에선 입찰보증금을 종전 90억원에서 50억원으로 낮췄다. 이행보증금이란 시공사가 공사 실행을 담보하기 위해 도급금액의 1~20%를 보증금 일환으로 조합에 지급하는 돈이다. 시공사의 입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조합이 강수를 둔 셈이다.

3,4차 공고에는 롯데건설만 단독입찰해 두 번 모두 유찰됐다. '정비사업 시공자 선정기준'에 따르면 제한경쟁입찰에서 3개 이상의 건설업체가 참여해야 한다.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는 조합을 위해 경쟁입찰에서 2회 유찰될 경우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조합은 올 2월 말 5차 공고에서 수의계약 방식으로 다시 입찰에 나섰다.

공사비 또한 3.3㎡당 719만원으로 다시 인상했다. 지난 2월 정비계획안을 고시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추정 공사비인 3.3㎡당 700만원보다 19만원이나 높은 가격이다. 이번 입찰에는 그동안 관심을 보였던 롯데건설도 참여하지 않았다.


'프리미엄' 입지에도 망설이는 시공사… "낮은 사업성 탓"


남성맨션은 지하철 1·2호선 신도림역이 인접한 '더블 역세권'에 학군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시공사들의 반응이 미적지근한 이유로는 낮은 사업성이 지목된다. 단지 규모 자체가 작은 데다 일반분양 물량 비율이 낮아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1년 3개월 사이 공사비가 40%가량 올랐으나 건설업체 입장에선 수주를 결정할 만큼 매력적인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남성맨션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 사무실 전경./사진=정영희 기자
조합은 이달 말 이사회를 열고 6차 공고에 대한 사항을 논의한 다음 5월 초 수의계약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목표로 하는 현장설명회를 다시 개최할 예정이다.

김충곤 조합장은 연이은 유찰에 대해 "입지는 좋지만 재건축 조건이 열악하다 보니 시공사들이 섣불리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며 "공사비를 추가로 올리는 방안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롯데건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입찰 의지를 보였기에 타 업체들이 수주에 더욱 소극적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롯데건설이 발을 뺀 이상 수주 양상이 바뀔 것이란 예상이 우세한 가운데 현재 두 회사 정도가 긍정적 답변을 보였다"고 전했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입지가 우수한 단지로 오랫동안 검토했으나 최근 들어 급격히 상승한 원자재 가격으로 인한 공사비 부담이 커져 이번 입찰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조합원들은 자꾸 미뤄지는 사업 추진에 답답함을 토로한다. 현장에서 만난 조합원 A씨는 "공사비를 올려줬는데도 시공사 선정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모르겠다"며 "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니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재건축을 기다리다 최근 이사한 전 조합원 B씨는 "공사비를 또 올리면 조합원 분담금이 더 늘어날 텐데 다수가 고령층이어서 분담금 인상에 부정적일 수 있다"며 "재건축 완료까지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남성맨션 상가의 모습. 한눈에 연식이 확인될 만큼 건물 곳곳이 낡은 것이 드러난다./사진=정영희 기자


시공사 '눈치게임' 심해져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공사 입장에선 일반분양 물량이 적은 사업장의 수익성을 보다 면밀히 따져볼 수밖에 없다"며 "요즘처럼 원자잿값이 비싸고 주택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정비사업을 덜컥 시작했다간 이른바 '물리는' 일이 생길
수 있어 신중하게 수주에 나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조사 결과 2015~2019년 17.3%였던 건설공사비지수 상승률은 2020년부터 지난 2월까지 28.6%로 증가했다. 정비사업 수주 비율도 크게 낮아졌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10위권 건설업체의 올 1분기 도시정비사업 수주액은 총 4조5242억원으로 전년 동기(6조7786억원) 대비 33.3% 줄었다. 같은 기간 마수걸이 수주를 따낸 건설업체도 지난해 1분기 9개에서 올 1분기 기준 6개로 줄었다.

남성맨션은 이처럼 지지부진한 시공사 선정 과정에도 호가가 높은 편이다. 전용 72.9㎡ 매매가는 10억5000만~12억원, 전용 58.52㎡는 8억5000만~11억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재건축 기대감 때문인지 부동산 한파에도 가격은 많이 떨어지지 않은 편"이라며 "투자를 목표로 한 매수 문의는 많으나 단지가 작아 매물이 적다"고 설명했다. 전용 72.9㎡는 2020년 5월 이후 거래 내역이 없다. 전용 58.52㎡는 2021년 10월 9억3000만원(4층)에 마지막으로 계약됐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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