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유치원에 웬 곰팡이 냄새?…'부직포 필터' 감염병 부채질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면서 집단감염 위험이 큰 다중이용시설의 공기 질 관리가 더 중요해졌지만, 정작 핵심이 되는 '필터'는 제대로 된 기준조차 없어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윤석열 정부가 어린이집, 학교 등 고위험·다중이용시설의 환기 설비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지만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감염병 확산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25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방역 정책 완화와 봄철 야외 활동량 증가로 코로나19를 비롯해 독감(인플루엔자)·감기 등 호흡기 질환이 동시에 유행하는 '멀티데믹'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코로나19 주간 일평균 확진자 수가 1만2000명대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4월 둘째 주(15주차) 외래 환자 1000명당 독감 의심 환자는 18.5명으로 한 달 전(3월 12~18일, 11.7명)보다 58.1%나 증가했다. 파라인플루엔자, 리노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바이러스성 급성 호흡기 감염증 입원 환자 역시 2201명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호흡기 감염병은 주로 코와 입 등 호흡기를 통해 전파된다. 대부분 공기가 정체된 실내에서 바이러스가 퍼지고 쌓여 감염으로 이어진다. 특히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병원, 요양시설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다중이용시설은 집단감염 위험의 큰 3밀(밀폐, 밀접, 밀집) 환경이라 더욱 철저한 방역이 요구된다.
그러나 현재 다중이용시설의 공기정화장치로는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병 확산을 완전히 막기가 어렵다. 가장 많이 쓰이는 '헤파필터'는 바이러스나 세균을 거를 수는 있어도 죽이지는 못한다. 오래된 필터에서 냄새가 나는 것도 필터에 붙은 곰팡이·세균이 먼지 등을 먹어 증식하기 때문이다. 한 필터 제작업체 관계자는 "가정용 공기청정기, 에어컨에 사용되는 필터 중에는 구리를 사용한 항균·항바이러스 필터가 개발돼 있지만 고위험·다중이용시설의 대형공조시설은 기준도, 규제도 없어 대부분 중국산 부직포 원단으로 필터를 만든다"고 털어놨다.
김영봉 대한바이러스학회 회장은 "헤파필터에 포집된 바이러스는 최장 한 달까지도 생존할 수 있다"며 "바이러스가 헤파필터에 걸리지 않고 통과하거나, 포집됐다가 이탈하기도 해 헤파필터의 성능과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4월 발표한 '코로나19 비상 대응 100일 로드맵'에서 고위험 다중이용시설의 필요 환기량, 설비 등의 기준을 마련한다고 발표했다. 특히 공기정화장치의 항바이러스 기능이 감염 예방에 중요하다고 판단, 어린이집·유치원·학교를 중심으로 '항바이러스 필터' 보급을 추진한다고 했다. 그러나 식약처·산업부·환경부·질병청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만들겠다는 항바이러스 필터의 성능인증 '기준'은 1년이 되도록 수립되지 않고 있다. 이미 개발된 항바이러스 필터조차 여전히 공산품으로 분류돼 시장의 외면을 받는 실정이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코로나19 엔데믹을 맞아 실내 공기 질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벨기에는 오는 7월 술집을 시작으로 2025년부터는 식당이나 체육관 등 다중이용시설은 의무적으로 정부가 마련한 실내 공기 질 등급을 달성하고 이산화탄소 농도를 실시간으로 표시해야 한다. 코로나19처럼 또 다른 팬데믹이 발생하면 공기질 등급에 따라 해당 시설의 폐쇄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미국도 지난해 3월부터 건물 소유주와 운영자가 환기 등 실내 공기 질을 개선하도록 촉구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미국냉난방공조기술자협회(ASHRAE)는 6월까지 감염 위험을 고려한 건축 표준을 개발할 예정이다. 김영봉 회장은 "호흡기 감염병을 예방ㆍ관리하기 위해선 실내 공기 질 관리가 필수"라며 "국민 건강을 위해 과학에 기반한 항바이러스 필터의 기준을 제시하고, 이에 맞춰 보급·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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