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급한’ 동쪽 - ‘실용 우선’ 서쪽… 두 쪽 나는 유럽[Global Window]
- 방위비 늘리는 러 인접 동유럽
폴란드·발트해 3국·그리스 등
나토 방위비 GDP 2% 지침 실현
전체 30개 회원국 중 7개국 불과
독·프랑스 등 유럽 맹주들은 소극적
- 단일대오 리더십 실종 서유럽
숄츠, 우크라·국제사회 압박에
1년만에야 레오파드2 지원 결정
마크롱, 대만 언급하며 친중 행보
미국·유럽 ‘대중 정책’에 어깃장
유럽이 흔들리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반(反)러연대 단일대오를 형성하는 듯했지만, 전쟁 만 1년을 넘긴 시점에서 벌써부터 대열이 반으로 쪼개지는 모양새다. 당장 방위비에서 구멍이 뚫렸다. 지난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내건 방위비 목표치를 달성한 국가는 당시 30개 회원국 중 7개국에 불과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서방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상황에서도, 유럽국들이 당장의 방위비 투자를 망설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심상치 않은 건 서유럽의 움직임이다. 유럽의 ‘큰형님’ 역할을 해왔던 독일은 군비 증강을 주저하다 국제사회의 압박에 지난 3월에서야 우크라이나에 전차를 보냈다.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후 미국은 물론 유럽 다른 국가들과도 엇박자를 내면서 친(親)중국 비판까지 듣는 형국이다. 폴란드 등 우크라이나 이웃 동유럽 국가들이 방위비 증강에 적극 뛰어드는 것과 대조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사안마다 유럽연합(EU)의 키를 쥐었던 서유럽이 한발 물러서며, ‘실용 외교’ 간판을 내건 자국 우선주의가 팽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동·서로 갈라지는 유럽 = 나토가 지난달 공개한 2022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나토 방위비 지출 목표인 ‘국내총생산(GDP) 2%’를 실현해낸 국가는 당시 30개 회원국(현재 핀란드 가입으로 31개국) 중 7개국에 그쳤다. 약 23%만이 목표치를 달성해낸 것이다. 그마저도 미국(GDP 대비 3.46%)을 제외하면 유럽은 그리스(3.54%), 리투아니아(2.47%), 폴란드(2.42%), 영국(2.16%), 에스토니아(2.12%), 라트비아(2.07%) 등 6개국뿐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비상이 걸린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이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프랑스(1.89%)와 독일(1.49%) 등 자타가 공인하는 유럽 맹주들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이들은 올해와 내년에도 나토 방위비 지출 목표인 GDP 대비 2% 달성이 요원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속 서유럽과 동유럽의 입장 차가 드러나는 단적인 예다. 이러한 방위비 투자는 장기적인 추세에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 나토에 가입한 중·동부 유럽 10개국은 방위비를 2014∼2022년 평균 65% 이상 늘렸다. 반면에 기존 나토 가입국인 서부 유럽 국가들은 같은 기간 평균 증가율이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산 농식품을 두고는 동유럽과 서유럽이 정반대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폴란드와 헝가리, 슬로바키아 정부는 최근 한시적으로 우크라이나산 곡물·과일 등 주요 농식품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EU가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 농업계 지원을 위해 면세 혜택을 적용한 뒤 저가 우크라이나산 농식품 유입이 급증하자, 자국 농업계 피해를 막겠다며 내놓은 조치다. 불가리아도 유사한 조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우크라이나 농산물이 EU를 경유해 제3국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면세 혜택을 줬는데 물량 상당수가 동유럽에 쌓인 때문이다. 이에 EU는 우크라이나산 곡물 유입 증가로 피해를 본 회원국들을 위해 2차 지원 패키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앞서 EU 집행위원회는 폴란드·불가리아·루마니아의 피해 농가를 지원할 수 있도록 EU 예산에서 5630만 유로(약 813억 원)를 지원하는 1차 패키지 안을 확정한 바 있다.
◇독일·프랑스 리더십은 ‘흔들’= 동유럽과 서유럽의 엇갈린 행보의 중심에는 독일과 프랑스의 ‘리더십 실종’ 문제가 있다고 외신들은 평가하고 있다. 먼저 유럽 최대 경제국 독일의 소극적 대응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EU를 이끌어왔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만큼은 전투용 군사지원을 주저하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우크라이나의 줄기찬 요청에도 개전 약 1년이 지난 올 1월에서야 레오파드2 전차 지원을 결정했을 정도다. 전쟁에 대응해 군비를 증강하기로 한 나토와의 약속도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최근 독일에서는 알폰스 마이스 육군참모총장이 한 독일군 감찰관에게 보낸 보고서가 유출됐는데, 마이스 참모총장은 해당 문건에서 독일군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도 2025년까지 필요한 장비를 갖추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독일은 앞서 나토에 2025년까지 전투 준비가 완료된 기계화 사단을 배치하겠다 약속한 바 있다.
프랑스는 때아닌 친중 논란에 휩싸이며 논란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중국 국빈방문 일정 중 “EU는 대만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나 중국의 입장을 따라선 안 된다”고 발언하고, 이후 “동맹이 곧 속국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하며 사실상 나토를 주도하는 미국의 대중 정책에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18일 “지금은 우리가 공동의 의지를 드러내고, (대중국 전략) 성공이 어떤 모습인지 함께 단결력을 보여줄 때”라며 EU 내부에서 분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협력 기반 확대 노리는 러시아 = 이런 가운데 러시아는 연일 ‘자기편 끌어들이기’에 몰두하는 모양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한 데 이어 한 달 만인 지난 16일에는 리상푸(李尙福) 중국 국방부장(장관)과 깜짝 면담했다. 러·중 간 군사협력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은 17∼21일 브라질,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쿠바 등을 방문하며 남미 지역으로 세를 확장하려 시도했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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