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대해부] 승부처는 ‘수율’… 생산 고도화로 초격차 시도

권오은 기자 2023. 4. 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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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반도체 신화를 이을 산업으로 2차전지가 꼽히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중국 제외)에서 국내 2차전지 빅3 업체의 점유율은 53%로 절반을 넘었다. K배터리의 위상은 배터리셀을 넘어 소재와 장비 등 2차전지 생태계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2030년 전기차 생산이 5400만대로 폭증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2차전지를 놓고 ‘배터리 패권경쟁’을 펼치는 대한민국 배터리 산업의 현황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2차전지 제조업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제품 개발 이후 양산에 적합한 공정 개발 등 대량 생산을 위한 추가적인 기술과 인력을 함께 갖춰야 한다.”(LG에너지솔루션)

“최고의 제조 효율과 글로벌 오퍼레이션(Operation·운영) 경쟁력 제고로 사업 역량을 배가하겠다.”(삼성SDI)

“기존 생산 사이트(Site·공장)의 생산성을 제고할 뿐만 아니라, 신규 가동 예정인 사이트의 조기 램프업(Ramp-up·장비 설치 후 대량 양산까지 생산 확대)을 추진해 생산 안정화와 고도화를 이뤄내겠다.”(SK온)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2차전지 ‘빅3′ 업체는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영업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제조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같은 목표를 제시했다. 기술 경쟁만큼 생산 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차전지 빅3 업체는 전 세계 전략 지역마다 공장을 세우면서 ‘수율(생산품 중 합격품의 비율)’ 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

SK온 미국 조지아주 공장 전경. /SK온 제공

◇ 수율 핵심 ‘인력 관리’… 사식 메뉴까지 신경 써

25일 2차전지 업계에 따르면 SK온은 최근 폴란드 공장에서 근무할 현지 직원 채용을 진행하면서 지원 요건 중 하나로 ‘높은 수준의 유연성과 책임감’을 제시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의 합작회사 얼티엄셀즈도 현지 인력 채용공고에 ‘때때로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요구 사항으로 넣었다. 현지 인력이 제 역할을 하기까지 6개월은 필요한 만큼 퇴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2차전지 기업 관계자는 “인근 공장과 비교해 사식이 부실한 것도 이직의 이유가 돼, 메뉴도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2차전지 빅3가 인력 관리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수율과 맞닿아 있다. 국가 또는 지역마다 인력 수준의 차이가 커 같은 장비와 공정을 적용해도 수율이 다르게 나온다. SK온 관계자는 “해외 공장에 한국과 95% 동일한 장비를 설치해도 초기에 수율이 나오지 않는 것은 그만큼 (배터리 제조가) 사람 손을 많이 탄다는 의미”라며 “현지에서 인력을 채용해 가동·운영하는 초기 단계에는 시행착오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SK온은 올해 시작한 사내 교육 플랫폼 ‘SK온 아카데미(SKONA)’에 해외 주재원을 위한 글로벌 교육과정을 담았다. 해외 현지 인력과 본사의 가교 역할을 하는 주재원들의 지역이나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문 인력 채용 행사인 ‘BTC(Battery Tech Conference)’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 BTC에는 최고기술책임자(CTO), 최고인사책임자(CHO) 등 주요 경영진이 총출동해 우수 인재 영입에 나섰다.

LG에너지솔루션의 오창 에너지플랜트의 2차전지 생산라인 모습. /LG에너지솔루션 제공

◇ 스마트 팩토리 고도화… AI로 불량 잡기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스마트 팩토리도 2차전지 빅3가 수율 향상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분야다. 자동화를 통해 생산 능력을 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 전 과정을 표준화·효율화해 품질 관리도 뒷받침할 수 있어서다. 특히 스마트 팩토리를 도입하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공장을 통합 관리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2차전지 빅3 모두 국내에 ‘마더 팩토리’를 조성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더 팩토리에서 선제적으로 생산 기술과 고급 제품을 양산한 뒤, 검증된 결과를 해외공장에도 적용해 빠르게 수율을 안정화하려는 것이다. 2차전지 빅3는 전고체 배터리 시제품을 비롯해 구축원통형 4680 전지, 코발트프리 전지 등도 국내에서 생산한 뒤 해외에서 양산할 계획이다.

2차전지 생산이 여러 단계에 걸쳐 진행되고, 생산하는 제품에 따라 공정이 달라지는 점도 스마트 팩토리의 중요성이 커지는 배경이다. 2차전지는 크게 전극 공정 → 조립 공정 → 활성화 공정 → 팩 공정 등을 거쳐 만들어진다. 공정마다 세부 공정이 있고, 배터리 형태를 만드는 조립 공정의 경우 원통형인지, 파우치형인지, 각형인지에 따라 제조 순서가 다르다. 사람에게만 의지해 관리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각 공정의 수율이 높아도 최종 제품의 수율이 떨어질 수 있는데, 그 원인을 찾으려면 세부 공정을 모두 살펴야 한다”며 “사람이 24시간 모든 제품을 볼 수 없어 검사 장비를 계속해서 추가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차전지 양극과 음극을 용접하는 패키지 웰딩(Package welding) 공정에 AI 기술을 적용했다. 패키지 웰딩 공정 중 이물질이 들어가거나 용접에 문제가 있으면 폭발 위험성이 있어, 비전 검사(시각 이미지를 활용한 불량 검사)가 중요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AI가 비정상적인 이미지를 찾아내는 이상 탐지(Anomaly Detection)를 통해 효율을 높였다. 삼성SDI와 SK온 역시 AI를 활용해 공정 중 발생한 불량품을 자동으로 분류하거나, 비정상 활동을 자동으로 알리는 등의 기술을 스마트 팩토리에 접목했다.

그래픽=정서희

◇ 수주 1000兆 빅3, 수율 잡으면 격차 벌릴 기회

2차전지 업계는 선두 기업과 후발 주자의 기술 격차가 이미 쫓아가기 어려운 수준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영국 브리티시볼트의 파산이 대표적 사례다. 브리티시볼트는 영국 노섬벌랜드와 캐나다 퀘벡 등에 기가팩토리(연간 1GWh 이상을 생산하는 초대형 공장)를 세울 계획이었으나, 제품 개발과 양산에 실패하면서 자금 조달에 부침을 겪었고 결국 파산 절차를 밟았다.

전 세계 주요 완성차 기업이 2차전지 빅3와 적극적으로 합작 회사를 세우는 등 기술 경쟁력은 이미 검증됐다는 게 중론이다. 2차전지 빅3의 누적 수주규모는 1000조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다만 공장을 증설한 뒤 안정적인 수율을 올려 제때 납기를 마쳐야 하는 전제 조건이 달려있다.

2차전지 업계 관계자는 “생산 능력을 빠르게 키우면서 품질 관리와 수익성까지 챙기는 것이 도전적인 과제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만큼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앞으로 선두 기업이 격차를 더 벌릴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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