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외교장관 ‘국제평화’ 주제로 유엔 안보리 회의 주재…서방 반발

[러, 우크라 침공]

세르게이 라브로브 러시아 외무부 장관이 바실리 네벤지아 주유엔 러시아 대사와 대화하고 있다. 옆자리에 앉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냉담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EPA 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4월 순회의장국을 맡은 러시아가 ‘국제 평화’를 주제로 회의를 주관해 미국과 유럽 주요국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24일 <시엔엔>(CNN) 등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국제 평화와 안보의 유지: 유엔 헌장의 원칙 수호를 통한 효과적 다자주의’를 주제로 안보리 공개 회의를 주재했다. 유엔 안보리는 15개 이사국이 알파벳순으로 월마다 돌아가면서 안보리 순회의장국을 맡는데, 러시아가 이달 의장국이라는 점을 활용해 이 회의를 주재한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뤄진 지난해 2월에도 의장국으로서 안보리 회의를 주재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우크라이나 문제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수년간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해온 지정학적 발전과 분리되어 볼 수 없다”며 자신들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했다.

미국·영국·스위스 등의 유엔 대사들은 이를 비난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 대사들은 안보리 회의에 앞서 공동성명을 내어 회의를 주재하겠다고 나타난 라브로프 장관을 비판했다. 올로프 스코그 주유엔 유럽연합 대사는 이날 낭독한 공동성명에서 “러시아는 자신을 유엔 헌장과 다자주의의 수호자처럼 묘사하려 했지만, 그 어떤 것도 진실과 거리가 멀다”고 냉소했다. 이어 “모든 곳에서 러시아가 (유엔 헌장을) 모독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에서 철군하라고 촉구했다.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도 “위선적인 주재자 러시아는 이웃 국가를 침략하고 유엔 헌장의 핵심을 공격했다. 불법적이고 이유가 없으며 불필요한 전쟁은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러시아에 억류된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 에반 게르시코비치를 언급하며 “즉각 석방하고 집으로 돌려보낼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냉담한 표정으로 라브로프 장관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유엔 헌장과 국제법을 위반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가와 국민에게 막대한 고통과 황폐화를 초래하고 있으며 세계 경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이날 라브로프 장관과 만나 흑해 곡물협정 연장 문제를 논의했다. 유엔은 다음달 18일 만료일인 곡물 협정을 연장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협력이 모두를 위한 더 큰 안보와 번영을 창출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