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대처럼 ‘상저하고’ 가능할까
중국 리오프닝 낙수효과에 우려도
[주간경향] “도대체 뭔 놈의 (경제성장률) 전망을 하길래 2개월마다 한국 전망을 그렇게 낮춰서 내느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월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7%에서 1.5%로 낮춘 것을 두고 한 말이다. IMF는 지난해 7월부터 올 4월까지 4차례 연속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다. 추 부총리는 경제위기와 성장률 하락을 우려하는 야당 의원 질의에 “IMF가 그렇게 시기마다 (성장률 전망치를 낮춰) 바꾸었는데 IMF를 탓해야 하는 것 아니냐. 저도 (그런 전망을 한) IMF에 아쉬움이 있다”고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국내외 주요기관은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으나, 정부는 상반기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하반기 우리 경제가 반등할 것으로 본다. 이른바 ‘상저하고’다. 하반기에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고 중국 경제활동 재개(리오프닝) 효과를 볼 것이란 의미다. 정부 기대와 달리 국내외 경제 여건은 이를 장담하기 힘든 분위기다. 반도체 업황은 당분간 바닥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관측이 많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중국 리오프닝의 낙수효과는 눈에 띄지 않는다. 미·중 갈등 격화 속에 윤석열 정부의 중국 홀대 논란은 커지고 있고, 우리의 최대 수출국이던 중국은 올해 들어 최대 적자국으로 돌변했다. 상저하고 기대는 실현될까.
‘반도체·중국’에 발목 잡힌 성장
IMF가 지난 4월 11일 세계경제 전망에서 밝힌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1.5%)는 국내외 주요기관 전망치와 대체로 비슷하거나 낮은 수준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8%, 기재부·한국은행·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은 1.6%로 전망한 바 있다.
IMF가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가장 큰 이유는 반도체 업황 부진과 내수 둔화다.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IMF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이틀 후인 4월 13일 온·오프라인으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여러 요인을 반영해 한국의 성장률을 하향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요인은 예상보다 나쁜 세계 반도체 사이클(업황의 주기)”이라고 말했다. 메모리반도체 강국인 한국이 글로벌 반도체 경기 악화로 수출과 투자 양쪽에서 영향을 받을 것이란 뜻이다. 그는 또 “소비의 둔화와 고금리, 부동산시장 침체 등은 내수를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IMF 전망에서 주목되는 건 지난해 7월(2.9→2.1%)부터 10월(2.0%), 올해 1월(1.7%), 4월(1.5%)까지 4차례 연속 하향 조정했다는 점이다. 주요 20개국(G20) 중 4차례 연속 성장률 전망치가 내려간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가 올해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고, 이를 반등시킬 계기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한 것이다.
지난 2월 성장률 전망치를 1.7%에서 0.1%포인트 낮춘 한은(금통위)도 앞서 지난 3월 11일 기준금리를 3.50%로 동결하면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기존 전망인 1.6%를 소폭 하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는 5월 발표 예정인 수정경제전망에서 전망치를 낮출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1월 이후 1.8%를 유지하는 KDI도 하향 조정할 여지가 있다. 주요 투자은행(IB)의 판단도 이와 비슷하다. 씨티·골드만삭스·JP모건 등 8개 주요 외국계 IB들이 지난해 전망한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2.6%였으나 4월 6일 전망에서는 1.1%로 대폭 끌어내렸다.
성장률의 하방 징후는 무역수지 지표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국 무역적자는 지난해 3월부터 올 3월까지 1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 1분기 무역적자는 224억100만달러다. 지난해 연간 적자의 46.90%다.
우선 수출지표가 크게 나빠졌다. 수출은 2018년부터 본격화한 미·중 무역 전쟁 이후 자국 중심주의와 보호무역의 확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등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수출액은 24조9044억8900만달러로, 이중 한국의 수출액(6835억8500만달러)이 차지하는 비중은 2.74%다. 한국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2017년 정점(3.23%)을 찍은 후 2020년 2.90%에서 2021년 2.88%, 지난해 2.74%까지 떨어졌다. 한국무역협회(KITA)는 세계 수출 점유율이 0.1%포인트 떨어지면 일자리가 14만개 줄어들 것으로 추산한다.
품목별로는 반도체, 국가별로는 중국으로의 수출이 급감했다. 반도체는 한국의 최대 수출 주력 품목이지만 하락세가 뚜렷하다. 전체 수출 품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20.9%였으나 지난해는 18.9%로 하락했다. 올해 들어서는 1분기(1~3월)에 13.6%까지 떨어졌다. 반도체 수출에서 비중이 60%가량을 차지하는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의 가격과 수요가 급락한 탓이다. D램 고정가는 지난해 초 3.41달러에서 올해 1~3월 1.81달러로, 낸드 고정가는 지난해 1~5월 4.81달러 수준에서 올 3월 3.93달러까지 각각 떨어졌다.
리오프닝 낙수효과는 존재할까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자 무역수지 흑자 1위국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6개월 연속 적자를 보이면서, 올해 들어 한국의 최대 적자국으로 돌아섰다. 올 1분기 대중 무역적자는 78억5000만달러로 지난해 4분기(26억2000만달러)보다 크게 늘었다. 이중 반도체 수출은 1년 전과 비교해 올 1월(-46.2%)과 2월(-39.7%)에 이어 3월(-49.5%)에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런 영향으로 한국의 전체 수출액 가운데 중국 비중은 2018년 26.8%에서 2021년 25.3%, 지난해 22.8%, 올 1분기 19.5%까지 떨어지면서 2005년 이후 처음으로 20%선 밑까지 내려갔다.
정부의 상저하고 전망은 중국의 ‘리오프닝 낙수효과’를 근거로 한다. 지난해 12월 중국이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 전환에 나서자 우리 정부는 중국 실물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한국의 대중 수출도 개선하겠다고 했다. 리오프닝 이후 실제 중국은 올 1분기 4.5%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시장 전망치(3.8~4.0%)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신흥경제부장은 “중국이 1분기 시장 예상치를 상회한 수준의 성장세를 보인 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신호다. 정보기술(IT) 재고 물량이 소진되는 하반기부터 제한적으로라도 리오프닝의 효과가 나타나면 우리 대중 수출에도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의 상저하고 전망도 이를 근거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그러나 중국은 리오프닝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반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었다. 중국의 1분기 성장의 배경이 음식·숙박 등 대면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내수 회복 측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올 1분기 성장에서 제조업은 3.3% 성장한 반면 서비스업이 5.4% 성장하면서 전체 성장세를 이끌었다. 한국은행은 4월 17일 발표한 ‘중국 리오프닝의 국내 경제 파급영향 점검’ 보고서에서 “(중국 성장의 국가별 영향을 추산한 결과) 중국 성장률이 제조업 위주로 1%포인트 높아지면 한국의 성장률은 0.11%포인트 상승하고 서비스업 위주로 1%포인트 오르면 한국 성장률 개선 폭은 0.08%포인트에 그쳤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무역 구조는 세계 수요 변동에 민감한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부품, 디스플레이 등 중간재 품목의 수출 비중이 74%,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3%에 달한다. 중국의 리오프닝 이후 내수 위주의 경기 회복 탓에 한국의 반도체 등 IT 부문의 중국 수출이 여전히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는 또 중국의 자급률 상승과 중국인 관광객 수 제약, 중국 내 IT 부문의 높은 재고 수준 등이 중국 리오프닝에 따른 국내 경제의 긍정적 효과를 짓누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이 미국의 견제를 지속적으로 받는 상황에서 중간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수요를 줄이거나, 중간재에 대한 자국산 생산 확대를 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중국인 관광객 회복세도 미미하다. 현재 중국 정부는 한국에 대한 단체관광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한·중 항공 노선은 주 1100회 운항했으나 올해 2월 말 기준 62회에 불과하다. 이로 인한 여행수지 적자는 지난해 4분기 24억달러에서 올해 1분기 30억달러 이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중국 내 제조업 재고 수준도 높은 편이다. 2015~2019년 평균을 100으로 봤을 때 올해 IT 재고는 140% 수준으로 추정된다.
확신에서 우려로 기우는 상저하고 예측
관심은 정부 전망대로 하반기에 반등의 계기가 만들어질 것이냐 하는 점이다. 아직까진 (세계 1위 메모리 업체인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업체들의 최근 인위적 감산 결정으로 IT 경기가 개선될 것이란 시각이 많다. 감산 이후 완제품의 공급 감소로 이어지기까지 대략 4~6개월 걸린다는 점에서 하반기엔 재고 조정이 진행되리란 관측이다. 다만 과거와 비교해 많은 재고 물량과 주요국의 고금리 지속, 글로벌 경기 침체 등은 소비와 수요를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미국 중소형 은행발 금융 불안 확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기조, 산유국 감산 등은 하반기 국내 경제에 큰 악재가 될 수 있다. 한은은 지난 4월 12일 ‘금리 인상 이후의 미국경제 상황 평가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등으로 인한 금융 불안과 연준의 정책기조에 따라 올해 미국의 성장률이 0.2~0.5%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성장률 하락은 글로벌과 국내 성장에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며 “우리 성장과 물가, 외환과 금융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잘 점검해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2분기 중반부터 기대에는 못 미치겠지만 중국 리오프닝 낙수효과 기대감이 강화될 여지는 남아 있다”면서도 “문제는 수출 경기 특히 미국 등에 대한 수출 경기의 회복이 불투명하다는 점인데, 아무래도 미국 경기 둔화와 미·중 갈등에 따른 중국 수출 회복 여부가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물가·고금리 여파와 부동산시장 침체 등으로 하반기 내수 둔화가 지속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지출이 필요하지만, 세수가 줄어들면서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올해 1~2월 국세 수입은 양도소득세와 증권거래세, 부가가치세 등이 감소하면서 1년 전보다 15조7000억원 줄었는데, 이 추세라면 연간 세수는 정부가 짠 올해 세입예산(400조5000억원)보다 20조3000억원가량 부족해진다.
대중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선 윤석열 정부의 ‘중국 홀대’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4월 17일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에서는 이를 두고 야당 의원과 추 부총리의 공방이 오갔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흑자 1위인 중국이 적자 1위 대상으로 바뀌는 중이다. 대안도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탈중국을 선언한 윤(석열) 정부의 태도가 너무 성급하다. (추경호) 부총리도 중국(과의 교역에서) 흑자 보는 시대는 지났다고 입장을 바꿨는데 제가 볼 땐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따져 물었다. 현 정부가 출범 초부터 탈중국 행보를 공식화한 것이 대중 수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중 갈등과 우리 정부의 중국 홀대 논란 불똥은 국내 업계로 튀고 있다. 4월 17일(현지시간) 미 재무부가 발표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 지원 대상 전기차 명단에 미국 완성차 7개 브랜드의 16개 자동차만 포함되고 현대차·기아 등은 제외됐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IRA는 최종적으로 북미에서 조립된 전기차에 대해서만 세액공제 형태로 최대 7500달러(약 990만원)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보조금 지급 대상 제외로 현대차·기아의 미국 내 시장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대차와 기아는 제조 국가와 상관없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리스와 렌털 등 상업용 전기차 시장에 당분간 집중하는 한편 오는 2025년까지 조지아주 서배너 인근에 완공 예정인 전기차 및 배터리 합작 공장 건립을 앞당기는 방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방침이 워낙 확고해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업계도 내심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분위기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4월 13일 내놓은 440개 수출 제조기업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기업들은 중국 리오프닝을 우리 기업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한 필요한 과제로 한·중 관계 개선(32%)을 가장 많이 꼽았다. 박상현 전문위원은 “미·중 갈등 구도에서 우리 정부의 중국 홀대 논란이 확산하면 우리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2016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중국의 보복 조치가 따랐던 것처럼 중국 정부의 직·간접적 견제가 있을 수 있다. 한국의 단체관광 불허 조치가 지속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치훈 부장은 “우리 경제 이익은 극대화하면서 손실은 최소화하는 정교한 정책 추진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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