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 모르는 택시 전면추진하는 국회···업계 "산업 변화의 싹 잘라”
플랫폼택시 '목적지 미표시' 입법화
국회서 "유료·무료 구분해선 안돼"
업계 "국민 편의·혁신 무시" 반발
국토차관도 "앱 꺼놓고 영업할것"
'제2의 타다' 사태 재연될까 우려
플랫폼 택시 기사가 승객이 타기 전까지 목적지를 알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에 대한 플랫폼 업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유료 호출 뿐만 아니라 무료 호출에도 목적지 미표시를 강제해야 한다며 전면 도입을 주장하고 나선 상황이다.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한 벤처업계는 '제2의 타다 금지법'이라며 생존 위협을 호소한다. 경기침체로 인해 카카오(035720)모빌리티가 직영하는 법인택시업체 2곳이 전체 휴업을 결정할 정도로 악화한 경영 환경에서 업계를 옭아매는 규제가 더해질 경우 모빌리티 플랫폼 업계가 고사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크다.
25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에 플랫폼 중개 사업자 등의 목적지 미표시를 골자로 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 개정안’이 이날 다시 상정될 예정이다. 개정안은 택시 기사들이 승객의 목적지를 보고 요금이 많이 나오지 않는 단거리 승객의 호출은 받지 않고 장거리 승객만 골라 태우는 상황을 해결하겠다는 취지로 지난해 4월 발의됐다. 법안을 발의한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승객 골라 태우기를 조장하는 목적지 표시와 먼 거리의 택시가 배차되도록 호출(콜)을 몰아주는 등의 플랫폼 운영으로 택시 이용 승객들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나 이를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발의 배경을 밝혔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대부분 택시 관련 단체는 “법 개정을 통해 국민의 편의를 증진해야 한다”며 찬성 입장이다.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대통령 재가를 받는 등 최종 관문을 통과하면 플랫폼 택시 기사는 승객이 탑승하기 전에 목적지를 알 수 없게 된다. 그동안 모빌리티 플랫폼 업체는 목적지 표시 여부를 자율적으로 정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카카오T 가맹택시(블루)와 일반 부스터 호출 등에 목적지를 미표시하고 있다. 호출 중개하는 일반 택시의 경우 목적지가 표시된다. 우티도 가맹 택시의 경우 표시하지 않고 있지만 중개하는 일반 택시의 경우 표시하고 있다.
이달 11일 열린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유료 호출에 한정한 국토교통부 시행령안을 무료 호출까지 넓히자는 의원들의 주장이 제기됐다. 강대식·박정하 국민의힘 의원과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전면 도입을 주장했다. 민 의원은 "유료나 무료로 구분하면 승차 거부 자체를 선택적으로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결과가 된다"고 주장했다.
모빌리티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한 벤처업계는 성명을 내고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벤처기업협회와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한국여성벤처협회 등 7개 단체가 참여한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23일 성명을 통해 "모빌리티 벤처기업의 혁신과 창의성을 가로막는 규제 강화에 반대한다"며 "최근 법률 개정 움직임은 다시 '제2의 타다 금지법'을 만드는 것으로, 모빌리티 벤처업계가 좌초됨은 물론 국민의 이동 편의성 자체도 저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협의회는 이어 "이번 법률 개정은 택시산업 변화의 싹을 자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는 특히 법안이 통과되면 승객과 기사 모두의 이익을 저해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목적지 표시를 금지하더라도 단거리 승객 기피 현상을 해결할 수 없어 승차 거부와 호출 골라잡기 풍토가 사라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오히려 목적지가 불분명한 승객을 애플리케이션으로 태우기보다는 택시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배회 영업’이 성행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어명소 국토부 2차관도 11일 법안심사소위에서 "강제화한다면 오히려 앱을 꺼 놓고 다닐 가능성도 굉장히 높다"며 "소비자들 피해로도 이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무료호출에 대해서까지 의무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부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목적지 미표시가 무료 호출에도 적용될 경우 택시업계의 경영 환경이 더욱 열악해질 것이라고 우려도 나온다. 택시비가 급격하게 인상되고 경기 침체로 가계의 구매력까지 떨어져 승객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규제가 더해지면 이용객 감소는 물론 택시기사 수급도 열악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서비스의 한계도 있지만 소비자 편익 차원에서는 택시 업계에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면서 "목적지 미표시 등 서비스 환경이 바뀌면 택시기사의 근무 환경이 악화하면서 구인난이 심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택시 관련 단체들이 목적지 미표시에 찬성하고 나섰다는 이유로 법안이 통과돼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익단체와 현장 기사들의 입장이 다르기에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어 차관은 “목적지 미표시와 관련해 기사들의 입장도 엇갈리는 상황”이라며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당 법안이 시행될 경우 기사의 근무 환경과 택시 운행 환경이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운수 종사자가 교대나 식사 시 자신의 이동 계획을 세워 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사업 구역을 벗어난 장소를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회 국토교통위 법안심사소위에는 목적지 미표시 법안과 함께 플랫폼 중개요금을 국토부 장관에게 ‘신고’하도록 하는 법을 ‘수리를 요하는 신고제’로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 개정안’도 함께 상정된다.
김성태 기자 kim@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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