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면 같이 죽자” 절실한 보살팬...이글스는 응답하라

백종인 2023. 4. 25.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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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백종인 객원기자] 처음에 좀 괜찮다 싶었다. 4-0. 가뿐한 출발이다. 하지만 웬걸. 어느 틈에 턱 밑까지 쫓긴다. 5회 초. 문성주의 타구가 담장을 살짝 넘긴다. 투런 홈런이다. 스코어는 4-3이 됐다. 이 때부터 불안감이 엄습한다. (23일 대전, LG-한화전)

아니나다를까.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6회 초. 오지환의 3루타가 터졌다. 1루 주자 문보경이 홈을 밟는다. 기어이 동점을 허용했다. 1등이 꼴찌를 따라붙었다. 결말은 뻔해 보인다. 뒤집기는 이제 시간 문제다.

그 무렵이다. TV중계 카메라가 1루쪽 관중석에 포커스를 맞춘다. 한 여성 팬의 모습이 클로즈업 된다. 붉은 이글스 저지를 입고, 머리에는 오렌지색 띠를 맸다. 선글래스 아래 비장한 스케치북이 등장한다. 하얀 도화지에 검은색 폰트가 단호하다. ‘오늘 지면 같이 죽자’.

이후로 경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예상대로 8회 초 트윈스의 역전이 이뤄졌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꼴찌 팀이 기적처럼 되살아났다. 8회 말 3점을 뽑아 재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9회 초. 초유의 해프닝이 벌어진다. 1사 1, 2루에서 탄생한 끝내기 인필드 플라이볼이다. 카를로스 수베로가 벤치를 박차고 나온다. 오랜만에 보는 어퍼컷 세리머니다. 이글스 파크가 환희에 가득 찬다.

믿기 힘든 종반 재역전 승리다. 아마도 스케치북 그녀의 강렬한 염원 덕인 것 같다. 이글스 파크에서 1시간 거리다. 충남 아산에 모신 이순신 장군도 떠오른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MBC Sports+ 중계화면

평범한 1승이 아니었다. 9회 초 장면은 큰 화제가 됐다. 덕분에 조금 더 길고, 특별한 여운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현실로 돌아오면 답답함은 여전하다. 개막 4주차가 넘었다. 19게임에서 거둔 승리는 고작 6번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무승부 1번에 패배가 12번이다. 승률로 따지면 0.333, 오래된 붙박이처럼 바닥에서 꼼짝 못한다.

개막을 앞두고는 희망이 어른거렸다. 90억원을 투자해 4번 타자(채은성)을 얻었다. 무려 7년 만의 외부 영입 FA였다. 이태양(4년 25억원)도 복귀시켰다. 장시환과도 다년 계약을 맺었다(3년 9억 3000만원).

무엇보다 희망의 새싹이 무럭무럭 자랐다. 문동주와 김서현이 용틀임이다.

문동주는 선발 한 자리를 너끈히 해낸다. 3경기에서 16.2이닝을 막았다. 6피안타 18탈삼진 7사사구 2실점(평균자책점 1.08). 피안타율은 0.109로 압권이다. 득점권에서 더 강해진다. 0.083으로 언터처블이다. 12일 KIA전에서는 최초로 160㎞를 돌파했다. 박찬호에게 160.1㎞(스포츠투아이 PTS 기준)짜리 패스트볼을 기록했다.

새내기 김서현도 가세했다. 역시 150㎞ 후반(최고 157.9㎞)의 속도로 뜨거움을 과시한다. 중요한 중반 고비를 돌파하는 역할이다. 3게임에서 4이닝 1실점(ERA 2.25)을 기록했다. 23일 트윈스전에서 김현수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상훈 해설위원은 “대표적인 강타자인 김현수를 잡아낸 공은 기념구로 간직해도 될 것”이라며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그러나 호재에도 불구하고 팀 성적은 제자리 걸음이다. 현재 승률 0.333(6승 12패 1무)은 작년 같은 기간(19게임) 승률 0.368(7승 12패)보다 오히려 낮다. 지난 시즌 마감 성적(승률 0.324)과 비슷한 수준이다.

OSEN DB

기대치에 못 미치는 개막 초반이다. 그러나 팬들의 애정은 여전하다. 9번의 홈 경기 중 1만 명을 넘어선 게 3번이나 된다. 일요일 두 번(9일, 23일)은 9000명을 초과했다. 절반 이상인 5번이 9000~1만 명의 동원 기록이다. 9게임 평균은 7736명이다. 수도권 구단 키움(7707명)보다 앞서는 수치다.

벌써 10년 전이다. 그러니까 2013년이다. 소년 가장을 LA로 보내고 맞은 첫 시즌이었다. 3월 30일 롯데와 개막전을 시작으로 내리 13게임을 졌다. 바티스타-이브랜드의 외국인 원투 펀치도 막아내지 못했다. 단체 삭발도 소용없었다.

그러던 4월 16일이다. 14번째 경기에서 드디어 첫 승을 올렸다. 연패가 끊어진 9회 말이다. 온라인으로 중계한 포털 사이트의 동시 접속자수가 19만 명을 넘어섰다.

당시 화면에는 두 여성 팬의 모습이 등장했다. 두 손을 모으고, 한 손으로 입을 막고. 간절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그들은 끝내 울음을 터트린다. 구단 홍보팀은 이들을 섭외해 홈 경기 시구를 맡기기도 했다.

MBC Sports+ 중계화면

보살팬의 버전은 다양해졌다. 눈물녀 같은 스타일도 있고, 육성 응원으로 절절함을 토해내기도 한다. 심지어 ‘오늘 지면 같이 죽자’까지 등장했다. 각자의 방식은 다르지만, 이들은 한결 같다. 비록 현재는 안쓰럽고 부족한 팀이다. 그러나 응원하고 지지하는 마음은 변치 않는다. 이젠 이글스가 화답할 차례다.

/ goorad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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