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타노스를 상대하기 위한 국가 R&D의 좁은 회랑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에는 다양한 슈퍼히어로들이 등장한다. 로봇 수트로 슈퍼히어로가 된 아이언맨, 천둥의 신 토르, 과학자이자 돌연변이 인간인 헐크, 지구 최고의 스파이 블랙 위도우 등 출생도 재능도 다양하다.
글로벌 ICT 시장의 경쟁 상황을 보면 슈퍼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어벤저스 영화 같다. 검색 서비스로 성장한 구글, 온라인 상거래로 성장한 아마존, SNS로 성장한 페이스북(메타) 등, 모두 태생은 다르지만 디지털 플랫폼 강자로 세계인을 대상으로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을 보면 '인피니티 워'에 등장했던 '타노스'가 등장한 거 같다. 타노스가 우주를 돌며 숨겨졌던 파워스톤들을 하나하나 획득하면서 그 힘이 커지고 결국 전 우주를 지배하는 절대 강자가 된 것처럼, 마이크로소프트가 깃허브, 링크드인 등을 인수하고 오픈 AI와 독점적 파트너쉽을 맺은 후, 챗GPT로 세계를 재패하고 있다. 다른 강자들도 성장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반도체를 넘어 가상화폐, 인공지능(AI), 메타버스에 이르는 유망산업을 섭렵하고, 테슬라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을 넘어 에너지·우주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2022년 말 CNN은 'FAANG' 대신 'MANTA', 즉 마이크로소프트·애플·엔비디아·테슬라·알파벳이 부상한다고 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풍부한 자본, 우수한 인재, 딥테크 기업들을 파워스톤 모으듯 하나하나 획득하면서 타노스로 성장하고 있다. 핑거 스냅 한 번으로 전 우주의 생명체 절반을 사라지게 하는 절대 파워처럼 강력한 독점력을 가진 기업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이에 반해 우리 테크 기업들은 어떠한가? 네이버·카카오가 국내 시장에서 잘 버텨주고 있고, 현대차와 삼성전자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자랑스러운 기업들이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 기업들이 잘 커갈 수 있을까? 이들에게 힘을 줄 인재들과 파워스톤이 되어줄 딥테크 기업들이 있는가?
'우리나라가 우수한 인재와 딥테크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질문이 가득 찰 즈음, 정부는 12대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하고 임무중심 R&D 혁신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 기술패권 경쟁이 우방국 중심으로 기술진영을 구축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디지털 혁신기술들은 대규모 자원과 수많은 고급 인력, 고가의 장비들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의 이런 전략은 매우 유효해 보인다.
국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공 R&D의 임무를 명확히 하고 임무중심의 전략적 투자와 적극적인 민관 협업이 필요하다. 이제 정부 R&D는 국가전략기술과 정부에서 정한 로드맵에 따라 전략적으로 진행되도록 재정렬되고 있다. 이제라도 파편화된 역량을 모아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는 데에 집중하게 돼 다행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혁신이 잘 될까 하는 우려도 든다. 혁신에는 무엇보다 창조성이 필요하며, 창조성에는 개인들이 두려움 없이 행동하고, 실험하고, 다른 이들이 좋아하지 않더라도 자기 뜻에 따라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유와 창조성이 '임무'가 강조되는 연구환경에서 공존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과 유사한, 그러나 더 깊고 논리적인 고민이 있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 대런 애쓰모글루와 시카고대 정치학 교수 제임스 A.로빈슨이 국가, 사회 그리고 자유의 운명을 논한 저서에서 국가가 가야 할 길을 '좁은 회랑'으로 표현했다.
회랑(回廊)이란 바다나 다른 나라 등으로 갈 수 있는 폭이 좁고 길이가 긴 통로를 말한다. 국가가 과도한 권력을 가지면 국민의 자유는 제한되고, 국가 권력이 너무 약해지면 사회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돌입해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받을 수 있다. 시민이 자유를 잃지 않으면서 국가가 번영하기 위해선 국가와 사회가 힘의 균형을 이루는 좁은 회랑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메시지다.
최근 출연연의 변화된 연구환경을 보면, 국가가 부여한 '임무'와 연구자의 창의성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한 '자유' 사이의 좁은 회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타노스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혁신 기술을 확보하고, 딥테크 기업들이 슈퍼히어로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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