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보수·우익 텃밭 둘러싼 두 가문의 ‘50년 각축전’ 어디로?

김소연 2023. 4. 2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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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 움텄던 야마구치현
아베·기시-하야시 가문의 경쟁
기시 노부스케(앞줄 가운데) 전 일본 총리가 손자인 아베 신조를 무릎에 앉히고 가족사진을 찍었다. 앞줄 맨 오른쪽이 신조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 뒷줄 오른쪽에 서 있는 여성이 어머니 요코다. 일본 총리관저 누리집

“전력을 다해 국가와 (야마구치) 현의 과제에 임하겠다.”

24일 치러진 야마구치 2구 중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기시 노부치요(31)가 만세 삼창을 한 뒤 소감을 밝혔다. 노부치요는 맞대결을 펼친 옛 민주당 정권 때 법무장관을 지낸 무소속 히라오카 히데오(69)와 접전 끝에 중의원에 당선됐다. 애초 10만표 이상 획득을 목표로 했지만 6만1369표를 얻어 히라오카(5만5601표)보다 불과 5768표 앞서는 데 그쳤다.

노부치요는 기시 노부오 전 일본 방위상의 장남이자,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 유세 도중 총격으로 숨진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조카다. 기시 전 방위상은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이지만,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1896~1987) 전 총리 아들의 양자가 돼 성이 달려졌다.

노부치요는 <후지티브이> 기자로 일하다가 28살 때 방위상인 아버지의 비서관을 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기시 전 방위상이 지병을 이유로 2월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공석이 된 야마구치 2구에 입후보해 아버지의 의석을 물려받게 됐다.

이번 중·참의원 5곳의 보궐선거 가운데 야마구치 2구는 일본 언론의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아베·기시 가문이 자신들의 터전인 야마구치현에서 4대째 중의원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선거였기 때문이다. 변변한 정치 경험이 없었던 30대 초반의 젊은이가 법무장관을 지낸 5선 의원을 꺾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집안 배경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일본 남서부에 위치한 야마구치현은 메이지유신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시다 쇼인(1830~1859)의 고향이면서 초대 총리를 지낸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포함해 8명의 총리가 나온 일본 ‘보수 정치의 성지’ 같은 곳이다.

이 지역은 ‘세습정치’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곳이기도 하다. 보궐선거 전 야마구치 현내 선거구 4개 중의원 의석은 모두 자민당원이자 세습정치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일본에선 부모, 장인·장모(시아버지·시어머니), 조부모 또는 3촌 이내의 친척 가운데 국회의원이 있고, 이들의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된 이를 세습의원이라고 한다. 세습정치인은 ‘지반’(지역구), ‘가반’(가방·자금력), ‘간반’(간판·지명도) 등 이른바 ‘3반’(일본어 발음이 모두 ‘반’으로 끝나 유래한 말)을 확보한 상태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해 다른 경쟁자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야마구치에서 대표적인 세습정치 가문은 아베·기시 가문이다. 아베 가문이 서부 시모노세키, 기시 가문은 동부 이와쿠니를 지역구로 확보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와 기시 전 방위상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1924~1991)는 일본에서 중선거구제도(한 지역구에서 복수의 의원을 선출하는 제도)가 유지되던 1958년 야마구치 1구에 출마해 34살의 나이로 중의원에 첫 당선이 됐다. 그의 부친 간(1894~1946)과 장인 기시의 후광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신타로의 아버지 간은 야마구치에서 중의원을 지낸 인물로 도조 히데키(1941.10~1944.7) 내각 당시 전쟁에 반대한 평화주의자였다.

장인은 ‘쇼와의 요괴’로 불리는 기시 전 총리다. 기시의 동생은 ‘비핵 3원칙’을 선언해 1974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토 에이사쿠(1901~1975) 전 총리다. 신타로는 관방장관, 외무상, 자민당 간사장 등을 거치며 총리 물망에 올랐으나, 1991년 췌장암으로 숨졌다.

야마구치에서 아베·기시 가문을 견제하는 또 다른 가문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최측근이면서 외무상을 맡고 있는 하야시 요시마사의 집안이다. 야마구치를 둘러싼 두 가문의 ‘살벌한 경쟁’은 50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하야시 외무상의 아버지 하야시 요시로(1927~2017)는 1969년 야마구치 1구에 출마해 처음으로 중의원에 당선됐다. 당시는 중선거구제로 아베·기시 가문의 신타로도 1구 소속이라 경쟁이 치열했다. 하야시 가문은 핵심 표밭인 시모노세키에서 산덴교통이라는 운수회사부터 부동산·건설·온천 등 20개 넘는 대규모 업체를 소유한 지역의 거물급 유지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의 아버지 하야시 요시로(사진 왼쪽)는 1969년 야마구치 1구에 출마해 처음으로 중의원에 당선됐다. 당시는 중선거구제(복수의 의원을 선출하는 제도)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도 1구 소속이라 경쟁이 치열했다. 자민당 누리집

요시로가 출마하기 전까지 하야시 가문은 아베 전 총리의 부친 신타로의 후원회장을 맡는 등 든든한 조력자였다. 그만큼, 타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하야시 가문의 회사를 시작으로 상인 쪽이 요시로 쪽으로 몰렸다. 이때부터 아베-하야시 가문의 경쟁 관계가 정계 내에서 화제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요시로는 다나카 가쿠에이(1918~1993) 전 총리 측근이고, 신타로가 그의 ‘정적’이던 후쿠다 다케오(1905~1995) 전 총리의 측근이었다. 그 때문에 이들의 경쟁을 ‘시모노세키의 가쿠후쿠 전쟁’이라 부르기도 했다. 아베 쪽 후원회 간부는 <아사히신문>에 “후원 기업들도 거래처에 ‘너는 누구냐’고 물어 ‘하야시 쪽’이라고 하면 일을 아예 함께 안 할 정도로 각축전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아베-하야시’ 가문의 경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시모노세키 시의원은 지금도 ‘아베파’와 ‘하야시파’로 나뉜다. 현지 기업이나 신사, 어시장까지 ‘저기는 아베파, 이쪽은 하야시파’로 갈라져 있다”고 전했다.

두 집안의 경쟁은 1996년 선거제도가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바뀌면서 아베 가문으로 힘이 쏠리기 시작했다. 신타로가 췌장암으로 숨진 뒤 그의 둘째 아들인 아베 전 총리가 1993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야마구치 1구에서 중의원에 처음으로 입성한다. 소선거구제가 되면서 요시로는 지역을 내주고 비례대표로 공천돼 2003년까지 중의원을 지냈다.

아들 요시마사도 1995년 중의원 대신 야마구치를 지역구로 참의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도쿄에서 자란 아베 전 총리와 달리 학창 시절을 시모노세키에서 보낸 요시마사는 총리를 꿈꾸며 ‘시모노세키 탈환’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는 2021년 10선 의원인 가와무라 다케오를 누르고 자민당 공천을 따내 아베 전 총리 지역구(야마구치 4구) 바로 옆인 3구에서 중의원으로 당선됐다. 기시다 총리의 최측근이라는 점과 하야시 가문의 영향력이 힘을 발휘했다.

야마구치의 정치 판도는 2025년에 예정된 차기 중의원 선거(조기 선거 가능성 있음)에서 크게 바뀔 가능성이 있다. 헌정사상 최장수 총리이자, 보수·우익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아베 전 총리의 사망으로 ‘힘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하야시 가문이 시모노세키를 되찾을 기회가 온 것이다. 야마구치는 인구 감소로 다음 중의원 선거 때 현재 4곳의 선거구가 3곳으로 줄어든다. 시모노세키가 있는 4구와 3구가 합쳐져 ‘신3구’가 된다.

24일 치러진 야마구치 2구 중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기시 노부치요(31)가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기시 노부오 전 방위상의 아들 노부치요는 맞대결을 펼친 옛 민주당 정권 때 법무장관을 지낸 무소속 히라오카 히데오(69)와 접전 끝에 중의원에 첫 당선이 됐다. NHK 갈무리

아베 전 총리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야마구치 4구에서는 이번 보궐선거 때 자민당의 요시다 신지(38) 전 시모노세키 시의원이 출마해 당선됐다. 아베 부부 사이에 자녀가 없어 아키에 여사가 출마하는 방안도 논의됐으나 본인이 고사하면서 실현되지 않았다. 요시다가 아베 가문의 지원을 받아 당선되긴 했지만 초선인 만큼, 신3구에서 하야시 외무상을 물리치고 자민당 공천을 받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하야시파’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해 2월 치러진 시모노세키 시의원 선거에서 아베파는 9명에서 6명으로 3석이 줄었고, 하야시파는 12명에서 13명으로 1석이 늘었다. 시의회 의장도 아베파에서 하야시파로 넘어왔다. <엔에이치케이> 방송은 “하야시 외무상을 시모노세키 지역구에서 중의원으로 당선시키는 것이 하야시파의 숙원 과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시의원 등 시모노세키에서 세력을 굳혀 둘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의 세습정치는 야마구치만의 문제는 아니다. 집권 여당인 자민당 국회의원의 30%가량은 세습의원이다. 2000년대 들어 모리 요시로부터 기시다 후미오까지 총 10명의 총리가 취임했는데, 이 가운데 70%(7명)가 세습정치인이다. 다양성과 형평성 위배 등 세습정치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지면서 자민당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자민당 중견 간부는 <아사히신문>에 “이번 선거를 보면 조용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세습’ 등 기존의 정치를 바꾸지 않고 계속 끌고 가면 어떠한 것을 계기로 단번에 정권이 뒤집힐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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