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최악 시나리오 준비했다”…IMF의 잿빛 경제 전망
■ "20년 만에 보는 최악 성장률…1인당 성장률은 마이너스 될 수도"
"(IMF가 이번에 낸) 보고서에는 신용 경색이 미국과 일본, 유럽으로 확산되는 매우 상세한 하방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안전 자산으로 돈이 몰리게 되고, 강달러가 이어져 다른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증폭된다는 내용입니다. 이로 인해 부채가 있는 국가들은 빚을 갚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이게 신뢰도 하락과 투자 감소, 소비 감소로 다시 이어지는 거죠. 재정적으로도 더 긴축 상황이 이어질 거고요."
"이런 상황에선 성장률이 (이번에 예측한) 2.8%가 아니라 1%까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심지어 1인당 성장률은 마이너스에 이를 수도 있어요. 각국 정부는 이에 대비한 정책을 계획해야 합니다."
이달 중순, IMF(국제통화기금)의 춘계 총회를 맞아 KBS와 인터뷰한 다니엘 레이 IMF 세계경제연구부장의 말입니다. 레이 부장은 IMF가 총회에 맞춰 낸 경제성장률 전망치와 관련 보고서의 작성을 총괄한 인물입니다.
레이 부장은 '향후 5년간 세계 경제 성장률이 3%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나온 분석 결과를 '충격적'이라고 말했습니다. IMF에서 20년간 일했는데 "향후 5년간의 경제성장률을 이렇게 낮게 전망해본 게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4명 중 한 명은 2% 미만의 성장률에 맞닥뜨릴 거라고도 했습니다.
2008년엔 향후 5년간의 경제성장률을 거의 5%로 예측했었고, 지난 20년간 성장률 평균도 3.77%였다고 했습니다. 레이 부장의 말처럼 세계 경제성장률이 1%까지 떨어질 확률은 15%로 계산됩니다. 레이 부장은 원인을 단기와 장기로 나눠 설명했습니다.
■ 세계 경제의 양대 위기축…신용 경색·인플레이션
세계 경제는 코로나19 대유행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충격에서 회복 중입니다. 여전히 많은 나라의 경제는 충격 상황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예측지 못했던 충격이 터졌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 은행 파산으로 시작된 미국과 유럽의 잇따른 은행 위기입니다. IMF는 신용 경색을 현재의 가장 큰 경제 위험으로 지목합니다.
▶ 다니엘 레이 / IMF세계경제연구부장
"위험은 정확히 하방으로 가고 있습니다. 지금 가장 큰 위험은 신용 경색 가능성입니다. 금리가 매우 빠르게 상승하고, 여기에 더 많은 은행이 노출돼 실패한다면 주택을 구매하려는 가계와 기업에 대한 신용 공급까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성장률을 끌어내릴 것입니다. "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한껏 높인 이자율이 신용 경색의 원인이 됐는데,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고 있어 돈을 풀 수도 없습니다. 그런 인플레이션이 내년은 돼야 잡힐 거라고 레이 부장은 내다봤습니다.
"작년에는 인플레이션이 8.7%까지 예상됐었습니다. 정상 수준보다 훨씬 높은 거죠. 올해는 7%까지 내려왔습니다. 2025년 이전까지는 목표 수준치까지 내려오지 않을 걸로 예상됩니다. 오랫동안 높은 금리가 지속된다는 거죠. 게다가 인플레이션이 더 고착화돼서 금리를 또 한번 인상해야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게 은행들에 영향을 미치겠죠. 가장 큰 걱정거리입니다."
선진국에서 이런 일이 터지면, 전체 세계 경제의 둔화 요인이 됩니다. 선진국의 개도국 물품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이 꺼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이자율만 높아져, 개도국이 달러 빚을 갚기 더 어려워집니다. 세계 경제 상황이 더 악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미 스리랑카와 잠비아, 가나는 해외에서 진 빚 때문에 채무 불이행 상태입니다.
■ 중장기 끌고 갈 진짜 위기 요인…미·중 전략경쟁
IMF가 보고서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세계 경제의 중장기적 최대 위기 요인으로 떠오른 미·중 간 패권 경쟁입니다.
"미국 블록, 중국 블록, 그리고 이걸 지켜야만 하는 국가들이 세계에 불확실성을 가져올 것입니다. 무역이 줄어들고 무역 장벽이 올라갈 것입니다. 이미 그렇게 되고 있지 않습니까? 해외직접투자(FDI)가 두 블록에 점점 집중되는 걸 보고 있습니다. 성장에 효율적인 방향은 아닙니다. 이런 투자 단절로 세계 경제성장의 2%가 손실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이런 분열로 인한 잠재적 비용에 주목합니다. 정책 입안자들도 분열로 계속 가는데 따른 비용을 고려해야 합니다."
레이 부장은 이 싸움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중국에서 빠져나온 투자가 가게 될 다른 나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겠지만, 그것도 단기 이익에 불과할 거라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나라가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불확실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지역 분열이 결국 미국과 중국의 성장을 느리게 만들면 이들 국가에 수출할 수 있는 수요가 줄어들게 된다. 이익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이 결말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 한국 경제 부진 앞당길 또 다른 복병?
<KBS 뉴스9>에서는 IMF의 경제 전망을 소개해드리면서 세계 상황보다는 한국에 초점을 맞춰 보도해드린 바 있습니다. IMF는 이번에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벌써 네 번째 낮춰 1.5%까지 내렸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반짝 반등하다 사라진 성장세, 반도체와 전자 산업 등 주력 수출 품목 부진과 중국 시장 위축, 내수 부진 등이 이유로 꼽혔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과 이달, 두 차례 IMF와 인터뷰를 하면서 IMF 관계자들이 그 무엇보다 강조한 위험 요인이 있습니다. 우리 경제에 잠복한 구조적 문제이자 중장기적 최우선 위험 요인, 바로 인구입니다.
다니엘 레이 부장은 "세계적으로 인구 증가가 느리다. 아이를 적게 낳는다는 건 노동자가 줄어든다는 거고, 곧 성장률이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토머스 헬블링 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국장은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도 훨씬 인구와 노동력 증가율이 낮다"며 "현재 인구 증가율 감소는 물론 궁극적으로 미래에 줄어들 인구까지 낮은 성장률에 반영된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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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기자 (man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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