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 우선매수권, 최선일까…낙찰가 뛰면?
전세사기 피해자 경매 '우선매수권' 부여
낙찰가 인상·집값하락 등 '실효성' 얼마나
"비상 응급조치 수준, 콘트롤타워 있어야"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우선매수청구권'(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이로써 피해주택 소유권이 제3자에게 넘어가 임차인이 살던 집에서 내쫓기게 되는 우려가 한풀 꺾였다.
그러나 경매 경합 시 낙찰가가 뛰거나 선순위 근저당자가 손해를 보는 등의 부작용도 불가피할 전망이라 더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매 우선 낙찰, 득일까 실일까
정부와 국민의힘, 대통령실은 지난 23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을 위한 특별법'(이하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이 살던 주택을 매입하기 원하면 경매에서 우선매수권을 주고, 거주만 원할 경우 LH가 경매에서 사들여 공공임대로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이는 임차인의 전세보증금 보장보다는 주거 안정을 고려한 조치로, 특히 우선매수권은 피해자들이 꾸준히 요구해 온 제도다.
전세사기 피해주택이 경매로 넘어가 제3자에게 낙찰될 경우 선순위 근저당이 설정돼 있으면 임차인의 우선순위가 밀리면서 보증금을 거의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해서다.
가령 매맷값 1억원, 전셋값 9000만원, 은행 대출 8000만원짜리 주택을 제3자가 경매로 8000만원에 낙찰받는다면 낙찰자가 은행에 대출금을 주고 나면 임차인이 돈을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임차인은 무일푼으로 살던 주택에서 쫓겨나겨나 낙찰자가 전세를 승계한다고 해도 계약 갱신 혹은 변경 과정에서 불리한 조건에 처할 수도 있다.
우선매수권이 있으면 임차인이 대항력을 갖추지 못한 후순위 채권자여도 경매 절차 진행 시 우선적으로 주택을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받게 된다.
다만 우선매수권이 모든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정답이 될 순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매는 최고가격 낙찰제기 때문에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이 있다고 해도 다른 낙찰자가 들어와 입찰대금을 높여 부르면 피해 임차인은 그보다 높게 가격을 부르는 수밖에 없다.
또 우선매수권이 부여된다고 해도 매수 자금 여력이 부족한 피해자에겐 실효성이 없다. 있는 재산을 전부 전세보증금에 넣어놓은 상태거나 전액 대출로 보증금을 마련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최저 0%대의 저금리 대출 지원한다고 해도 결국 빚을 늘려야 한다는 점에선 일부 임차인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허점 수두룩…"컨트럴타워 구축해야"
빌라 등은 낙찰받은 뒤 가치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최근 "융자를 받아서 (살던 주택을) 사는 경우 만약 가액이 올라가면 이번에 피해를 본 보증금도 사실상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가뜩이나 부동산 하락기가 지속하는 가운데 '빌라왕' 등 전세사기 사태가 불거지자 비아파트 수요가 크게 꺾여 가격이 반등하긴 어려워보인다. 또 후순위로 밀려나는 공공기관이나 금융사, 개인 채권자 등 선순위 근저당권자가 손해를 본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야당은 이같은 한계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증금 채권매입'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채권 매입 기관이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을 우선 매수해 피해자에게 먼저 보상을 한 뒤, 채권 매입 기관이 경매·공매 등을 통해 이를 회수하는 방법이다. 이른바 '선보상 후구상권 청구'안이다. 그러나 이는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에서 재차 선을 그은 상태다.
원 장관은 24일 "사기당한 피해 금액을 국가가 먼저 대납해서 돌려주고, 그게 회수가 되든 말든 떠안으라고 하면 결국 사기 피해를 국가가 메꿔주라는 것"이라며 "안타깝고 도와주고 싶어도 안 되는 것은 선을 넘으면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시장에선 지금까지 거론된 대책은 '응급조치' 수준이라며 '종합콘트롤타워' 운영 등을 통해 보다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대책 및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두성규 목민경제정책연구소 대표는 "우선매수권은 피해자들이 살던 주택에 계속 머무르면서 해결하는 조치라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급한 상황에서 나온 비상 응급조치일 뿐 허점이 많다"며 "매매가격이 떨어지고 있어 전세보증금 회복 가능성이 낮고 이미 경매 넘어간 주택이나 진행중인 주택에까지 소급 적용을 원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법질서가 교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근저당 선순위가 금융기관일 경우 일방적으로 부담을 떠안아 부실화가 심각해지면 극단적으론 제2의 금융위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더 큰 문제는 역전세 등으로 앞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주택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보다 근본적이고 합리적인 대책을 내놓으려면 종합콘트롤타워를 마련해야 한다"며 "콘트롤타워가 피해 구제 관련 법제화 등 시스템화에 나서는 동시에 전국적으로 추가 발생이 우려되는 전세사기 피해를 미리 대비하는 투트랙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채신화 (csh@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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