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 “보증금 구제를”…정부 “선례 남길 수 없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 논의가 조만간 국회에서 시작된다. 여야는 특별법을 통해 피해자가 맞닥뜨린 주거 불안을 해소하자는 데는 생각이 같다. 그러나 보호·지원할 피해자의 범위, 특별법 시행 기간 등을 두고는 여야 간 의견이 다른 탓에 입법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떼인 보증금은 어떻게?
가장 첨예한 쟁점은 전세사기 일당이 돌려주지 않은 피해 임차인들의 보증금 구제 문제다. 정부·여당은 일단 피해 임차인 주택을 공공기관이 사들이는 방안에 대해서는 반대에서 찬성으로 입장을 바꿨지만, 보증금 구제만큼은 부정적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24일 인천 부평구에 있는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 “사기로 피해받은 금액을 국가가 대신 내주고, 회수가 안 되더라도 (부담을) 떠안으라는 선례를 한국이 남길 수 없다”며 “안 되는 것은 안 된다.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피해자들과 더불어민주당, 정의당은 보증금 일부라도 구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공공기관이 피해 임차인으로부터 보증금 반환 채권을 할인된 가격으로 산 뒤,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주택을 낙찰 받고, 공공이나 민간에 낙찰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팔아서 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고 본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인 임재만 세종대 교수(부동산학)는 “피해자 구제 과정에서 초기에 자금이 투입된다 하더라도 대부분 회수할 수 있어 혈세 낭비는 결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의 전세보증금 대출 등 채무 탕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날 인천시 관계자는 피해지원센터에서 원 장관을 만나 “전세 저리 대출이나 무이자 지원을 해도 결국 피해자들의 채무가 늘어나기에 미봉책”이라며 “피해자들은 개인회생 등을 통한 채무 탕감을 원하고 있다”고 했다. 원 장관은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해서만 (채무 탕감을) 해주겠다는 것은 전체 신용 체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곤란해했다.
특별법상 피해자는 누구?
특별법의 지원·보호를 받는 임차인 범위가 어떻게 정해질지도 관심을 끈다. 원 장관은 “전세사기 피해와 집값 하락기에 나타나는 보증금 미반환 현상을 어떻게 구분 지어, 어디까지 국가가 관여하고 지원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있다”며 “다 지원해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800만 전세 계약 모두에 대해 국가가 지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처 간 협의를 거쳐)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지원 범위를 넓힐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선보상 후구상’ 방식에는 계속해서 선을 긋되, 매입임대 지원 대상이나 저리 대출(대환대출 포함) 지원 임차인 범위는 가급적 확대하겠다는 뜻을 에둘러 밝힌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에서는 특별법에 따른 정부 지원 대상을 ‘깡통전세’ 피해가 발생해 보증금 회수가 어려워진 임차인 전체로 확대하자고 주장한다. 야권과 참여연대 등은 깡통전세라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임대인의 파산·경매·공매 등으로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지자체장이 사실관계를 파악해 ‘임대차 피해확인서’를 발급하고, 이들 임차인을 대상으로 한 보증금 반환 채권 매입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별법 시행 기간은 얼마나
특별법에 일몰 시점을 못박아 법이 정한 기간에만 피해자를 구제함으로써 형평성 논란을 줄이자는 주장과 전세사기 피해가 언제까지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시행 기간을 제한할 수 없다는 의견도 부딪친다. 현재 발의된 법안들(조오섭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안, 심상정 정의당 의원 대표발의안)은 일몰 시점을 정해두고 있지 않다.
한편, 이미 집이 경매로 넘어가 매각까지 끝난 피해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구제책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원 장관은 “제도가 한발 늦었다는 것 때문에 (피해구제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지원 취지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며 “지금부터 지원받고 구제받는 피해자들에 준하는 보완 대책을 이른 시일 내로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당정은 피해 임차인이 집이 경매에서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집을 낙찰받는 경우 재산세를 한시 감면하고 취득세를 50∼100% 면제하는 법안도 준비 중이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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