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스트레스, 단 게 당겨!"…입버릇 이유 있었네

정심교 기자, 임종철 디자인기자 2023. 4. 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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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방송된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선 김종민·이상민·김희철이 '블랙데이'(4월 14일, 연인 없는 사람들끼리 짜장면을 먹는 날)를 맞아 짜장면 맛집을 찾아다니며 하루 세끼를 맛있는 짜장면으로 해결하며 만족해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런데 전문의들은 이 같은 밀가루 음식을 폭식하는 식습관을 반복하면 '탄수화물 중독'을 유발해 마치 마약에 중독됐을 때와 비슷한 쾌감 구조에 길들게 된다고 경고한다. 탄수화물 중독을 일으키는 기전과 위험성, 대처법을 알아본다.

'배불리 먹었는데도 뭔가 더 먹고 싶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 음식이 생각난다', '커피믹스를 하루 두 잔 이상 마신다'.

이 가운데 한 가지라도 해당하면 '탄수화물 중독'을 의심할 수 있다. 탄수화물 중독은 '단맛에 중독된 상태'를 가리킨다. 서울아산병원 건강의학과 김은희 교수는 "탄수화물이 우리 몸에서 잘게 쪼개지면서 분해되는데, 최종 결과물이 포도당이다. 포도당을 빨아들인 뇌는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포도당을 섭취하면 우리 몸에서는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해 행복감과 만족을 느낀다. 김은희 교수는 "이 행복감과 만족감은 마약·알코올 중독자가 쾌감을 느끼는 호르몬 구조와 같다"며 "탄수화물에 중독되면 점점 더 강한 자극을 받기 위해 탄수화물을 점점 더 많이 먹게 된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다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탄수화물을 오랜 기간 과잉 섭취하면 장기적으로는 마약을 투여했을 때와 비슷한 변화가 뇌에서 일어난다고 보고된다.

탄수화물에 중독되는 과정은 이렇다. 설탕·쌀밥·빵 같은 정제된 탄수화물은 현미·통곡물처럼 정제되지 않은 탄수화물보다 몸에서 당분이 더 빨리 흡수된다. 정제되지 않은 탄수화물 식품엔 식이섬유가 풍부한데, 식이섬유는 당 성분이 체내 곧바로 흡수되지 못하도록 잡아두는 역할을 담당한다. 마치 그물(식이섬유)에 걸린 물고기(당)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는 원리다.

정제된 탄수화물을 먹으면 이 과정이 생략되는 탓에 당이 곧바로 체내 흡수된다. 이를 통해 혈당이 빠르게 높아지고, 몸에선 혈당을 낮추기 위해 인슐린을 더 많이 내보낸다. 이때 몸에서 혈당을 빠르게 낮추는 과정에서 저혈당과 공복감이 나타난다. 이는 탄수화물 식품을 또 먹게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한다. 중독으로 인한 금단현상으로 과식·폭식이 찾아오기도 한다.

탄수화물 중독은 가공식품에 익숙한 현대인에게서 증가하는 현상으로 꼽힌다. 가천대 길병원 가정의학과 고기동 교수는 "많은 현대인이 부드럽고 달콤한 가공식품에 길들었는데, 이들 식품 대부분은 밀가루 같은 정제된 탄수화물 식품으로, 혈당지수가 높아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했다.


백미보다 현미를, 과일은 주스보다 통째로
탄수화물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권혁태 교수는 "현실적으로 현대인이 탄수화물 섭취를 끊는 건 불가능하다"며 "탄수화물을 끊으려 노력하기보다는 탄수화물 중독으로 인해 비만해지거나, 혈당 상승 등 문제가 생겼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경 써서 줄이거나 바꾸는 등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예컨대 가정에서 밥을 지을 땐 쌀은 백미보다는 현미나 정제가 덜 된 곡물을, 과일·채소를 갈아 식이섬유가 파괴된 주스보다는 과일·채소를 통째 그대로 먹는 식이다.

혈당지수(GI)도 따져야 한다. GI는 식품 100g당 혈당 상승률을 산출한 지수로, 쉽게 말해 음식이 소화되면서 혈액 속 포도당의 농도를 높이는 속도를 수치로 나타낸 값이다. 김은희 교수는 "똑같은 칼로리·양을 먹더라도 GI가 낮은 음식은 몸에서 천천히 소화돼 인슐린의 급격한 분비를 막고 쉽게 배가 고파지지 않는다"며 "탄수화물 중독을 막으려면 GI가 낮은 탄수화물로 식단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GI가 55 이하면 'GI가 낮은 식품'으로, 70 이상이면 'GI가 높은 식품'으로 분류한다. 예컨대 감자의 GI는 90으로 높지만, 고구마는 55로 낮다. 도정한 것보다는 통곡물이, 과일보다는 채소의 GI가 낮다.

하루에 필요한 열량 가운데 탄수화물의 비율을 낮추고 단백질 섭취를 늘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간 한국인에겐 전체 섭취 열량의 55~65%를 탄수화물로 채울 것이 권고됐다. 양으로 치면 300~400g이다. 하지만 권혁태 교수는 "최근엔 이보다 좀 더 줄여야 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온다"며 "되도록 50%를 넘기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전체 식단 가운데 단백질은 15~20%, 지방은 20~25%로 맞춘다.

똑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식습관에 따라 혈당이 오르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채소를 많이 먹고, 편식하지 않으면서 골고루 꼭꼭 씹어 천천히 먹는 습관만 들여도 혈당의 급상승을 막을 수 있다.

식사 전, 식초를 마시면 탄수화물 흡수를 막을 수 있다는 속설이 있지만 오해다. 하지만 임상시험에 따르면 식초를 마시고 탄수화물을 먹은 그룹, 물을 마시고 탄수화물을 먹은 그룹 모두 식사 후 혈당 변화 차이가 없었다. 고기동 교수는 "탄수화물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빠르게 흡수돼서 당을 빠르게 올리는 게 나쁜 것"이라며 "나물류처럼 식감이 거칠고 맛이 쌉싸름하더라도 씹는 재미를 느껴보고, 샐러드의 새콤한 맛도 즐기도록 혀를 다양한 미각에 길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임종철 디자인기자 shinnara@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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