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3518건 관여한 나치 전범, 내 증언으로 징역형... 그게 정의"[인터뷰]
'작센하우젠 수용소 해방' 78주년 맞아 본보 인터뷰
"달리기가 유일한 낙... 전범 얼굴 익혀 결정적 증언"
94세 노인은 15세 소년 때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거의 80년 전이지만, 역사학자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보다 더 잔인했던 곳'으로 꼽는 작센하우젠 수용소에 갇혔던 '그때 그 순간'은 여전히 또렷이 뇌리에 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선 당시 독일 나치가 저지른 잔혹한 범죄에서 살아남은, 에밀 파르카스의 이야기다.
이스라엘 국적인 파르카스는 1929년 슬로바키아 북서부의 질리나에서 태어났다. 당시만 해도 체코슬로바키아의 도시였던 이곳에서 그는 구두를 만드는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5남매 중 막내로 자랐다. 운동을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독일 나치 정권은 평온했던 파르카스의 삶을 산산조각 냈다. 겨우 12세였던 1942년 강제 노역에 동원된 것이다. 주변 지역의 여러 강제수용소를 거친 끝에 그는 1944년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작센하우젠 수용소로 보내졌다. 진정한 악몽의 시작이었다.
작센하우젠 수용소는 독일 수도 베를린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약 30㎞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시절 최대 규모의 수용소로, 이곳에 세워진 기념관에 따르면 1936년 설립 이후 독일이 패전한 1945년까지 20만 명이 수감됐다. 당초 정치범 수용소였던 만큼 나치 정권에 반대하던 사람들은 물론, 독일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고 규정한 유대인과 동성애자 등도 '아무 죄 없이' 갇혔다. 그중 절반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일하다 죽고, 굶어 죽고, 병에 걸려 죽었다. 학대와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됐다. 총살도 빈번했다.
'119512'.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렸던 파르카스는 참혹한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100세를 바라보는 지금, 그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모든 것을 법정에서 증언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제는 몇 명 남지 않은 강제수용소 생존자이기에, 그의 말은 나치 전범에게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작센하우젠 수용소 해방'(1945년 4월 22일) 78주년을 맞아 23일(현지시간) 한국일보와 만난 그는 "전쟁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죗값을 받게 하는 게 정의이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게 나의 의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눈물 맺힌 채 인터뷰… "시신 10구 매달린 모습도 봐”
파르카스와의 인터뷰는 작센하우젠 수용소 안 기념관에서 이뤄졌다. 나치 군인 제복 등 전시 물품을 둘러보던 순간, 울분과 슬픔이 90대 노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1944년 처음 이곳에 올 때 기차를 탔던 기억이 난다. '사람용'이 아니라, '동물용' 기차였다"며 입을 뗐다.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수용소의 첫인상은 더욱 끔찍했다고 한다. "도착했더니, (정문 앞에) 시신 10구가 매달려 있었어요. 군인 중 누군가 우리를 향해 '말을 잘 들어라. 안 그러면 이 시체들이 너희의 미래가 될 것이다"라고 소리쳤죠."
운동이 유일한 낙이었다.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운동장에서 뛰었다. 이렇게 운동하는 사람은 파르카스밖에 없었다. 경비원들은 그를 바짝 감시했고, 그는 경비원들 얼굴을 머리에 새겼다. 달리기가 70여 년 후 경비원의 죗값을 치르게 할 결정적 증거가 되리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파르카스는 체력과 운동신경이 좋다는 이유로 '신발 특공대'에 배치됐다. 군화를 만드는 곳이었다. "군인이 딱딱한 신발을 신으면 안 되므로, 먼저 신어서 부드럽게 해야 했습니다. 매일 오전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30~40㎞를 걸었어요." 그는 "누군가 걷다 쓰러지면, 총살당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두세 달 정도 일한 뒤, 독일 내 다른 수용소로 옮겨졌다. 이듬해 독일 패전과 함께 자유를 얻은 파르카스는 이스라엘로 건너가 정착했다. 그러나 끔찍한 과거에서 벗어나는 건 쉽지 않았다. 나치 군인에 의해 사망한 누나와 두 형, 누나의 한 살배기 딸을 떠올리며 끊임없이 괴로워했다.
잊을 수 없고, 잊히지 않는 기억들… "끝까지 증언"
파르카스는 가해 사실을 명확히 증언하는 게 정의를 세우는 일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그래서 2021년 작센하우젠 수용소 경비원, 현재 102세인 요제프 쉬츠의 재판에 증인으로 섰다. 쉬츠는1942~1945년 경비원으로 일하며 수용소 내에서 자행된 3,518건의 살인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혐의를 받았다.
한때 공포의 대상이었던 경비원을 불과 몇 m 앞에서 마주한 파르카스는 외쳤다. "매일 아침 달리는 저를 보셨죠? 당신은 제가 부르던 노래를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이제는 용기를 내 사과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 쉬츠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결국 지난해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나치 전범 중 최고령 처벌 사례다.
파르카스는 재판 결과를 듣고 "임무를 완수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계속 증언대에 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건강 관리'도 하나의 의무로 여기는 듯했다. "100세까지 여섯 해가 남았어요. 저는 지금 나치 전쟁범죄의 몇 명 안 되는 증언자입니다. 정말 건강하게 살 겁니다.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아요."
오라니엔부르크(독일)=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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