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억제'..협조와 부담 사이[광화문]

배성민 기자 2023. 4. 25.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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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20일 오전 서울 성북구 안암로 고려대 학생회관 내 식당에서 ‘천원의 아침밥’을 구매하기 위해 줄 서 있다. ‘천원의 아침밥’은 방학 기간을 제외한 학기 중 평일에 교내 학생식당(학생회관 식당, 애기능생활관 식당) 두 곳에서 진행된다. 1학기 시행은 종강일인 6월 21일까지, 2학기는 9월 1일부터 12월 21일까지 계속된다. 2023.3.2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억' 소리나던 물가가 조금은 주춤해졌다. 지난해 7월 6.3%까지 뛰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비)이 점차 둔화해 지난달(3월) 4.2%까지 내려온 것이다. 잡혔다고 볼수만은 없지만 기저효과에 더해 '협조'와 '억제' 등 여러 수단이 다양하게 동원됐다.

몇가지 사례를 보자. 먼저 서민의 술이라는 소주.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2월 국회 답변을 통해 "(주류세 등) 세금이 조금 올랐다고 주류 가격을 그만큼 또는 그보다 더 많이 올려야 되느냐에 관해서는 우리가 업계와 대화를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소주업체를 둘러싼 상황은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특히 소주의 주요 원료인 주정은 18일부터 평균 9.8% 인상됐다. 협조가 어려워질 때 급격한 가격인상과 사재기 위험마저 커질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역점을 두고 있는 천원의 아침밥(학식) 사업도 뜯어보면 복잡하다. 식대 부담으로 아침을 건너뛰는 많은 대학생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고, 쌀 소비도 촉진한다는 명분은 좋다. 하지만 5000 ~ 6000원 아침 식재료비에서 정부 지원은 1000원으로 학생이 1000원을 부담하고, 나머지(3000 ~ 4000원)은 대학이 부담해야 한다. 재정이 탄탄하거나 동문들이 부담을 나눠질수 있는 곳은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김밥(또는 삼각김밥), 컵라면(또는 생수)을 내놓는 곳도 있다. 오전 8시 전후부터 시작되는 아침밥 준비를 위해서 2시간은 일찍 나와야 하는 식당 직원들도 고통 분담을 요구당할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21일에는 외식 프랜차이즈업계를 대상으로 한 농림축산식품부의 물가 안정 간담회가 열렸다. 커피·햄버거·치킨업체 등이 주된 대상이다. 이 자리에서 담당 국장은 "모두가 어려운 시기이지만 업계에서 당분간 가격인상을 자제하는 등 밥상물가 안정을 위해 최대한 협조해 달라"고 말했다. 밀가루, 식용유, 커피 원두 등 주요 식재료 가격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당장 가격인상을 단행하기는 쉽지 않을 테지만 업체들의 속내도 복잡해졌을 터. 이들 본사는 여차하면 직원 인건비나 배달대행업체, 가맹점주들과의 힘겨루기로 소나기를 뚫고나가려 할 것이다. 직원들이나 배달원, 점주들은 가랑비에 이어 서서히 굵은 빗줄기를 견뎌야 한다. 콜수를 더 챙겨야 하는 배달 오토바이의 난폭운전이 심해지고 버거나 치킨 무게가 가벼워질수도 있다.

협조의 대상으로 정부가 가장 공들이는 건 전기.가스요금이다. 국민 모두에게 가장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한전 등의 자구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보류시킨 상태다. 지난해 32조원 손실에 이어 올해도 10조원 이상 적자가 예상되지만 초우량기업(AAA등급) 한국전력은 이런 상황에서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조단위로 회사채를 찍어낸다. 한전채 잔액은 지난해 3월 말 기준 39조6200억 원이었으나 올해 3월 말 기준 68조300억 원으로 71.7% 증가해 가히 자금시장의 블랙홀로 불린다. 자연스레 일반 우량 회사채도 시장에서 소화되지 못하는 금융시장 왜곡이 나타난데다 은행 등마저 영향권에 들면 대출금리 상승까지 부추긴다. 전기요금을 아꼈지만 대출금과 이자 상환에 허리를 못 펼지 모른다.

추경호 부총리는 "물가 안정은 당국의 노력, 또 정책도 중요하지만 각계 협조가 굉장히 필요하다"고 했다. 대화와 협조가 내세워졌다. 물가 급등의 고통을 나눠지자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독과점 기업의 가격담합, 은행의 과도한 예대마진, 한전 등 공기업의 자구노력 점검도 필수고 에너지바우처,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의 의견조율 등 챙길 것들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며 내세운 '협조' 요구의 짐은 결국 서민들이 짊어지기 때문이다.

배성민 에디터(부국장)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배성민 기자 baesm1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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