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 역전세난… “집주인 대출 확대해 ‘죽음의 계곡’ 넘게 해줘야”
전셋값 하락으로 전세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속출하면서, 일부에선 전세 사기 피해자뿐 아니라 이들에 대한 정부 지원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평생 모은 보증금을 잃을 수 있다는 점에서 피해의 결과는 전세 사기와 다를 바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개인 간 사적 거래에서 생긴 손해를 정부가 보전해 주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이 많다. 전문가들은 “전세 사기나 역전세 피해 모두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면 시장이 왜곡되고 주식, 코인 등 다른 종류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논란도 피할 수 없다”며 “단기적 금융 지원과 규제 완화를 통해 임대인과 세입자가 ‘죽음의 계곡’을 넘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조언한다.
◇2004년 역전세난의 데자뷔
역사적으로 주택 시장에서 역전세 대란이 벌어졌던 것은 이번 사태를 포함해 총 3번이다. 1차는 외환 위기 여파로 전셋값이 18% 급락했던 1998년이며, 2차는 카드 대출 부실 사태가 터졌던 2003~2004년이다. 1998년은 IMF 구제금융이라는 외부 충격이 주요 요인이었다. 반면 전셋값이 몇 년간 급등한 상태에서 거시경제 충격이 겹쳤다는 점에서 최근 상황은 2003~2004년의 2차 충격과 비슷하다.
2003~2004년 역전세는 수급 불일치가 주원인이었다. 김대중 정부 부동산 부양책의 영향으로 2000~2002년 사이 전셋값이 폭등하자, 빌라·오피스텔 신축 붐이 일어났다. 하지만 거품이 잔뜩 낀 가격 탓에 수요는 없었다. KB국민은행의 전세수급지수는 2002년 2월 186에서 2004년 12월 77까지 떨어졌다. 이 지수는 수요와 공급의 상대적 우위를 조사해 0~200 사이 숫자로 나타낸 것으로, 작을수록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쳐난다는 의미다.
‘2차 역전세’는 시장 자정(自淨) 기능으로 해결됐다. 2년간 전셋값이 급락하자 수요는 회복되기 시작했고 서울 아파트 분양 물량은 2001년 2만6559가구에서 2003년 1만1883가구로 줄었다. 2003년 분양 물량이 입주를 시작하는 2005년부터 전세 공급이 급감하면서 전셋값 하락세도 멈췄다. 당시 역전세 해소를 위한 정부 대응은 임대인에 대한 ‘전세 보증금 환급’ 대출 정도였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과거에도 깡통주택 공공 매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시장 질서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정부 개입은 최소화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역전세도 갑작스러운 금리 인상에 따른 수급 불일치가 핵심 원인이다. 2021년 2~3%대였던 전세대출 금리가 1년여 만에 6~7%대로 치솟으면서 전세 수요가 급속히 월세로 옮겨갔고, 전세수급지수는 지난 1월 역대 최저인 61.6까지 떨어졌다.
◇퇴거 자금 대출 확대하고 전세 대출도 손봐야
전문가들은 임대인과 임차인이 이른바 ‘죽음의 계곡’을 넘을 수 있는 지원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직접 시장에 개입하기보다는 과거처럼 임대인에게 금융 지원을 확대하거나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전세 시장의 자연스러운 수급 조절을 통해 임대인과 세입자 모두 피해를 보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시급한 단기 처방으로 임대인의 ‘전세 보증금 환급’ 대출 확대가 꼽힌다. 지난 정부에서 사실상 금지됐다가 올해 3월부터 다시 허용했지만,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적용받는 탓에 소득이 적은 은퇴 세대는 이용하기 어렵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전세 시장이 침체기를 벗어날 때까지 임대인들이 버틸 수 있도록 돕는 게 세입자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 대책”이라고 말했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전세 대출이 부동산 시장의 유동성 과잉을 부추겨 역전세 충격을 극대화시킨 측면도 있다”며 “전세 대출 제도 전반을 점검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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