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방탄 이어 “송영길 청렴” 옹호… 바닥까지 간 ‘86 정치’

김경화 기자 2023. 4. 25.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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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봉투 의혹 송영길 귀국… 이재명 강성 지지 그룹 ‘개딸’, 열렬 환영
宋 “나로 인해 발생, 책임있게 해결… 모르는 사안들 많다”
“누가 돌 던질 수 있겠나” 옹호 쏟아지자 86 용퇴론 재점화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송영길(가운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이 자리엔 ‘개딸(개혁의딸)’이라 불리는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과 반대 측 2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일부는 ‘믿는다 송영길’ ‘선당후사 송영길’ 등의 손 피켓을 들었다. /오종찬 기자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프랑스 파리에서 귀국했다. 송 전 대표는 인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저로 인해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책임 있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겠다”며 “오늘이라도 저를 소환하면 적극 응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제 도착했으니 상황을 좀 파악하겠다. 제가 모르는 사안이 많다”고 말했다. 인천공항에는 이른바 ‘개딸(개혁의딸)’이라 불리는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과 반대 측 2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일부는 ‘믿는다 송영길’ ‘선당후사 송영길’‘힘내라 송영길’ 등의 손 피켓을 들고 “송영길은 청렴하다”고 외쳤다.“금의환향 같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한 86그룹 의원은 “누가 송영길에게 돌을 던지겠나”라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해당 의혹과 관련한 기자들의 물음에 일절 답변하지 않다가 “김현아 의원은 어떻게 돼가고 있어요? 몰라요?”라고 되물었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여당 전직 의원 사건을 꺼내 들며 맞대응한 것이다. 직접 허리 숙여 사과하는 등 그간 비교적 낮은 자세를 보여온 것과 달라진 모습이다.

송 전 대표의 조기 귀국으로 민주당은 일단 ‘책임지는 모습’에서 급한 불은 껐다는 분위기다. 그러면서 지도부와 86그룹을 중심으로 이번 사건을 축소하거나 정치권 전반의 관행으로 확대하는 ‘물귀신 작전’으로 가려는 흐름이 감지된다. 86그룹 핵심 의원은 “송영길과 경쟁한 홍영표·우원식 캠프에서 활동했던 의원들을 비롯해 그동안 전당대회를 직접 뛰어본 사람이라면 적어도 송영길에게 돌을 던지면 안 된다”며 “불과 지난달 전당대회를 치른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도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고 했다. 실제 의원들 사이에서 “걸린 게 죄지, 송 전 대표가 다 뒤집어쓸 문제는 아니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도 사실이다. 당내 선거에 매표(買票) 정황이 포착됐지만 “너희는 깨끗하냐”는 식의 도덕적 오만함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당 안팎에서는 “86그룹이 민주당과 한국 정치를 망치는 상황이 또 벌어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운동권 출신 86그룹은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젊은 피 수혈론’에 따라 대거 정치권에 영입됐다. 이때 영입된 이인영·우상호·윤호중 의원이 지난 6번의 총선에서 내리 공천을 받았고 각각 4차례 당선됐다. 86그룹은 지난 20여 년간 당내 지도자 그룹으로 성장하면서 일종의 기득권이 됐고, 총선 등 선거를 앞두고 혁신이 화두가 될 때마다 ‘86 용퇴론’이 제기돼왔다.

86그룹은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체급을 키웠다. 전대협 3기 의장 출신인 임종석 전 의원이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았고, 우원식·홍영표·이인영·김태년·윤호중 의원이 차례로 ‘여당 원내대표’가 됐다. 이인영(통일)·유은혜(사회부총리)·김현미(국토)·박범계(법무)·조국(법무) 등 국무위원도 두루 맡았다.

명실공히 중심 세력이 된 이들은 그간 민주당 주변에서 불거진 조국 사태,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이어 이번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까지 엄호·비호하는 입장에 주로 서왔다. 도덕성을 무기로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독점했던 이들은 자신들에 대한 도덕성 문제에선 한없이 너그럽거나 ‘내로남불’의 이중성을 보여줬다.

조국 사태 당시 여권 핵심부는 조국 사태 언급을 피하는 방식으로 편을 들어줬다. 당시 이인영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연설에서 조국 사태로 촉발된 ‘공정’을 화두로 내세우면서도 사과나 유감 표명은 일절 하지 않았다. 김종민 당시 최고위원(83학번)은 “조국의 온 가족을 멸문(滅門) 지경까지 몰아붙이고 있다”고 했고, 최강욱 의원(86학번)은 “내 인생을 걸고 지켜주고 싶다”고 했다. 조국 사태 여파로 이에 침묵한 86그룹을 겨냥한 퇴진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지난 대선 때 86그룹 핵심 인물들은 대부분 경선 캠프에는 참여하지 않고, 이재명 후보가 확정된 뒤 선대위에 참여했다. 당 관계자는 “20년 이상 정치를 해왔지만 대선 주자는 배출하지 못한 86그룹이 ‘이재명 대세론’에 편승하는 것으로 다시 주류의 길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선대위 총괄본부장을 맡은 우상호 의원은 대선 패배 후 비대위원장을 지냈고, 경선 때 비서실장이었던 박홍근 의원은 직후 원내대표가 됐다. 88학번인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 대표의 체포 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오늘은 야당 대표 구속을 위해 정권이 사법 살인을 시도한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박범계 의원(85학번)은 이 대표 소환 통보에 “함께 싸우자. 이러다 다 죽겠다”고 했었다. 당의 주요 고비마다 86그룹이 앞장서 방탄과 방어에 앞장선 것이다.

이번 돈 봉투 사건에도 86그룹의 온정적 시선이 당 자체 진상 규명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사안마다 86그룹의 반응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86그룹을 중심으로 한 중진들은 이번 사건의 심각성에 대해 상대적으로 나이브하게 접근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민석 정책위의장(82학번)은 전날 페이스북에 송 전 대표에 대해 “아직 집 없는 드문 동 세대 정치인, 물욕이 적은 사람”이라고 추켜세웠고, 서영교 최고위원(83학번)은 이날 당 최고위 회의에서 “김기현 당대표가 민주당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스스로를 되돌아보라”고 말했다. 서 최고위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현아 전 의원 사건의 녹취는 왜 하나도 보도되지 않나”라며 “압수 수색할 때 왜 언론에 이야기하지 않는지 너무나 불공정하다”고 했다.

당내에서도 86세대의 2선 후퇴를 유도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지난 대선 땐 ‘3선 초과 연임 금지’와 같은 정치 혁신안과 ‘86 용퇴론’이 나왔지만, 무위에 그쳤다. 당시 3선 초과 연임 금지를 주장했던 선대위 혁신위 인사들은 당 중진들로부터 “그런 식으로 정치하면 안 된다”라는 질타를 받았다고 한다. 이재명 대표 역시 ‘3선 초과 연임’ 방침을 채택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 땐 1996년생 박지현 당시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86 용퇴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선거를 앞두고 논의할 내용은 아니다”라고 반대하는 윤호중 당시 공동비대위원장(81학번)과 고성을 내지르며 싸우기도 했다.

민주당이 자체 조사를 꺼리는 데에는 86세대 내에서 공유되는 특유의 ‘동지 의식’도 작용하고 있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말이다. 86세대에 속한 한 초선 의원은 “성폭력 사건처럼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한 사건도 아닌 상황에서, 우리가 동료 의원을 데려다 놓고 ‘자백하라’고 할 수도 없다”고 했다. 운동권 출신 초선 의원도 “동료가 선거에 나가면 밥도 사고 용돈도 주고 십시일반 돕는 게 우리 문화”라며 “이런 식이면 앞으로 당내 선거는 어떻게 하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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