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中 봉쇄에 韓기업 희생 요청하는 美, 피해 보전 전제돼야
중국 정부가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중국 내 D램 판매를 금지할 경우,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그 빈자리를 채우지 말아 달라는 미 정부 요청이 있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했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의 입장 표명은 없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중 이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반도체 압박을 가하고 중국이 미 기업을 상대로 반격하자, 다시 미국이 동맹국 기업을 대중 봉쇄에 동원하려는 것이다.
미측 요구가 공식화되면 중국의 연쇄적 반응이 나타날 것이다. 중국은 지난 2016년 주한 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한국 제품 불매, 한국 대중문화 금지 등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경제 보복을 가했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의 대중 봉쇄 정책에 참여한다면 중국이 또다시 보복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반도체 기업들은 최악의 반도체 불황을 겪으면서 다른 한편으론 지뢰밭 같은 미국 반도체 지원법에 맞추느라 고통받고 있다. 여기에 중국의 보복까지 겹친다면 사면초가에 몰릴 수 있다. 반도체 매출이 급감한 삼성전자는 올 2분기에 영업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SK하이닉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두 회사는 메모리 반도체의 40~50%를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법으로 중국 내 공장의 업그레이드가 제한된 상황에서 중국 내 생산·판매에 추가적 규제가 가해지면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자국 내 투자 기업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한다며 영업비밀 노출, 초과이익 환수 등 과도한 요구 조건을 걸어 동맹국의 불만을 사고 있다. 만약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가 금지되고 여기에 한국 기업들이 동참해 손실을 볼 우려가 있다면, 이를 보상하는 충분한 인센티브를 미국이 제공하는 것이 당연하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산업·기술 분야로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기업들이 일방적으로 피해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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