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보트피플 3세, LPGA 챔피언으로
“할아버지 덕분에 내가 여기에 있다”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셰브론 챔피언십(총상금 510만달러) 우승자 릴리아 부(26·미국)는 말했다. 부는 24일 미국 텍사스주 더 클럽 앳 칼턴 우즈(파72·6824야드)에서 열린 시즌 첫 메이저 대회 4라운드를 선두에게 4타 뒤진 공동 11위로 출발해 연장전 끝에 역전 우승했다. 지난 2월 혼다 타일랜드에 이어 LPGA 투어 통산 두 번째, 메이저 대회 첫 우승이다.
부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모는 베트남 출신이다. 외할아버지 딘 두씨는 1982년 보트 한 척에 의지해 가족들과 공산 치하 베트남을 탈출해서 미국에 왔다. 부는 3년 전 세상을 떠난 외할아버지를 이날 경기 내내 떠올렸다고 했다. “사소한 모든 것 하나하나에 화가 났지만, 스스로에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너와 함께 있어. 이렇게 속상해하면, 마음 자세를 가다듬지 않으면, 할아버지가 정말 실망하실 거야.’”
1982년 외할아버지는 몇 달간 사라졌다가 가족 앞에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시골에 몰래 숨어 혼자 배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밤, 외할아버지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날 때가 됐다”고 아내와 어린 자녀들에게 말했다. 한참을 달려 숲을 통과하자 54명이 탈 수 있는 배가 나타났다.
온 동네 사람들을 모아 할아버지가 만든 배에 태웠다. 배가 출발하자 해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헤엄쳐 올라탔다. 결국 82명이 탑승한 배는 이틀 만에 물이 새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도움을 간절히 바라며 구조탄을 쐈고, 기적적으로 근처를 지나던 미 해군 군함이 발견해 전원 구조됐다.
7세 때 골프를 시작한 부는 UCLA에 진학, 세계 아마추어 1위에 오르는 등 맹활약했다. 그러나 LPGA 투어에 데뷔한 2019년 한 차례 컷 통과에 그치며 부진했다. 2020년 2부 투어로 떨어져 골프를 그만둘 생각까지 하고 있을 때, 심장 상태를 점검하려고 입원한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다. 할아버지는 “최선을 다해 경기하라”고 당부했고, 그로부터 며칠 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부는 2021년 2부 투어에서 3승을 거둬 2022년 1부 투어에 복귀했다. 이날 셰브론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부는 17번(파3), 18번홀(파5) 연속 버디를 잡으며 먼저 경기를 마치고 대기했다. 에인절 인(25·미국)이 최종 합계 10언더파 278타 동타를 이루면서 18번홀에서 연장전을 치렀다. 인의 두 번째 샷이 물에 빠졌고, 부는 침착하게 4m 버디 퍼트를 넣어 우승 상금 76만5000달러(약 10억2000만원)를 받았다. 현장에서 지켜보던 부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쏟았다.
부는 전날 17번홀 연못에서 뱀 한 마리를 봤다면서도 이날 18번홀 옆 호수에 풍덩 뛰어드는 세리머니를 했다. 이 대회는 작년까지 캘리포니아주 미션힐스 컨트리클럽에서 열리다가 올해 처음 텍사스주로 장소를 옮겼다. 미션힐스 18번홀 연못에 뛰어드는 우승 세리머니는 1988년부터 이어진 전통이었는데, 새로운 골프장에서도 이어질지 관심을 모았다. 수영장처럼 관리되던 미션힐스 연못에 비해 호수 물은 탁했고 날씨도 쌀쌀했다. 부는 “기분이 좋고 아드레날린이 솟아서 뛰어들게 됐다”며 “할아버지가 오늘의 나를 본다면 ‘너의 그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았구나’라고 말씀하실 것 같다”고 했다. 한국 선수로는 김아림(28)과 양희영(34)이 공동 4위(8언더파), 고진영(28)이 공동 9위(7언더파)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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