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 칼럼] 1934년 노스다코타와 2023년 한국
현 당대표 리스크에 전 당대표 리스크까지 겹친 더불어민주당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아마도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의 말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는 전당대회에서 돈봉투가 오가는 것이 “오랜 관행”이고 “올 게 왔구나, 그런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에 머물던 송영길 전 대표는 처음에는 이정근씨의 개인 비리이고 본인은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결국은 기자회견 후 귀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1억원에 가까운 큰돈을 누군가가 그를 위해 쓰고도 본인에게는 알려주지도 않았다는 이 미담 같은 이야기는 이재명 대표가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몰랐다는 만큼의 신빙성을 준다.
송 전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정치적 책임을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스스로 인정했듯이 그가 질 수 있는 정치적 책임은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비장했지만 별 내용은 없는 회견이었던 셈이다. 그의 회견을 두고 민주당 내에서는 “역시 큰 그릇”이라거나 “영원한 민주당 대표” 같은 정신승리가 쏟아져나왔다. 당대표가 사과를 했음에도 당에서는 검찰의 기획수사라는 주장도 나온다.
1934년 미국 노스다코타주 대법원은 주지사인 윌리엄 랭거를 파면하고 부지사인 오울 올슨이 직위를 승계하도록 명령했다. 랭거는 주공무원과 연방공무원의 급여를 조작해 그들의 월급에서 자동으로 자신이 소속된 정당의 계좌로 후원금이 이체되도록 만든 불법 정치자금 조성 혐의로 징역 1년6개월과 벌금 1만달러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와일드 빌” 혹은 “노스다코타의 안하무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랭거는 법원의 명령 따위를 호락호락 따를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즉시 노스다코타주의 독립과 계엄령을 선포했고, 주청사에 바리케이드를 친 채 주방위군의 출동을 명령했다. 법원에 의해 주지사직을 승계하게 된 올슨도 법적인 주지사의 자격으로 랭거를 진압하기 위해 주방위군에 출동을 명령했다. 졸지에 상반된 두 개의 명령을 받게 된 주방위군 사령관 얼 살스는 고민에 빠졌다.
만약 그가 랭거의 명령을 따른다면 연방군이 개입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내전을 의미했다. 살스는 고심 끝에 올슨의 명령을 따르기로 했고, 다행히 내전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랭거의 맹목적 지지자들은 “우리는 랭거를 원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이어갔고 폭동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 뻔해 보이는 사건의 결말은 그리 뻔하지 않았다. 그것이 뻔하지 않게 되는 과정에는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비슷한 점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랭거는 주지사직에서 쫓겨난 뒤에도 온갖 주장을 펼치며 소송전을 이어나갔다. 그를 파면한 재판은 포울리스 레이니어 검사가 기소하고 앤드루 밀러 판사가 판결했는데, 그는 자신은 결백한데 정적들인 레이니어와 밀러가 정치보복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재판부 기피신청을 했다. 녹취까지 나온 명백한 사실들을 눈앞에 두고도 정치보복과 기획수사를 주장하는 한국의 상황을 연상케 한다. 랭거는 공무원 급여에서 정치자금을 편취하는 것이 오랜 관행이라고도 주장했다.
실제로 주공무원들은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에 급여를 빼앗긴 소수의 연방공무원들이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면 그냥 묻힐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잘못된 관행들이 만연해 있었고 그것이 본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된다는 점에서도 한국의 상황을 연상시킨다. 1930년대 대공황의 와중에 노스다코타 농민들은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랭거는 농민의 이익을 지켜준다는 포퓰리즘 전략으로 맹목적 지지층을 키워냈다. 코로나19 이후 어려워진 경제를 빌미로 포퓰리즘 정책을 양산해온 민주당의 이력과 별로 다르지 않다.
결과적으로 랭거는 항소심에서 승리했을 뿐 아니라 1937년 치러진 주지사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고, 1941년에는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상원 자격심사위원회는 사건을 조사한 결과 그가 ‘도덕적 파렴치범’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상원 입성을 거부했지만 랭거는 또다시 상원 전체회의에서 이 결론을 뒤집는 데 성공했다. 그는 1959년 사망할 때까지 상원의원을 지냈고 심지어 상원 건물에 묻히기까지 했으니 역사상 가장 성공한 파렴치범이 된 셈이다. 송 전 대표의 귀국을 두고 ‘자생당생(自生黨生)’이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민주당은 이런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것일까. 과연 2023년 한국은 1934년 노스다코타를 재현할 수 있을까.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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