횟집서 닭발 먹는 손님들 “외부 음식 괜찮대요”
‘술·참치 제외 외부 음식 반입 가능합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에 있는 형제참치정육점 메뉴판에 쓰여 있는 문구다. 테이블 5개가 전부인 이 식당은 참다랑어는 100에 2만~4만원, 생연어와 눈다랑어는 8000원에 판다. 반찬은 초생강·단무지·김이 전부다. 대신 손님들은 외부 음식을 사 들고 가 먹을 수 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 손엔 인근 시장에서 산 닭발·껍데기, 회를 먹지 못하는 아이를 위한 김밥 봉지가 들려 있곤 한다. 식당 사장은 “참치 다루는 실장님 인건비가 최소 월 380만원인데 참치만 내기에도 바쁘고, 다른 음식을 하려면 아주머니를 따로 고용해야 하는데 인건비가 부담스러워 아예 외부 음식을 받기로 했다”며 “참치 매출이 줄어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게 낫다”고 했다.
음식점과 주점이 철저히 금기시했던 ‘외부 음식’ 반입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식사나 안주 메뉴가 버젓이 있는데도 외부 음식도 환영이라는 마케팅까지 펼친다. 이런 식당에선 배달 음식까지 시켜 먹을 수 있다. 외식업계에서는 “인건비, 식재료비, 연료비 등 모든 물가가 오르자 고안해 낸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말한다.
◇“음식 배달시켜 드세요”
외부 음식 허용이 가장 활발한 곳은 바(bar) 같은 주점이다. 인건비를 최소화하려는 유형이다. 조리가 필요 없는 크래커나 통조림 같은 간단한 안주만 팔고, 조리 공간과 도구, 인력을 따로 둬야 하는 튀김·볶음 같은 식사·안주는 고객이 바깥에서 사서 오거나 아예 배달시켜 먹도록 하는 것이다. 서울 중구 인현시장 인근에 있는 ‘롱굿바’ 메뉴판에는 ‘외부 음식 반입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와 배달 음식 업체 주소까지 적혀 있다. 냄새가 심하거나 국물 있는 음식이 아니면 맘대로 음식을 시켜 먹으라고 권장한다. 가게 사장은 “혼자 음악 틀고, 칵테일을 제조하는데 음식까지 만들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서울 사당역 인근의 재즈바 ‘엔트리55′와 서울대 인근 ‘스탠딩 히토리’, 경기도 부평시 ‘디지펍’ 등도 고객이 음식을 외부에서 사 와 먹을 수 있게 한다.
음식 메뉴를 다양화하려는 방법으로 외부 음식을 활용하기도 한다. 호불호가 강한 메뉴를 팔거나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 음식의 경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음식을 고객이 가져 오도록 하는 것이다. 경기도 파주의 장어집 갈릴리농원은 민물 장어만 판다. 밥이나 김치, 국거리까지 손님이 챙겨 오는 게 원칙이다. 음식을 미리 챙겨오지 못한 손님들을 위해 식당 바로 옆에 작은 마트까지 운영한다. 서울 압구정의 횟집 ‘피쉬스토리’도 회와 해산물, 음료·주류만 팔고 식사·국물은 밖에서 사 오게 했고, 속초 중앙시장의 일부 대게·홍게 식당도 ‘외부 음식 반입 가능’이라고 적은 푯말을 걸어놓았다.
이철 한국외식업중앙회 국장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도 크지만 식재료비와 가스비가 오르면서 다양한 반찬과 메뉴를 만들기 위해 식자재를 다양하게 갖추거나 화구를 여러 개 쓰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며 “일할 사람 구하기도 어려워지면서 작은 식당이나 주점들을 중심으로 이런 트렌드가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골프장 클럽하우스까지 외부 음식 가능
사소한 간식까지 외부 음식 반입이 철저히 금지됐던 골프장까지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 고객 유인을 위한 일종의 마케팅 수단이다. 그동안 대부분 골프장은 식중독 같은 위생 문제를 내세워 외부 음식을 금지해 왔다. 스카이72 골프장을 재개장한 인천의 ‘클럽72′는 이달 4일 “소풍 오듯이 도시락 가져오셔도 됩니다”라는 공지를 내보냈다. 골프장에 외부 음식을 허용한 것이다. 고객들은 클럽하우스에서 판매하는 2만5000원짜리 아침 식사를 먹거나 자신이 가져온 음식으로 끼니와 간식을 해결할 수 있다. 골프를 치는 중간에 간식 등을 사 먹는 그늘집도 자판기로 간소화했다. 클럽72 관계자는 “특히 주부나 젊은 고객들을 중심으로 좋은 반응이 나오고 있다”며 “골프장 이용료가 비싸다는 지적이 많은 가운데 접근성을 높이려고 시범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들이 어린 자녀를 데리고 즐겨찾는 키즈카페에서도 외부 음식을 허용해 부담을 낮춰주는 곳이 등장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의 무인 키즈카페 ‘히플라운지 한남’과 서울 역삼동 키즈카페 ‘눈빛사’ 역시 스낵바를 이용하는 대신 음식을 가져오거나 배달시킬 수 있게 하고 있다. 자녀 생일 파티나 가족 모임 수요를 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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