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떨고 있는 바이킹의 후예들
“핀란드가 최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31번째 회원국이 됐다. 조만간 스웨덴을 32번째 회원국으로 환영하길 고대한다. 동맹 튀르키예와 헝가리가 스웨덴의 가입을 비준해주길 바란다.”
미국 국방장관으로 23년 만에 스웨덴을 찾은 로이드 오스틴 장관이 지난 19일 팔 존슨 스웨덴 국방장관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존슨 장관은 “우리의 신속한 나토 가입을 지지하는 미국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나토 가입 신청 1년이 다 되도록 진전이 없는데 대한 스웨덴의 불안감과, 위로 외에 해줄 게 없는 미국의 무력함이 드러난 자리였다.
스웨덴은 1814년 이래 200년 넘도록 ‘평시 비동맹, 전시 중립’ 노선을 견지해온 대표적인 중립국가다. 그 근간이 지난해 뿌리째 뽑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안보 불안감이 커지자 전쟁 발발 석달 만인 작년 5월 이웃 핀란드와 나토 가입을 전격 선언했다. 대다수 나토 회원국들이 환영하며 가입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듯했다. 그러나 핀란드가 이달 초 나토의 새 식구가 된 반면 스웨덴은 언제 가입할 수 있을지, 가입이 가능할지조차 불투명하다. 스웨덴에서는 현재 미국·영국 등 6국이 참가한 군사 훈련 ‘오로라 23′이 열리고 있다. 최근 25년간 스웨덴에서 열린 훈련 중 최대 규모다. 스웨덴의 안보 불안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유럽을 호령하던 바이킹의 후손이자 북유럽의 최강국 스웨덴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스웨덴은 중립을 표방했지만, 전후 인권·군축·평화정착 분야의 외교에 주력하며 국제 사회에 영향력을 키웠다. 빈곤국을 돕고, 교전을 중재하고, 독재정권에 쓴소리를 하며 신뢰와 존경을 받아왔다.
그 ‘스웨덴식 외교’가 나토행 발목을 잡고 있다. 튀르키예는 자국이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해온 쿠르드족 단체를 스웨덴이 비호하고 있다며 처벌을 요구해 왔다. 이 문제 해결이 지지부진한 사이 스웨덴 주재 튀르키예 대사관에서 이슬람 경전을 불태우는 반튀르키예 시위까지 벌어지자 튀르키예는 더욱 격앙했다. 헝가리도 스웨덴의 일부 정치인이 자국의 민주주의가 퇴보했다고 비판한 점을 문제 삼았다.
뼈아픈 건 핀란드의 ‘배신’이다. 두 나라는 모든 가입 절차에 있어 함께 발맞추기로 했지만, 스웨덴의 상황이 걸림돌이 되자 올해 초 핀란드는 스웨덴을 두고 단독 가입 절차에 나섰다. 나토에 가입하기 위해선 기존 회원국들의 만장일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스웨덴은 자신이 쓴소리했던 나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스웨덴의 상황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국가 위기에서 무엇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냉정하고 신속하게 판단하고, 좌고우면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자국의 오랜 외교유산을 버리고 ‘진영’을 택했다. 거센 우크라이나발 파고(波高)에 직면해 있는 한국도 참고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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