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내 돈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
SVB파산, 뱅크런 관심…새마을금고 관리 통합을
예보 한도 개선 서둘러야
얼마전 만난 지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새마을금고에 넣어 둔 예금을 인출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예금자보호가 가능한 금액 내에선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답했으나 뒷맛은 영 개운치 않았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제2금융권에 넣어둔 예금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문득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떠올랐다. 서민에게 금융 서비스를 하는 저축은행 업계가 2000년대 초반 부동산 시장에 훈풍이 불면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에 진출했다. 부동산 PF는 부동산 개발사업을 진행할 때 필요한 자금을 대출해주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일부 건설사가 부도 났고 PF 대출이 늘어난 저축은행이 위기를 겪게 됐다. 경제 위기가 닥쳤다는 말이 뉴스에 나왔지만 대다수는 설마 내가 거래하고 있는 은행이 문을 닫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2011년 2월 17일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하면서 초량동 본점으로 뛰어간 부산 시민이 많았다. 이후 정상영업을 하던 90여 개 저축은행에서도 예금을 인출하는 뱅크런이 일어났다. 결국 31개 저축은행이 구조조정을 당했고 27조 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12년 전 이런 사태를 겪은 금융 소비자들은 최근 제2금융권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악화하면서 PF 대출 부실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17조 원에 육박하며 역대 최대로 늘었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시중은행은 PF 대출을 자제했으나 제2금융권은 부동산 호황 국면에서 PF 대출을 크게 늘렸다. 새마을금고도 비슷한 상황이다. 물론 금융감독원은 금융권의 PF 대출 연체율이 높지 않아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다르다. 오는 6월 PF대출 브리지론 만기가 대거 돌아오면서 부실 위험이 커질 것으로 우려한다.
지난 12일 ‘OK저축은행과 웰컴저축은행에서 1조 원대 PF 결손으로 지급정지 예정이니 잔액 인출이 요망된다’는 허위 정보지가 나돈 것도 이런 불안감을 이용한 것이다. 당시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받은 친구는 실제로 저축은행 파킹통장에서 제1금융권으로 예금을 옮겼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뱅킹으로 금세 돈을 빼고 나니 바로 금융감독원과 저축은행중앙회가 사실이 아니라는 발표를 했다. 금융당국의 발 빠른 대처가 아니었으면 더 많은 예금주가 돈을 뺐을지 모른다.
지난달 SVB는 미 국채 매각 손실이 알려진 후 예금자들이 스마트폰으로 앞다퉈 예금을 인출하면서 불과 36시간 만에 파산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은행 전체 입출금 거래 건수 가운데 인터넷뱅킹이 차지하는 비중은 77.7%에 달한다.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 모바일 뱅킹시스템을 고려하면 위기시 뱅크런 속도가 더 빠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가짜뉴스에 이끌려 너도나도 예금 인출에 나서면 대형은행 파산이 며칠이 아닌 몇 시간 내 벌어질 수 있다. 과거에는 고객들이 은행 창구로 달려갔지만 이제는 휴대전화나 PC로 바로 예금을 인출할 수 있다. 갑자기 인출 요구가 쏟아지면 건전한 금융기관도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오죽하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국에서 SVB와 같은 은행 파산 사태가 재연될 경우 미국보다 예금인출 속도가 “100배는 빠를 것”이라고 언급했을까 싶다.
금융당국은 가짜 뉴스 확산을 막기 위해 실시간 모니터링 및 신속 대응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사후 대응이 거의 불가능한 새로운 유형의 위기인 만큼 사전 예방 체계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금융업계도 스스로 PF 대출과 가계·기업 대출 부실 등 리스크 관리와 건전성 강화로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전문성 있는 부처로 일원화할 필요도 있다. 농협·수협·신협 등 상호금융사들이 특례 조항에 따라 금융당국의 직접적인 관리와 감독을 받는 데 반해 새마을금고는 행정안전부의 지도를 받는다. 행안부가 검사 시에 금감원에 지원을 요청할 수 있으나 금감원은 직접적인 감독 권한이 없다. 우체국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담당한다.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전문성이 있는 금융당국이 관리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서민은 0.1%포인트라도 높은 금리를 받으려고 예·적금 가입과 해지를 반복한다. 은행에 맡긴 내 돈이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도 크다. 금융업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23년째 5000만 원으로 묶여 있는 예금자 보호 한도를 높일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금융회사들이 부담하는 예금보험료가 오르면 이를 금융 소비자들에게 전가할 수 있어 걱정이다. 금융당국이 오는 8월까지 개선안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안심할 수 있는 대책을 바란다.
이은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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