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中이 마이크론 제재하면 韓이 빈자리 채우지말라”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중국의 제재를 받을 경우, 그 빈자리를 한국 반도체 기업이 채우지 말아달라고 미국이 한국에 요청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수익을 좇지 말고, 중국 비즈니스에서 명확히 미국 편에 서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한 셈이다. 한미 양국 정부는 반도체가 26일(현지 시각)로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정상회담 주요 화두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한국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 한국 대통령실과 미국 백악관의 대화를 잘 아는 소식통 4명을 인용, 미국이 한국에 이 같은 요구를 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지난달부터 국가 안보 보호를 이유로, 미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 제품에 대한 안보 심사를 실시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미국의 대중(對中) 제재에 대한 중국의 맞대응 성격으로 보고 있다.
◇미·중 갈등에 빨려 들어가는 韓 기업들
FT는 미 정부의 요청 배경에 대해 “중국이 마이크론을 미국 정책에 영향을 미칠 지렛대(lever)로 쓸 수 없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이번 사안을 잘 아는 인사를 인용해 보도했다. 중국이 미국이나 미국 기업을 상대로 어떤 경제적 압박을 가해도, 동맹이 한 몸처럼 움직여 중국이 힘을 쓰지 못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FT는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국들과 공조해왔지만, 동맹국 기업에까지 역할을 요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보도에 대해 미국과 한국 측은 모두 말을 아끼고 있다. 백악관은 구체적 내용은 언급하지 않은 채, 양국 정부가 첨단 기술 보호 노력을 포함한 국가·경제 안보 협력을 심화하는 데 ‘역사적 진전’을 이뤘다고 FT에 답했다. 본지 확인 요청에 대해 주미한국대사관은 “아는 바 없다”고 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확인하기 어렵다” “미국 혹은 한국 정부로부터 이 같은 요청을 받은 바가 없다”고 밝혔다.
한국은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중국은 한국 반도체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핵심 시장이자, 중요 생산 기지다. 삼성전자 낸드플래시 생산의 40%, SK하이닉스의 D램 생산 40%가 중국에서 이뤄진다. 한국은 반도체 기술 주도권을 쥔 미국, 거대 시장을 가진 중국과 모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미래에셋증권은 이날 “삼성, SK하이닉스에 대한 미국의 대중 메모리 제재 동참 요구에 따라 주가 변화가 예상되고, 설비투자도 보수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과 SK하이닉스의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WTO 제소 사안, 과도한 요구”
미국의 이번 요구는 그간 진행되던 반도체 보조금,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며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중국에서 10년간 생산을 5% 이상 확대하지 못하고, 중국 반도체 공장에 첨단 장비를 들이지 못하도록 한 규제에는 각각 ‘보조금 지급’과 ‘반도체는 미국의 원천기술’이란 명분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미국 마이크론이 중국에서 제재를 받았다고, 한국 기업들이 그 빈자리에서 영업하지 못하게 한 것은 명분이 없는 과도한 개입이란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사실이라면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사안”이라고 했다. 또 미국의 요청이 중국 현지에서 제품을 생산 중인 애플, 테슬라 등 미국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마이크론 반도체 공급이 끊기고, 삼성·SK하이닉스마저 공급을 못 하면 중국 반도체를 쓰지 않는 이상 제품 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연구원 연원호 경제안보팀장은 “해외 특정 기업에 특정 품목을 팔지 말라고 한 것은 매우 과한 요청이자 중국과 같은 수준의 강압적 시장통제”라며 “사실상 중국에서 사업을 하지 말란 뜻으로, 정당한 이유가 없는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한국이 꼭 들어줘야 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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