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3대 개혁 방향 잘 잡아… 장관에 힘 실어 속도 내야”

최규민 기자 2023. 4. 2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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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5명 보좌한 ‘한국경제의 산 증인’ 사공일 前 경제수석

1983~1987년까지 4년간 사상 최장기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명예이사장은 자신을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학자 출신으로 여러 정부의 핵심적 위치에서 경제 정책을 다룰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전두환·노태우 정부에서 연달아 재무장관을 지냈고,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도 여러 중책을 맡았다. ‘세계화’라는 말이 낯설던 1993년 그가 설립한 세계경제연구원도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명예이사장은 21일 본지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가 노동·교육·연금개혁 등 기본 방향은 잘 잡았지만 속도감 있는 정책 추진이 아쉽다"며 "국민과 소통을 강화하고 정책 집행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무역적자가 지속되는 등 좋지 않은 신호들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나?

“걱정스럽다.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 중국의 저성장, 반도체 수요 둔화 등 대외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은 맞는다. 하지만 대외 여건이 호전되면 우리 경제가 과거 같은 활력을 되찾을 것인가 생각하면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다. 경제가 견조하게 성장할 수 있는 저력, 즉 성장 잠재력이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 국가의 성장 잠재력은 세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노동 투입량을 증가시키거나, 투자를 많이 하거나, 국가 전체의 체제적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 투입량을 늘리는 것은 현재의 저출산 고령화 추세를 고려하면 쉽지 않다. 결국 기존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이 정부가 우선 국정과제로 두고 있는 노동시장 유연화 등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시장 개혁 필요성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만, 이번 근로시간 유연화를 둘러싼 진통을 봐도 실행이 몹시 어렵다.

“정부의 정책 집행 여건이 과거와 많이 달라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먼저 정부조직부터 제대로 가동되게 하고, 국민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물론 국회와 야당도 달라져야 한다.”

-현 정부가 노동개혁 외에도 교육개혁과 연금개혁 등을 화두로 내세우고 있다.

“아주 잘했다고 본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밖에 안 됐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속도감 있는 정책 추진이 안 보이는 것이 아쉽다. 여소야대 어려움만 탓하지 말고, 우선 대통령실과 각 부처가 긴밀히 소통하고 정책을 조율하는 체제부터 마련해야 한다. 또 정부가 제대로 작동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부처 장관들에게 인사권과 신상필벌 권한을 더 주는 등 더 힘을 실어줘야 한다.”

-한국 경제의 산증인이다. 각 정부 경제정책 중 잘한 점을 꼽는다면.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으로 국민 기초교육 제도 확립과 농지개혁을 들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 주도의 대외지향적 개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한 것을 첫째로 꼽을 수 있다. 물가 안정에 기초한 전두환 정부의 경제 안정화 시책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 이게 성공 못했으면 초기 산업화 성과가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노태우 정부가 대외 개방정책과 금융자율화 시책을 이어간 것, 김영삼 정부의 금융실명제 도입, 김대중 정부가 환란 극복과 함께 추진한 금융·기업 구조조정도 모두 업적으로 꼽을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추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이 평가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G20 등 국제 공조를 이끌어내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국격과 존재감을 높였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 슬로건을 내세웠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교과서에도 없는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 정책 등으로 성장 잠재력을 훼손한 실책 말고는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미·중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가 신냉전, 경제 블록화로 간다는 우려가 많다.

“세계 역사를 돌이켜 보면, 두 초강대국이 패권 경쟁을 벌인 경우 대부분 전면전으로 끝났다. 하지만 나는 전쟁은 피하면서, 미·중이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장기간 경쟁과 분쟁 그리고 임시 타협을 이어갈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두 나라가 경제적으로 과거 어느 때보다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정학적 여건 속에서 ‘미들파워’ 국가로서 한국은 ‘원칙’과 ‘가치’에 기초한 외교를 일관되게 견지해야 한다. 핵을 가진 북한과 정전하에 있는 우리에게 한·미·일 동맹 강화는 필수다. 뜻을 같이하는 다른 미들파워 국가들과 함께 자유주의 경제 질서 회복 등 글로벌 어젠다에도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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