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니 20년 이끈 와인버그 관장 “현대미술 이해 어려운 건 당연”[영감 한 스푼]

김민 문화부 기자 2023. 4. 2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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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와인버그 美 휘트니미술관장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17일 만난 애덤 와인버그 휘트니미술관장. 20년 동안 미술관을 이끌고 올해 11월 떠나는 그는 “시원섭섭하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김민 문화부 기자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은 미국 미술, 특히 살아있는 작가들의 예술 세계를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기관입니다. 미술관이 흔히 역사에 기록된 작가를 다루는 것과는 다른 접근이죠. 이런 방식은 미술관의 설립자였던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 여사(1875∼1942)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휘트니 여사는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가문 중 하나였던 밴더빌트가의 자제였습니다. 집안 사람들은 유럽 거장들의 작품을 사들였지만, 자신도 미술가였던 그녀는 주변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후원했죠. 그중 한 명이 바로 에드워드 호퍼(1882∼1967)였습니다.

이런 휘트니미술관에서 30년 전 큐레이터로 일을 시작해 20년 동안 관장을 맡아 온 애덤 와인버그(69)를 만났습니다. 그에게 미술관 운영과 미국 미술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미술관은 오케스트라


와인버그 관장에게 한국에도 많은 미술관이 지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미술관은 많은 관객이 오도록 해야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꼭 봐야 할 미술을 소개하는 역할에도 충실해야 합니다. 이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는지 물었습니다.

“호퍼도 동시대에는 유명한 화가가 아니었어요. 작가들이 살아있는 시대에는 사람들이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미술관이 먼저 그것을 이해하고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죠. 맥락을 모르면 예술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인내심을 가질 필요가 있죠.”

그러면서 유명 작가를 소개해야 할 필요도 있지만, 동시대에 응답하는 작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와인버그 관장이 재임하는 동안 미술관의 연간 방문객은 40만 명에서 120만 명으로 늘었고, 멤버십과 기부금도 확장되었는데요. 그 비결에 관해 물었습니다.

“휘트니미술관이 건물을 확장한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또 여러 큐레이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충실히 따르며 미국 미술의 다양성을 보여주려고 했죠.”

특히 그는 오랫동안 미술관의 비전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미술관장들이 2∼3년 동안만 일하고 떠나곤 하는데, 사람들은 오랫동안 무언가가 유지되면 신뢰를 가져요. 훌륭한 기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경영과 예술 측면에서 모두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미술관의 비전은 관장의 직감뿐 아니라 많은 큐레이터의 오케스트라 같은 협업으로 이뤄진다고 비유했습니다.

“오케스트라를 보면 드럼만 있는 게 아니라 브라스 등 다양한 악기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것을 연주하고, 시간에 따라 변해야 합니다.”

미술관 작품의 조건


미술관장에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는 ‘미술관에는 어떤 작품이 전시되느냐’일 것입니다. 상업 갤러리는 컬렉터들의 취향에 따라 작품을 거래하지만, 미술관은 공공 자금으로 운영되기에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 휘트니미술관 제공
휘트니미술관은 ‘미국 미술’을 중심으로 하는 곳이기에, 미국 미술이 어떤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보는지를 먼저 물었습니다. 와인버그 관장은 “고정된 정의는 없다”며 “미국 출신 작가, 혹은 출신이 아니라도 미국에 기반을 두고 활동한 작가의 작품을 미국 미술로 본다”고 했습니다. 제가 좀 더 구체적인 답을 원하자 그는 “아티초크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티초크는 마치 양파처럼 여러 잎이 줄기를 감싸고 있는 식물입니다.

“아티초크의 잎들을 하나하나 떼어내고 나면 그 중심에 남는 무언가가 미국 미술이 아닐까요?”

그래서 이번엔 “미술관에는 어떤 기준을 갖춘 작품이 전시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와인버그 관장의 답입니다.

“작품이 신선한 비전을 갖고 있느냐, 새로운 표현 방식을 보여주고 있느냐가 중요하죠. 또 그것이 단순히 표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진정한 목소리를 담는 게 꼭 필요합니다. 당신이 기자이고, 여성이고, 한국인이며, 한때는 학생이었고…. 이런 다양한 정체성을 그 사람만의 구체적인 무언가로 담아내야죠.”

이는 다른 해외 미술관장들도 비슷하게 갖고 있는 시각이었습니다. 즉, ‘미국 미술은 무엇이다’라며 정의하고 그 틀에 맞는 예술 작품을 선별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개인에게 초점을 두고, 그만이 가진 정체성을 신선하면서 깊이 있는 방식으로 다룬 예술을 좋은 것으로 봅니다. 그런 개별성이 한데 모여 구성하는 무언가가 집단의 정체성이라고 보는 것이죠.

그 다양성 속에서 비교를 통해 관객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좀 더 정교하게 생각하게 되고, 또 나만의 삶을 일궈나갈 용기를 얻게 됩니다. 와인버그 관장은 “자신의 본질에 접근한 사람은 자연스레 좋은 작품을 하게 된다”며 “친구가 말할 때 진심인지 아닌지 우리가 알 수 있듯 예술 작품도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미술관에서 작품을 본다면, 그곳에 어떤 진심이 들어있는지 한번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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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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