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냄새 사회학

경기일보 2023. 4. 2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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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문재 시인·안양대 교수

지난 3일 영화진흥위원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실시한 한국 영화 10대 뉴스 설문조사 결과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4관왕을 수상한 일을 최고의 뉴스로 선정했다.

세계인들에게 인정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냄새 사회학을 인식시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기택(송강호 분) 가족은 반지하에서 피자 상자를 접는 일 따위로 먹고살기 위해 분투하다가 우연히 상류층 집에 들어가게 된다. 기택의 아들과 딸이 박 사장 아이들의 과외교사로, 기택 부부가 그 집의 가정부와 기사로 일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반지하에서 살아온 그들은 몸에 밴 퀴퀴한 냄새로 늘 불안해한다. 박 사장의 가족이 기택 가족의 냄새를 역겨워한다면 일자리를 잃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쫓겨난 가사도우미가 갑자기 찾아와 기택 가족과 일자리를 놓고 싸우다가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관객들은 살인 현장의 피 냄새를 맡으며 기택의 가족을 대표하는 하층민과 박 사장의 가족을 대표하는 상류층 간의 신분 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실감한다.

안락하고 풍요로운 저택에서 살아가는 상류층과 반지하에서 살아가는 하층민 간에는 본질적인 계급 차이가 있는데 ‘기생충’은 그것을 냄새로 예리하게 포착했다. 하층민은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상류층과의 동화를 추구하지만 밑바닥 인생에서 밴 냄새를 쉽게 바꿀 수 없다. 냄새는 시각적인 이미지보다 선명하지는 않아도 은근하고 은밀하고 지독해 훨씬 정체성의 본질을 드러낸다.

어느덧 한국 사회는 개천에서 용 나기가 힘들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점점 심화하고 있다. 재정 형편이 여유로운 사람일수록 큰 부자가 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 상류층의 냄새와 하층민의 냄새를 연결하는 사다리가 부족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기에 ‘기생충’ 같은 예술의 역할이 중요하다. 냄새 사회학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시장 가치에 의해 조종받는 실정을 밝히는 일이 필요하다. 가난한 언어를 쓰고 가난한 음식을 먹고 가난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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