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독감 걸린 지구
기후변화의 핵심은 변화다. 변화는 우리의 뜻대로 자연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탄소중립을 하면 모든 것이 다 좋아질 것처럼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장 탄소중립을 위한 실천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힘들어하는 지구의 증상을 조금이나마 완화해줄 수 있다
오랜만에 학회 참여를 위해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갔다. 언제나 그렇듯 선후배들의 새로운 연구결과를 볼 때면 부럽기도 하고 긴장도 된다. 그래도 천성이 과학자인지 학회에서 지식을 나누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예기치 않게 독감에 걸려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목이 아프고 심하게 갈증을 느끼며 열이 나는 것이다. 너무 바쁘게 살아서 좀 쉬라고 휴식을 준 것인지, 심한 독감에 꼬박 이틀을 잠만 잤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문득 내가 걸린 독감 증상이 지금 지구의 증상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극단적인 비교이긴 하지만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올봄 지독하게 물이 마르고 고온에 시달리는 지구, 어쩌면 지구도 나처럼 독감에 걸린 것일지 모른다.
그럼 지구의 독감은 나처럼 일시적인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재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인 것일까. 모두가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사람도 독감이 길게 이어지면 생명의 위협을 받듯이 지구의 독감이 길어진다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 내가 이끌고 있는 연구팀에서 ‘네이처 클라이미트 체인지’라는 기후변화분야 세계 최고 저널에 이 문제와 관련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논문의 주요 내용은 지구의 급격한 ‘건조지대화(aridification)’를 막기 위해서는 지구온난화를 산업화 이후 1.5도 이하로 반드시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건조지대화란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의 기후가 건조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올해 유난히 비가 적게 와서 가뭄이 나타나거나 일시적으로 대기가 건조한 경향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기후가 건조하게 바뀐다는 것을 뜻한다.
온난화와 물순환 안 되는 곳이 문제
우리 연구팀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에 참여하고 있는 27개 기후모델의 미래 기후전망자료를 이용해 인류가 지금처럼 아무 대책 없이 온실가스를 배출했을 때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지역에서 이런 건조지대화 현상이 어느 시점에 나타날지를 예측해보았다. 앞으로 인류가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전 지구 온난화를 산업화 시점 대비 2도 정도로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했을 때, 아주 심각한 건조지대화는 중남미, 남유럽, 남아프리카, 중국 남부, 호주 해안가 지역을 중심으로 지구 육지 면적의 24%에서 나타난다고 예측되었다. 즉 지금 육지 면적의 4분의 1 정도에서 영구적으로 사막화가 진행되거나 지속적인 가뭄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빈번한 산불로 그 지역의 생태계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의미를 더한다. 그리고 앞에 언급한 현상이 하나라도 발생한다면 지금 그곳에서 볼 수 있는 생태계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현재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노력을 통해 온난화를 산업화 시점 대비 1.5도 이내로 막는다면 심각한 건조지대화 현상이 나타나는 지역이 전체 육지 면적의 18% 정도로 조금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즉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노력을 통해 온난화 목표를 낮추는 것만으로 심각한 건조지대화로 인한 피해를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온실가스 증가로 왜 이렇게 건조지대화 현상이 나타나는 지역이 늘어나는 것일까. 핵심은 기온 상승 때문이다. 온실가스 증가로 기온이 올라간다는 것은 이제 전 국민이 잘 알고 있다. 기온이 높아지면 대기 중 공기가 품을 수 있는 수분의 양이 늘어나 지속적으로 땅에서 수분을 끌어올린다. 땅의 측면에서 보면 물이 대기로 급격히 증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육지 대부분 지역은 온실가스 증가로 온난화를 겪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증발을 통해 물이 빠져나간다고 이해하면 된다.
지구독감, 탄소중립으로 완화 가능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기온이 높아진 만큼 물이 더 많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비가 와서 땅에 물이 공급되더라도 과거보다 비가 더 많이 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기본적으로 그 땅이 원래 함유하고 있던 일정량의 수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과거보다 비가 더 적게 오거나 똑같은 양이 내린다면 지속적으로 땅에서 물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물의 수요 대비 공급이 줄어 그 지역은 건조지대화가 되는 것이다. 결국 온난화와 물순환의 적절한 균형이 유지되지 않는 지역이 문제가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이 연구를 통해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논문에서 심각한 건조지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되었던 지역에 지금 무슨 일이 나타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그때는 과거지만 이제는 현실이기에 우리의 예측이 얼마나 잘 맞았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연구에서 경고했던 남유럽, 호주 같은 곳을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 지역은 지금과 같은 온실가스 배출을 유지한다면 전 지구 평균 온난화 1.5도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건조지대화가 나타날 것이라 예견했던 곳이다. 그런데 논문이 출판된 바로 다음해 겨울, 세상을 놀라게 한 산불이 호주에서 발생했다. 이 ‘역대급’ 산불은 1년 넘게 호주의 많은 지역을 태웠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생명체의 목숨을 앗아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2021년 튀르키예에서는 유례없는 산불로 국토면적 약 50%가 불타버렸다. 모두 온난화로 인해 건조지대화가 가속화될 것이라 경고했던 지역이다. 토양이 충분한 물을 갖지 못하고 대기는 말라서 아주 작은 불씨에도 큰불이 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바뀌어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기후모델들이 1.5도 상승에 도달하는 시간을 2030~2050년 사이로 보고 있어 그 이전에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에 2020년에 나타난 것도 그리 놀라운 게 아니다.
호주와 튀르키예 사례를 보면 결국 우리의 예측은 정확했다. 논문은 우수했던 것이 맞았다. 그렇다고 기분이 좋지는 않다. 이게 로또 당첨이었다면 너무 기뻤겠지만, 이런 처참한 기후변화의 예측이 맞을 때는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사실 이 논문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연구 결과에서 유사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기후변화 연구 논문들이 이산화탄소, 메탄 같은 온실가스의 무분별한 증가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계속 가다가는 1.5도를 넘기고 2도 상승까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면 더 큰 피해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2도를 넘어가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과학이고 진실이다. 그래서 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다행히 나는 감기약도 먹고 의사의 조언에 따라 물도 많이 마셔서 회복을 했다. 그런데 지구는 감기약도 없고 마실 물도 없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답을 하자면 지구의 독감은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가진 기술로는 지구의 독감을 완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의 희망은 탄소중립을 통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오늘부터 탄소배출이 전혀 없는 탄소제로를 실천할지라도 지구의 기온은 당분간 올라간다. 지구시스템 내 바다는 공기보다 느리게 데워지고 느리게 식는 터라 지금 잔뜩 데워진 바다가 열을 내뿜어 기온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라면을 끓일 때 가스레인지 불을 꺼도 뜨거워진 냄비 속 국물에서 열기가 나오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결국 이번 독감이 내게 준 교훈은 힘들어하는 지구를 위해 우리는 당장 탄소중립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은 기후변화의 핵심은 변화라는 것이다. 변화라는 것은 우리 뜻대로,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자연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탄소중립을 하면 모든 것이 다 좋아질 것처럼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연의 시계가 더 빨리 돌아 1.5도 상승 시간이 더 이르게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 탄소중립을 위한 실천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힘들어하는 지구의 증상을 조금이나마 완화해줄 수 있다.
■정수종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 중국 남방과기대 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근무 중이다. 연구팀을 꾸려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을 밝히기 위한 관측 및 모델링 연구를 진행 중이며, Global Carbon Project, 유럽 항공우주국 기후 모니터링, NASA 온실가스 및 생태계 모니터링 등 국제 공동연구를 수행 중이다. 2018년부터 서울 남산타워 꼭대기에서 도시의 이산화탄소를 측정한 정보를 매일 공개하고 있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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