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m 폭풍질주... 아무도 이강인을 막지 못했다
2~3년 전만 해도 이강인(22)의 유럽 무대 전망은 반신반의였다. 2018-2019시즌 17세에 스페인 라 리가 발렌시아 CF에서 유럽 프로 무대에 데뷔, 한국 최연소 유럽 데뷔란 간판을 얻었지만, ‘외화내빈(外華內貧)’이었다. 덩치가 작아(173㎝ 66㎏) 몸싸움에서 밀리고 주력이 빠르지 않아 뛰어난 드리블과 넓은 시야를 활용하는 데 제약이 따랐다. 2019-2020시즌 리그 경기 선발 출장이 3경기(교체 14경기)에 그쳤다. 2020-2021시즌엔 15경기(교체 9경기)로 소폭 상승했으나 계속 후반 이른 시간 교체되면서 잠재력을 구현하지 못했다. 이전에 유럽에서 주목받다 정착하지 못하고 국내로 돌아온 유망주들 전철을 밟는가 했다.
하지만 이강인은 일어서고 있다. 몸싸움에 밀리지 않기 위해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 온몸에 근육이 붙은 큰 덩치를 만들었다.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커지니 주력(走力)도 상승했다. 단점을 보강한 그는 2021-2022시즌을 앞두고 발렌시아를 떠나 마요르카에서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올 시즌 5골 4도움을 올리며 ‘팀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이라는 말을 들으며 만개하기에 이르렀다.
24일 헤타페와 경기에서 나온 골은 과거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2-1로 앞서던 후반 추가 시간 이강인은 하프라인으로부터 약 10m 뒤에서 공을 잡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수비수 둘이 이강인에게 따라붙었으나 따라잡지 못했다. 혼자 60m가량을 뛰어간 이강인은 강력한 슛을 성공시켰다. 이날 경기 후반 11분에 1-1을 만드는 동점골도 넣었던 이강인은 프로 데뷔 첫 멀티 골을 달성했다. 스페인 라 리가에서 한 경기 두 골을 넣은 첫 한국인 선수가 됐다. 라 리가 한국 선수 득점 기록은 2012-2013시즌 3골을 넣었던 박주영(당시 셀타 데 비고)이 유일하다. 3대1 승리를 이끈 이강인을 라 리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승리의 설계자’라고 추켜세웠다. 축구 통계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은 그에게 양 팀 최고인 8.6점을 줬다.
이제 이강인의 시선은 EPL(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향한다. 다가오는 여름 이적시장 노른자위로 꼽힌다. 이강인의 스페인 에이전트 하이베르 가리도는 지난 10일부터 맨체스터시티, 애스턴 빌라 등 EPL 구단들 사무실 사진을 자신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일단 EPL 애스턴 빌라 구애가 두드러진다. 지난 시즌 14위에 그쳤던 애스턴 빌라는 올 시즌 6위를 달리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 저변에는 스페인 세비야(2013~2016년), 비야 레알(2020~2022년)을 이끄는 동안 유로파리그 정상을 네 번 밟은 우나이 에메리 감독이 있다. 에메리는 비야 레알 시절 이강인을 상대하며 깊은 인상을 받았고, ‘나는 그의 팬’이라며 영입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스턴 빌라에는 같은 포지션에 필리페 큐티뉴(31·브라질)가 있다. 쿠티뉴는 올 시즌 합류했으나 20경기 1골로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2021년 사우디아라비아 국부 펀드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인수돼 올 시즌 3위를 달리는 뉴캐슬 유나이티드도 관심을 표하고 있다. 현 EPL 최고 부자 구단인 만큼 이강인 추정 이적료 1800만 유로(약 260억원)를 문제없이 지불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올 시즌 뉴캐슬은 브라질 국가대표 브루노 기마랑이스(27)를 제외하고는 공격을 전개해 나갈 미드필더가 없어 곤란했는데 이강인이 그 약점을 풀어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황희찬(27)이 뛰고 있는 울버햄프턴, 다음 시즌 EPL 승격을 확정 지은 2부리그 번리 등도 행선지 후보로 꼽힌다. 현지에서는 이강인이 다음 시즌 스페인을 떠난다는 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글로벌 축구 매체 원풋볼은 “스페인에서 이강인의 재능을 즐길 수 있는 경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가 부렸던 마법은 잊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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