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시읽는마음] 걷기 예찬

2023. 4. 2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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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걸 좋아하지만 "자신과 멀어지기 위해" 걷는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사색? 스트레스 해소? 곰곰 생각해 보니, 실은 "자신과 멀어지기 위해" 한 걷기가 맞는 것 같다.

생략된 시의 뒷부분에 "걷기란 나를 한 발짝씩 떠밀고 들어가서 죽이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걷기란, 밤에 걷기란 이토록 계속되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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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구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걸을수록 나 자신과 
멀어지기 때문이다

체중 조절, 심장 기능 강화,
사색, 스트레스 해소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걷기란 갖다 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제는 만오천 보 정도 이동해서 
한강공원에 나를 유기했다 

누군가 목격하기 전에
팔다리를 잘라서 땅에 묻고
나머지는 돌에 매달아 강물에 던졌다 

(후략)
걷는 걸 좋아하지만 “자신과 멀어지기 위해” 걷는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과연 무엇일까. 산책이라고도 운동이라고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한 걷기를 내내 지속한 이유. 사색? 스트레스 해소? 곰곰 생각해 보니, 실은 “자신과 멀어지기 위해” 한 걷기가 맞는 것 같다. 차마 “팔다리를 잘라” 땅에 묻거나 눈, 코, 입을 강물에 던지지는 못했으나 그만큼 내 속의 어떤 상념을 떨치고 싶었으므로. 상념으로 꽉 찬 나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으므로. 생략된 시의 뒷부분에 “걷기란 나를 한 발짝씩 떠밀고 들어가서 죽이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나는 여전히 살아 잠을 설치고. 때문에 걷기란, 밤에 걷기란 이토록 계속되는 것인가 보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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