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

2023. 4. 2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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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어진 신라 불상 두고 갑론을박
불교계선 “본래대로 바로 세워야”
일부에선 “그대로가 역사” 반대
양극단 입장 논의 공감대 찾아야

이달 중순 건축역사학회가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의 가치와 보존’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2007년, 경주 남산의 열암곡에서 신라시대 마애불상이 앞으로 엎어진 상태로 발견된 이후 불교계를 중심으로 이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마애불상의 규모는 머리부터 발아래 연화대좌까지 전체 길이가 5.6m, 무게는 80t에 이른다. 현재 마애불상의 머리 위쪽 끝부분과 허벅지 부분만 암반에 닿아 있고 얼굴의 콧날이 바로 밑 암반에서 5㎝가량 떨어져 있어 오뚝한 콧날을 포함해 얼굴 상태가 완벽하다. 이날 학회는 불상을 바로 세우자는 ‘입불(立佛)’ 논의를 여러 측면에서 검토하는 자리였다.

불교계는 불상은 신앙의 대상이니 마애불상을 똑바로 일으켜 세워 본래의 취지에 충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대론자는 엎어진 자체가 불상의 역사이며 유례를 찾아볼 수 없어 가치가 있고 묘한 매력이 있다는 의견이었다. 또한, 대규모 크레인을 운용하고 대형 마애불상의 기초를 만들자면 자연을 엄청나게 훼손해야 한다는 것도 걱정거리였다. 여기서 무엇이 옳고 그런지 이분법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어디에다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남산의 큰 바위에 마애불상을 조성했을 당시 신라인들은 마애불상이 새겨진 그 상태 그대로 서 있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원래 기대와는 달리 마애불상은 어떤 자연의 힘(현재는 지진이라고 추측)으로 앞으로 넘어졌고 그 상태로 약 1200년이 지난 후 발견되었다.

옛것에 어떤 행위를 인위적으로 가할 때는 이같이 상반되는 가치판단의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2008년 숭례문 화재 후 숭례문을 복구할 때, 화재 당시 땅으로 떨어져 부서진 현판을 수리하는 일이 있었다. 문화재청 숭례문복구단은 부서진 현판을 조사해 이 현판이 한국전쟁 때 구멍이 숭숭 뚫리는 피해를 보았고 1954년 급하게 수리하면서 숭례문 글씨체를 잘못 고친 것을 발견했다. 당시에는 원래의 글씨체를 몰라 글씨가 없어진 부분을 근거 없이 임의로 보충했기 때문이다.

2009년, 숭례문복구단은 양녕대군 사당인 지덕사에서 숭례문 탁본을 발견했다.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도성의 문도 수리했는데 이때 경복궁 영건도감 제조로 있었던 이승보가 탁본한 것으로 전해진다. 숭례문 현판 글씨는 양녕대군의 글씨로 알려져 양녕대군의 후손인 이승보가 조상의 글씨를 탁본한 것이다. 숭례문복구단에서 탁본과 현재의 글씨를 비교해 본 결과, 1954년 현판을 수리하면서 보충한 글씨의 획이 잘못된 것을 발견했다. 여기서 숭례문복구단은 잘못 고친 글씨를 그대로 둘지 탁본을 이용해 바로잡을지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숭례문복구단은 복구자문단과의 토론을 거쳐 현판을 수리하면서 글씨의 획을 원래대로 고쳤다. 1954년 잘못 고친 것은 당시에 탁본의 존재를 몰라 잘못 고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 감사원은 현판 글씨체를 바로잡은 것을 문제 삼았고 이는 복구단 직원들의 징계사유에 포함되었다. 감사원이 뒤늦게 옛것에 대한 가치판단을 이분법적으로 적용한 결과였다.

옛것을 보고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지극히 현대적인 문화현상이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옛것을 문화재로 지정해 나라에서 관리하지 않았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옛것을 보호하고 관리할 필요성이 없었다. 요즘에 비하면 당시에는 100년 전이나 500년 전 생활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거의 같은 집에서 살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었다. 그러니 굳이 옛것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 당시에도 옛것을 함부로 훼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옛것에 대한 샤머니즘적 경외감 때문이었지 요즘처럼 문화재로서 옛것을 보존하려는 차원은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서양도 마찬가지였다. 로마시대 사람들은 그리스 조각품을 보존하려 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보는 하얀 대리석으로 된 그리스 조각품은 모두 로마시대 복제품이다. 원래 그리스 조각은 청동으로 만들어졌고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었다. 청동을 이용하기 위해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청동 조각을 모두 녹여 버렸다. 대신 대리석으로 복제품을 만들었다. 유물의 가치에 대한 인식보다는 청동으로 얻을 수 있는 현실적인 이득이 압도적으로 중요했다.

19세기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완전히 바꾸고 놓았다. 최근 100년의 변화가 인류 역사상 그 이전 모든 변화보다 더 크다고 할 정도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사회변화의 가속 현상 속에서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온갖 새로운 것이 이제까지 익숙했던 옛것의 자리를 차지한다. 자연스럽게, 그냥 두면 사라지고 말 것 중에서 지켜야 할 것이 생겼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 우리가 옛것을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인간의 균형감이다. 미래로 향한 질주가 빨라질수록 언제든 현재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과거가 필요한 법이다. 옛것을 지키려는 노력은 가장 현대적인 문화현상이고 변화의 속도가 가속되는 미래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무엇 하나만 옳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어울리지 않는다. 양극단의 입장을 충분히 논의하고 공감대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의 처리가 관심을 끄는 이유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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