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말년, 공공의료에 기댈 수 있을까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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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무조건 택시를 불러서 여기로 가자고 했지. 대한민국에서 제일 크고, 최첨단 의료를 자랑하는 병원이라니까." 쓰러진 아내를 택시에 태워 목포에서 서울까지 달려온 어르신은 이후, 여든이 넘은 고령에도 병상의 아내를 정성껏 돌봤다.
몇 년 전 한 달 정도 입원해 있던 A 병원의 할머니 환자와 그를 돌보던 할아버지가 다시 또렷하게 떠오른 건, 지난 2주간 여러 지역에서 공공(보건)의료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만나 의료와 돌봄, 인권의 연관성에 대해 논의하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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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무조건 택시를 불러서 여기로 가자고 했지. 대한민국에서 제일 크고, 최첨단 의료를 자랑하는 병원이라니까." 쓰러진 아내를 택시에 태워 목포에서 서울까지 달려온 어르신은 이후, 여든이 넘은 고령에도 병상의 아내를 정성껏 돌봤다. 목포에서 비교적 큰 규모로 수산물 사업을 하며 '돈 좀 모았다'는 그는 서울의 빅5 병원 중에서도 최근 더욱 명성을 얻고 있는 A 병원에 아내를 입원시키고 또 손수 병간호를 도맡음으로써 평생 동지였던 아내에게 사랑과 존중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 기저귀 케어에서 핵심은 연하고 무른 살이 쓰라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정갈하게 닦아주는 거라며 시범을 보이는 간호사의 가르침을 할아버지는 거의 경건한 태도로 새겨들었다.
몇 년 전 한 달 정도 입원해 있던 A 병원의 할머니 환자와 그를 돌보던 할아버지가 다시 또렷하게 떠오른 건, 지난 2주간 여러 지역에서 공공(보건)의료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만나 의료와 돌봄, 인권의 연관성에 대해 논의하면서였다. 공공의료란 단지 공공병원이나 지역의 의료원 또는 보건소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병원, 모든 의료진의 의료행위는 근본적으로 공공성에 토대를 둔다. 서울에 몰려 있는 소위 빅5 병원을 비롯해 대형종합병원은 지역의 1차 의료원과 소통하며 사람 중심, 삶 중심의 의료를 구현해야 한다. 그게 지역통합돌봄이 추구하는 바다. 그중에서도 특히 만성 질환자나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는 고령자에겐 방문 의료가 바람직하다. 그래야 대형종합병원이나 그것의 형태를 모방하기에 급급한 지역병원에서조차 사라진, 내게 적합한 의료돌봄의 내용과 형식을 '상의'할 수 있는 문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공의료란 공공병원이나 보건소 등의 물리적 건물이나 제도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보건의료의 정신과 그 실천을 의미한다. 이것이 그동안 4개 지역에서 대화하고 논의하며 배운 내용의 핵심이다.
이런 배움의 과정에서 나는 그때 그 할머니가 평생 살아온 당신의 집에서 방문의료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다. 할머니를 돌보는 데 진심이었던 할아버지와 방문의료팀의 돌보는 의료실천. 이 두 돌봄에 기대어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편안하고 존엄한 일상을 누리시지 않았을까. 당시 할머니의 상태는 매우 위태로워서 식사 도중 기침이라도 한 번 할라치면 기도가 막히고 폐에 이상이 생겨 중환자 응급실로 옮겨야 했다. 그곳에서 할아버지 없이 홀로 생사의 갈림길에 머물면서 할머니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만일 그때 그 '림보'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면 그의 죽음은 어떤 의미를 품을 수 있을까. 당시 아침저녁으로 할아버지의 안색을 살피며 할머니의 소식을 기다렸던 나는,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덜컹한다.
당연히 이건 '남'의 일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나'의 일이다. 그래서 잘 묻고 잘 대답해야 한다. 위로와 평화가 넉넉한 말년의 삶은 어때야 할까. 평생의 삶을 마무리 짓기에 적절한 장소, '존엄한 죽음'의 장소로 마땅한 곳은 어디일까. 누구에게 어떤 형태로 내 몸을 맡겨야 할까. 60대의 중간 지점을 넘어선 나 역시 말년의 삶과 죽음의 장소와 형태, 더 나아가 장례의 형식까지를 가늠해 본다. 함께 일상과 신념을 나누며 안녕을 묻곤 하던 사람들의 관계망 안에서, 살던 모습을 배신하지 않고 맞는 죽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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