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혐의 입증 어렵고, 전문 수사 인력 모자라고, 관련 법 없어 기소 난망…피해자만 애탄다[코인, 잔치는 끝났다②]
처벌 쉽지 않은 이유
상장하고 거래 막는 ‘록업’ 수법
수사해도 ‘투자 실패’ 결론 가능성
경찰 “수사 난도 높기 때문에 꺼려”
피해자 많아 수사 시간도 꽤 걸려
경북에서 자영업을 하는 안정호씨(51·가명)는 2020년 ‘B코인’에 3000만원을 투자했다. 지인은 B코인이 연말에 거래소에 상장될 예정인데, 상장 전 ‘프라이빗 세일’로 염가에 사두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투자 후 B코인은 거래소에 상장됐지만 거래소는 투자자가 코인을 팔 수 없게 ‘록업(Lockup)’을 걸었다. 돈이 묶인 사이 B코인은 상장폐지됐고 안씨의 투자금은 휴지 조각이 됐다.
안씨는 코인 업체 대표 김모씨를 2021년 서울 강동경찰서에 고소했다. 다른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다 김씨가 각기 다른 4개의 코인을 발행한 뒤 비슷한 수법으로 투자금 돌려막기를 한 사실도 알아냈다. 김씨 이름이 적힌 사업자증명서, 인감증명서들도 직접 제출했다. 그러나 수사는 2년째 경찰과 검찰을 오가며 표류하고 있다. 안씨는 24일 “처음엔 경찰이 이 사건을 단순 투자 실패로 생각해 고소장을 안 받으려고 했다”면서 “수사기관이 코인 사기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다.
전국 곳곳에서 코인 사기 피해가 속출하고 있지만 경찰은 수사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코인 사기 대부분은 거래소 상장을 미끼로 투자금을 모은 다음 상장하지 않거나 상장하더라도 거래할 수 없게 ‘록업’을 거는 수법으로 이뤄진다. 문제는 업체가 처음부터 상장할 의지가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만약 업체가 상장을 시도했는데 실패한 것이라면 사기 혐의로 처벌하기 힘들다. 경찰 관계자는 “기망의 의도가 있는지를 확인 못하면 단순 투자 실패로 결론 날 가능성이 크다”면서 “코인은 주식처럼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라 증명이 어렵다”고 했다.
코인 사기를 수사할 경험과 실력을 갖춘 수사관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비수도권 지역의 한 경찰서장은 “경제 수사부서 수사관 대부분이 3년차 이하”라며 “레지던트에게 수술 집도를 맡기고 있는 꼴”이라고 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일이 몰리자 수사부서를 기피하는 풍조가 생겼는데, 이 때문에 경험이 적은 젊은 수사관들이 수사부서에 먼저 배치된다고 한다. 해당 서장은 “코인과 결합한 신종 범죄 특성상 수사 난도가 높다”면서 “잔뼈가 굵은 수사관들도 어려워하는 수사를 신입 수사관이 어떻게 할 수 있겠냐. 지방의 경우는 전문 인력이 더 없다”고 했다.
검찰도 기소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코인은 증권성이 인정되지 않아 자본시장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시세조종이 확인되더라도 그것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 기업의 공시 역할을 하는 백서를 허위로 작성해도 허위공시 혐의로 기소할 수 없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 코인원 상장 브로커 사건 등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현재는 이 행위들을 규제하는 법이 없어 업무방해,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사기 등 혐의로 우회해 기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등으로 ‘우회 기소’를 하면 수사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다단계 수사의 특성상 전국 각지에 수많은 피해자들이 퍼져 있는데, 이들을 일일이 불러 조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사수신 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는 “전국에 있는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주거지 근처에 고소장을 접수하다보니 여러 관서에서 동시에 수사를 진행하게 된다”면서 “이런 경우 먼저 기소한 관서에 사건을 모두 떠넘기는 사례가 많아 기소를 꺼리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이홍근·김송이·강은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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