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대박인가 했는데…‘아뿔싸’ 꿈 깨니 허상[코인, 잔치는 끝났다②]

강은·김송이 기자 2023. 4. 24.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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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그들은 어떻게 속았나
서울 강남구에서 지난 13일 만난 ‘코인 사기’ 피해자 심미영씨(가명)가 작성한 계약서. 계약서를 담은 봉투에는 ‘착한 개미들이 부자가 되는 그날까지’라고 적혀 있다. 양다영 PD

지난 22일 오후, 심미영씨(50·가명)가 찾은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거액을 투자한 가상통화(코인) 발행업체 주소였지만 코인 업체가 입주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사무실 앞에 걸린 파란색 간판에는 낯선 영어만 적혀 있었다. 검색해보니 물류회사라고 나왔다.

“하… 착잡하네요.” 심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다 거짓말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듣기로는 실제 사무실도 시골에 있는 비닐하우스래요.”

심씨가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C코인 피해자’라 이름 붙은 온라인 단체대화방에 다른 이가 올린 사진이었다. 허허벌판에 놓인 검은색 비닐하우스 앞에 심씨가 애타게 찾던 업체 간판이 붙어 있었다. 심씨처럼 ‘코인 사기’를 당했다며 대화방에 모인 이들은 60명가량이다.

2017~2018년 불어닥친 코인 열풍은 강남 일대를 한 차례 휩쓸었다. ‘고수익’을 미끼로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 코인 업자들은 한몫을 챙긴 뒤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그 자리에는 피 같은 재산을 잃은 피해자들의 다급한 발길만 드문드문 이어진다. “5배에서 10배 수익을 보장한다”는 유혹에 넘어갔던 이들은 “그건 허상이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코인 사기’ 피해자 안정호씨(가명)가 자신이 투자한 ‘B코인’ 발행업체의 수법을 설명하고 있다. 양다영 PD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만난 ‘코인 사기’ 피해자 심미영씨(가명)가 복용한다는 우울증 약. 양다영 PD
다단계 방식으로 순식간에 모집
주식 손실 본 사람 불안감 악용

‘옥장판’이 된 코인

심씨는 지난해 6월 코인 업자들이 쏟아낸 말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개당 600원 하는 코인이 5배 높은 3000원으로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에 상장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자체 발행한 가상통화로 게임 아이템을 살 수 있고, 현금화도 가능하다고 했다. 이른바 ‘돈 버는 게임(Play To Earn·P2E)’에 가상통화를 연동한 사업모델이었다.

평생 게임도, 코인도 모르고 살았던 심씨는 생소하고 어려운 용어들에 두려움이 앞섰다. 한편으로는 ‘정말 돈을 벌 수 있을까?’ 호기심도 생겼다. 업자들은 집요하게 빈틈을 파고들었다. “P2E는 윤석열 대통령도 미는 정책”이라며 조금씩 확신을 심었다. 상장에 문제가 생기면 투자금을 반환한다는 내용의 계약서도 내밀었다. 심씨는 네 차례에 걸쳐 총 3억2000만원을 넣었다.

그로부터 석 달, 희망과 절망이 숨 가쁘게 교차했다. 계약 2주 만에 ‘C코인’ 가격이 30%나 오르자 심씨의 마음도 부풀었다. 얼마 후 이름도 생소한 작은 거래소에 상장되자마자 돌연 가격이 곤두박질쳤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바이낸스 상장’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1월 강남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한 심씨는 ‘총판’ 김모씨가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책임을 피하려 계약서 문구를 교묘히 적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이때쯤이었다.

“처음엔 불안해서 도저히 (투자를) 못하겠다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누나 같아서 그런다, 식사는 하셨냐, 한번 들르겠다 하면서 정말 살갑게 다가왔어요. 생각하면 전부 다 의도된 거였어요. 저는… 완전히 속은 거예요.” 심씨가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심씨가 겪은 일은 국내 가상통화 시장에서 자주 쓰는 사기 수법이다. 업자들은 인위적으로 거래량을 부풀리는 자전거래로 부실 코인의 가치를 띄운 뒤 고점에서 팔아 피해를 떠넘긴다. 얼마 전 발생한 강남 납치·살인 사건의 배경으로 지목된 ‘P코인’도 비슷했다. 코인 발행사(재단), 코인 판매업자, 시세조종 담당자로 업무를 분담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데, 나중에는 서로 피해자라고 주장해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주는 경우가 많다.

코인 업자들이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패턴이 있다. 투자 정보를 퍼뜨리는 ‘리딩방’을 이용해 코인을 홍보하거나 ‘다단계 판매’ 방식으로 순식간에 투자자를 모은다. 다단계 판매란 물건을 산 소비자가 다시 판매자가 돼 다른 소비자를 끌어오는 피라미드형 판매 방식이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24일 “과거에 옥장판 가치를 부풀려 다단계로 팔던 방식이 코인 사기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상통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시민들은 막연하게나마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가상통화는 다단계 사기에 딱 맞는 수단인 셈”이라고 했다.

고수익·실패 땐 투자금 반환 약속
머뭇거리면 집요하게 사탕발림
“온몸 명품 두른 업자, 혼을 쏙 빼”

‘허상’을 파는 사람들

3년 전 양모씨(35)가 4억원가량 손해를 본 ‘X코인’도 다단계 수법을 활용한 사기 코인이었다. 총판 역할을 한 이모씨는 매월 투자금의 30%를 고정 수익으로 보장하겠다며 사람들을 꾀었다. 지인을 소개해 투자하게 만들면 ‘마케팅 보너스’를 지급한다는 조건도 내세웠다. 2~3배 재산을 불리는 건 시간문제로 보였다. “마케팅 보너스가 10%라고 하면, 1000만원 투자자 10명만 모아와도 1000만원이 생기는 거예요. 돈이 돈처럼 보이겠어요?” 양씨가 투자 구조도를 그려 보이면서 말했다.

양씨가 투자한 ‘X코인’ 역시 석 달이 지나지 않아 가격이 폭락하고 매도가 제한(록업·lockup)됐다. 국내 대표 거래소인 빗썸에 상장돼 있던 이 코인은 2021년 5월 상장폐지됐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이 수사 중인 이 사건은 양씨를 포함해 고소인만 36명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피해액은 50억원에 달한다. 피해자들은 실제 피해 액수를 모두 합하면 수백억원일 것이라고 말한다.

양씨는 코인 업자들이 ‘허상’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한다고 했다. “총판이라는 자는 온몸에 명품을 바르고 나타났어요. 비싼 차 타고, 비싼 시계 차고, ‘난 대학도 못 나온 ××이었는데’ 하면서 성공담을 자랑하는 거예요. 가평에 큰 펜션을 빌려 사람들도 초대해 비싼 소고기를 대접하고… 사람 정신을 쏙 빼놓는 거죠.”

코인 업자들은 이미 크게 손실을 본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악용하기도 했다. 심씨는 ‘C코인’으로 돈을 잃기 전 ‘주식 리딩방’에 발을 잘못 들여 이미 5억원 이상 손실을 본 터였다. “번호가 유출됐는지 하루에도 5~10통씩 투자를 권유하는 전화가 쏟아졌어요. 돈을 잃은 상태만 아니었어도 그렇게 ‘올인’하진 않았을 거예요.” 그는 “투자금을 복구하는 게 너무 간절했다”고 말했다.

피해자 뭉치지 못하게 만들기도
“과거 옥장판 다단계 사기 닮아”

‘사기 피해’를 인지했다고 해서 투자자들이 곧장 신고하기도 쉽지 않다. 코인 업자들은 피해자들이 뭉치지 않게 하려 갖은 수법을 동원한다. ‘고소만 하지 않으면 돈을 돌려주겠다’며 일부 피해자를 회유하거나 법적 대응을 위해 모인 피해자 단톡방에 ‘프락치’(정보원)를 심기도 한다. 시간을 끌고 집단행동을 방해해 피해자들의 대응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신고한 이후에는 지난한 경찰 수사가 기다린다. 3년 전 ‘B코인’에 3000만원을 넣었다가 사기를 당한 안정호씨(51·가명)는 “경찰이 몇년째 수사를 질질 끄는 사이에 ‘총판’은 코인 이름만 바꿔가며 같은 수법으로 사람들을 속였다”면서 “같은 판매자가 등장하는 코인만 4개이고, 피해자도 수십명”이라고 했다.

빨리 돈을 불리길 원하거나 계층 상승을 갈망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범죄의 표적이 됐다. 안씨는 “막내가 아직 초등학생인데 퇴직할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며 “노년층이 코인 사기에 빠지는 건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압박 때문”이라고 했다. 평생 미용실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는 심씨도 “30년간 일하며 5일 이상 쉬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한 집에서 자랐거든요. 가장 역할을 해야 해서 이를 악물고 살았어요. 서울에서 집 한 채 마련해보려고 돈을 모으고 모았는데….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심씨가 증거자료를 보관해둔 봉투에는 ‘착한 개미들이 부자가 되는 그날까지’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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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김송이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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