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매물이라 속이고 이사비 주고…공인중개사가 키운 전세사기

이가람 매경닷컴 기자(r2ver@mk.co.kr) 2023. 4. 24.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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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로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를 위한 추모행진이 지난 8일 서울역 앞에서 출발해 용산구 대통령실로 향하고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부동산컨설팅업체 직원 A씨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 찾아온 B씨에게 이사비용 300만원을 지원해 주겠다고 현혹해, 신축빌라를 시세보다 비싼 2억4900만원에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A씨는 중개 자격이 없었지만 공인중개사 C씨에게 수수료를 지급하고 대필을 요청해 전세계약서를 만들어냈다. 이 신축빌라는 전세계약이 끝난 뒤 새로운 임대인 바지 사장에게 소유권이 이전됐다. 새로운 임대인이 세금을 체납하면서 B씨가 살던 신축빌라는 압류됐고, 전세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A씨는 깡통전세 중개에 성공한 대가로 기존 임대인이었던 건축주로부터 1800만원을 챙겼다.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립적 입장에서 임대인과 임차인을 연결해 주는 가교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공인중개사조차도 전세사기의 주범·공범이 돼 피해 규모를 키우는 모습이다.

24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의 공인중개사무소를 대상으로 25개 자치구와 합동 조사를 실시한 결과 ▲자격증 대여 ▲거래계약서 작성 위반 ▲고용인 미신고 등 불법행위 72건이 적발됐다.

서울시는 금지행위 위반, 자격증 대여, 무자격자 광고 등 4건의 일탈행위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으로 수사를 의뢰했다. 또 거래계약서 작성 위반, 고용인 미신고, 중개대상물 확인 설명서 위반 등 11건은 업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중개대상물 표시광고 위반, 중개대상물 확인 설명서 부적정 등 18건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했다. 그 외 경미한 사안 39건은 현장 계도 조치를 취했다.

아울러 전세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 6명과 중개보조원 4명도 공인중개사법 위반으로 형사입건 했다. 전세사기 일당들은 주로 시세를 파악하기 어려운 신축빌라의 매매가격을 부풀려 전세계약을 유도하는 방식을 통해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편취했다. 이 과정에서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 등이 깡통전세 위험성을 파악했음에도 성과보수를 노리고 불법중개행위를 전개한 사실이 확인됐다.

전세사기 피해자는 대부분 대학교 신입생, 취업 준비생, 신혼부부 등 부동산 계약 경험이 처음이거나 적은 청년층에 집중돼 있었다. 범행수법도 치밀해지면서 등기부등본을 확인하고 주민 센터에서 확정일자는 받는 것만으로는 전세사기를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 일부 공인중개사들은 사고가 터지면 보증금을 대신 갚아 주겠다는 이행각서를 작성해 주거나 집주인이 재력가라 보증금을 돌려주는 데 문제가 없다고 장담하는 방법으로 세입자들을 안심시켰다.

이에 서울시는 국토부와 합동으로 전세사기 가담 의심 공인중개사 특별점검을 지속적으로 실시해 공인중개사의 위법행위를 단속할 방침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사고 리스트 중 전세 사고 물건의 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무소를 분류하고, 이를 악성임대인 리스트와 대조해 악성임대인 소유 주택을 2회 이상 중개한 공인중개사를 집중 점검하는 방식이다.

국토교통부도 일부 공인중개사가 부동산 거래 질서를 교란시킨다고 판단했다. 국토부는 공인중개사 자격 취소를 기존 징역 이상의 형을 받을 경우에서 집행유예 이상의 금고형 선고를 받으면 자격을 취소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공인중개사의 책임을 강화하고 엄중히 처벌을 하더라도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구제받기는 쉽지 않다. 공인중개사가 임대인의 중요 정보를 고의로 누락했거나, 사기 행각임을 알면서도 협력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것은 세입자다.

공인중개사로부터 받아낼 수 있는 피해배상금도 한정적이다. 세입자는 임대차계약을 맺은 후 중개업소로부터 부동산 공제증서를 받는다. 거래 및 계약 주택에 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공인중개사가 배상해 주겠다는 일종의 보증서다.

현재 공인중개사의 보증한도는 2억원이다. 중요한 것은 계약 1건당 한도가 아니라 이 중개업소에서 1년 동안 진행한 모든 계약 건을 합산한 한도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수십에서 수백명에 이르는 경우에는 중개업소에 손해배상청구해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조남준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은 “수차례의 점검 활동을 통해 업자들이 얽힌 조직적 피해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불법중개행위 근절을 위한 철저한 점검과 단속을 지속적으로 병행해 투명한 부동산 거래 질서를 확립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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