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되풀이되는 무책임한 ‘86용퇴론’[광화문에서/김지현]

김지현 정치부 차장 2023. 4. 2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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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들이 용퇴해야 산다"라는, 이른바 '86용퇴론'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터진 86그룹 맏형 송영길 전 대표의 돈봉투 살포 의혹에 "대체 언제 적 86이냐" "아직도 86들이 다 해먹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

하지만 민주당이 이듬해 총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승리하고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86의 용퇴는커녕 전성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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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정치부 차장
“86들이 용퇴해야 산다”라는, 이른바 ‘86용퇴론’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터진 86그룹 맏형 송영길 전 대표의 돈봉투 살포 의혹에 “대체 언제 적 86이냐” “아직도 86들이 다 해먹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

86그룹은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세대로, 1995년 이래 민주당의 주축으로 자리를 지켜 왔다. 이들을 겨냥한 용퇴론은 2015년부터 습관적으로 반복돼 왔다. 당이 위기이거나, 대형 선거를 앞두고 ‘혁신’ 키워드가 필요할 때 반짝 등장했다가, 고비를 넘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사라지는 패턴이다.

2015년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새정치민주연합에선 “시대는 변해 가는데 (586세대는)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이동학 청년혁신위원) “권력이란 괴물과 싸우다 86세대가 또 다른 권력이 된 것은 아닌지”(임미애 혁신위원) 등 86그룹을 겨냥한 비판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듬해 총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승리하고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86의 용퇴는커녕 전성시대가 열렸다. 전대협 의장 출신 임종석 전 의원이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됐고 이인영 의원은 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86용퇴론은 2019년 말 차기 총선을 앞두고 또 나왔다. 조국 사태로 ‘공정’이 최대 화두로 떠오르면서 “어느덧 기득권이 돼 버린 86그룹부터 물러나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면서다. 그래 놓고 2020년 총선에서 승리하자 86그룹은 당 지도부 등 요직을 꿰찼다. 21대 국회 첫 원내대표는 김태년 의원(전대협 1기 부의장)이었고, 2021년엔 86그룹 윤호중 의원이 원내사령탑에 당선됐다. 송 전 대표도 그해 전당대회에서 승리했다.

송 전 대표는 지난해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패색이 짙자 “나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며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래 놓고 고작 3개월 뒤엔 당내 반대에도 서울시장 출마를 강행해 스스로 용퇴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그 당시 투입된 1996년생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은 86용퇴를 요구했다가 86 출신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과 고성을 내지르며 싸우기까지 했다.

올해 4월, 총선을 1년 앞두고 또다시 세대교체론이 거론될 조짐이다. 마침 돈봉투 사태가 터지기 직전 1988년생 초선 오영환 의원이 “말만 앞세운 정치개혁에 무슨 힘이 있느냐고 국민이 묻는다. 전 그 물음에 ‘내려놓음’이란 답을 드린다”라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난 10년간 민주당 내 86용퇴론이 늘 용두사미로 끝난 건 ‘기득권화’라는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보여주기식 선거용 레퍼토리에 그쳤기 때문이다. 썩은 부분을 제대로 도려내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싸잡아 ‘다 나가라’고 하는 무책임한 방식이었기 때문에 매번 정치적 이슈로만 소모되고, 결과적으로 쇄신에는 실패했던 것이다.

86그룹도 이번에는 타의에 쫓기듯 밀려나기보다는 당의 중진답게 진정성 있는 쇄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자기들끼리 감싸고 엄호하기 전 우리 사회가 왜 유독 자신들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는지 한번 돌아볼 때다. 감동 없는 쇄신에 거듭 속아줄 유권자는 없다.

김지현 정치부 차장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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