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 “왜 ‘진상’ 취급하나”…정부 대책 성토
[전세사기]
“지금 폭탄이 떨어졌는데, ‘누가 던졌니, 어디에 던졌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어딨나요. 일단 같이 살고 봐야잖아요. 제발 좀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24일 더불어민주당이 여의도 당사에서 마련한 ‘전세사기 피해자 간담회’에서 피해자 하아무개씨가 울먹이며 말했다. 하씨를 비롯해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7명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여야 구분을 넘어 초당적인 대책 마련을 노력해달라고 입을 모았다. 피해자들은 현재의 정부 대책이 보증금 채권매입 방안이 포함되지 않는 등 “알맹이”가 없다며, 정부가 다양한 유형의 피해사례를 구제할 수 있도록 보다 세분화된 제도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판을 깔아준 건 허그”
이날 간담회에서 발언에 나선 하씨는 최근 불거진 전세사기가 초저금리 속 부동산 호황에 올라탄 부동산업계와, 이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한 정부당국 등이 함께 초래한 ‘구조적’ 결과라고 강조했다. 부산에서 상경해 집을 구하던 하씨는 “(공인)중개사 입장에서는 (월세보다) 전세를 살아야지 리베이트를 많이 받을 수 있으니, 자꾸 전세를 권유했다”며 “당시에 초저금리였기 때문에 (공인중개사가) 월세를 왜 사냐, 그 돈으로 10만∼20만원 대출이자 내고 전세를 살라고 하면서, 안 좋은 집 먼저 보여주고 조금 더 좋은 집을 보여주면서 내가 살던 지역에서 점점 멀리 갔다. 거기가 그 사람의 목적물이었다”고 말했다. 하씨는 “이 판을 깔아준 게 허그(HUG·주택도시보증공사 전세보증금 보험)”라며 “(허그를) 나라에서 만들어서 사고가 생겼으면 어느 정도 나라 책임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 매매가와 전세보증금이 같아도 허그에 가입할 수 있어 ‘무자본 갭투자’가 가능했고, 이를 악용한 투기꾼들 탓에 세입자들이 피해를 입었으니 국가가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다른 피해자 문아무개씨 역시, 허그에 가입해 ‘깡통전세’ 피해를 보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이들이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무책임한 대응으로 보증보험 이행을 거절당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문씨는 “공공기관에서 하는 보증보험이니 믿고 가입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그런데 허그에서는 정작 보증보험 이행 시기가 오니 사소한 절차를 빌미로 소극적으로 해석해서, 보증 이행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문씨는 “국민 편이 되어줘야 하는 허그가 민간보험사보다 못한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문턱’ 지나치게 높은 대책들
참석자들은 공통적으로, 정부 대책이 대다수의 피해자들을 구제하기에는 ‘문턱’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24일부터 부부합산 연소득 7천만원 이하, 보증금 3억원 이하의 전세사기 피해자를 상대로 저리 대환대출을 시작했다. 이를 두고 하씨는 “정부는 피해주택 대부분이 이 구간에 몰려있다고 하지만, 그건 허그 가입자 기준”이라며 “보증금 3억원 이상인 분들도 80% 이상이 대출이고, 자기 자본은 2000만∼3000만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시) 은행은 프리랜서고 무직자고 마음껏 대출을 내줬고, 은행과 제휴된 (대출) 모집회사와 감정평가사가 짜고 시세를 부풀렸다. 내가 (보증금이) 3억원 이상인 사람들 탄원인 대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보증금 마련을 위한 대출의) 만기가 곧 다가오는데, 연말이 되면 아비규환일 거다. 사람이 또 죽어야 법이 바뀌냐”며 “정말 앞이 안 보인다”고 했다.
피해자 대표로 참석한 안상미씨는 “그나마 (저리로) 대출을 쓸 수 있게 해준다면서, 우리가 전세로 피해를 입어 전세 제도를 못 믿는 상황에서 (대출을) 전세로만 쓰라는 것 자체가 현실과 괴리가 크다”며 “(전세를) 잘 모르는 분들이 (대책을) 만드는 것 같다는 불안감이 증폭된다. 사망사건이 일어나면서 뭐가 급박하게, 알맹이 없이 흘러가는 것 같다”고 했다. 안씨는 또 “우리가 굉장히 이기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도되는데 그렇지 않다”며 “미분양 아파트 사주고, 비트코인 피해자도 구제해주는 게 세금인데, 왜 우리한테 쓰는 것만 ‘혈세’라고 표현하냐. 왜 서민 구제해주는 건 ‘진상’ 취급하냐”고 비판했다.
“피해 유형 맞춘 해결방법을”
이날 피해자들은 정부가 피해자들의 상이한 피해 유형을 모두 포괄할 수 있게끔 제도 설계를 세분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피해자 권아무개씨는 “(정부가) 피해주택 매입, 우선 매수권 부여 등의 방침을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면서도 “전세 사기 피해 유형에 따라 해결방법도 상이하기 때문에 공공의 보증금 채권매입 등 여러 방안을 제도화하고 피해자들이 이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이재명 대표는 피해자들의 발언을 들은 뒤 “현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세밀하고, 피해 유형도 매우 다양한 것 같아”며 “민주당도 (대책을) 세분화해서 현실적 대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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