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일본에 또 저자세…“100년 전 일로 ‘무릎 꿇으라’ 동의 못 해”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미국 시각 26일)을 앞두고 “100년 전 일을 가지고 (일본에) ‘무조건 무릎 꿇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담화를 연상시키는 발언으로, 과거사에 눈감은 채 한-일 관계 개선을 내세워 ‘미래’만을 강조하는 윤 대통령의 ‘저자세 일방주의’ 대일 인식이 또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미국 국빈방문을 앞두고 <워싱턴 포스트>와 한 인터뷰에서 ‘일본과의 협력을 미루기엔 한국의 안보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이 매체가 24일 보도했다.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지금 유럽에선 참혹한 전쟁을 겪고도 미래를 위해 전쟁 당사국들이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을 꿇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이는 결단이 필요한 것”이라며 “설득에 있어선 저는 충분히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일본 전범기업이 아닌 한국 기업들의 재원을 통해 배상하는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안을 결정한 것이 자신의 “결단”이며, 이에 반발하는 피해자와 비판하는 국민들에게 설득 노력을 다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일본 전범기업들이 배상하라는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무너뜨린 ‘제3자 변제’ 방안으로 일방적으로 일본의 손을 들어줘 ‘굴욕외교’ 비판을 받고 있다.
윤 대통령은 ‘가치동맹’을 내세우며 한-일 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신에 비춰봤을 때 한-일 관계 개선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며 “이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끼리는 과거사 문제든 현안 문제든 소통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미 동맹 강화, 한-일 관계 정상화, 한·미·일 협력 강화를 대외정책의 핵심으로 삼아 일방적인 밀착행보를 이어왔고, 이를 자유민주주의·인권·법치주의 등을 공유하는 ‘가치동맹’으로 부각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1절 기념사에서 과거사와 관련한 요구나 제안 없이, 북핵 위협과 세계적 복합위기 대처를 거론하며 일본을 “협력 파트너”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어 지난달 6일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했고, 윤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도쿄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셔틀외교’ 복원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정상화 등에 합의했다.
일본은 한국에 성의 있는 호응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이날 나온 윤 대통령 발언은 과거를 부정하는 일본에 거듭 면죄부를 준 것이다. 지난 2015년 8월 아베 담화와도 유사하다. 아베 전 총리는 당시 “전쟁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리의 자녀나 손자, 그리고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지게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오는 2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확장억제(핵우산) 강화와 한·미·일 3국 안보 협력 방안이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윤 대통령이 ‘가까워진 한·일’을 과시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자들에게 “수십년간 일본으로부터 침략당해 고통받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결코 해선 안 될 발언”이라며 “대통령의 역사의식이 과연 어떠한지 생각해보게 되는 발언”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에서는 한발 물러섰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불법 침략을 받았기 때문에 다양한 지원을 해주는 것이 맞다”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 것이냐는 우리나라와 교전국 간의 직간접적인 여러 관계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보도된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대규모 민간인 학살 등을 전제로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을 열어뒀던 것보다 신중해진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한-미 동맹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모든 동맹 중 가장 성공한 동맹이고 무엇보다 가치동맹”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부부는 한-미 동맹 70돌을 맞아 성사된 5박7일 동안의 미국 국빈 방문을 위해 이날 출국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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