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조선사의 `문제적 인물` 유자광의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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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광(1439∼1512)은 조선 최초의 사화인 무오사화의 단초를 제공한 인물로 유명하다.
세조 13년 이시애의 난이 터졌을때 유자광은 갑사(甲士)에 불과했다.
저자들은 유자광이 지나치게 권력 지향적이었지만 실무 능력이 뛰어나고 정사에도 관심이 많았던 인물로 평가한다.
유자광을 '간신'으로만 보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놓치는 것이라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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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희·계승범 지음 / 푸른역사 펴냄
유자광(1439∼1512)은 조선 최초의 사화인 무오사화의 단초를 제공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래서 임사홍, 원균 등과 더불어 조선의 손꼽히는 '간신'이 됐다. 1908년 순종 때 복권되기까지 400년 동안 조선의 주류인 사림에 의해 '간신 중의 간신'이란 오명을 받았다.
그러나 저자들이 그려낸 유자광의 진면목은 다르다. 저자들은 유자광이 살아야 했던 시대에 주목했다. 세조 13년 이시애의 난이 터졌을때 유자광은 갑사(甲士)에 불과했다. 당시 남원에 있던 유자광은 호기 넘치는 상소를 올려 난을 신속하고도 과감하게 토벌해야 할 필요성을 논했다. 그는 이시애 토벌에 종군했고, 이를 계기로 세조의 총애를 받아 29세의 나이에 중앙 정치 무대를 밟았다. 이후 두 번에 걸쳐 공신 책봉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첩이 낳은 아들이었다. 유자광은 전 부윤 유규의 얼자(양반과 천민 사이의 자식)였다. 태생적 한계는 분명했다. 특히 유자광이 활동하던 15세기 후반~16세기 초는 서얼 차별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문장 실력에다 무예까지 출중했지만 그는 언제나 '아웃사이더'이자 '이방인'이었다. 저자들은 유자광이 지나치게 권력 지향적이었지만 실무 능력이 뛰어나고 정사에도 관심이 많았던 인물로 평가한다. 그는 경륜 있는 인물이었으나 사림들은 그가 임금의 총애를 받는게 무엇보다 싫었다. 유자광을 '간신'으로만 보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놓치는 것이라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이를 위해 조선의 기득권이 만들어낸 '가짜 뉴스'를 파헤치고 꼼꼼하게 사료 조사를 했다.
책은 '문제적 인간' 유자광에 대한 새 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성리학 기준에서 벗어나 유자광 개인의 삶을 탐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은 고(故) 정두희 서강대 명예교수와 그의 제자인 계승범 서강대 교수가 함께 완성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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