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칼럼] 가습기에 방향·살균·세정제는 금물

2023. 4. 24. 18: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가습기에 넣으면 좋은 향이 나고,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제품이 다시 등장한 모양이다. 끔찍했던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기억을 외면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거두절미하고 밀폐된 실내에서 장시간 사용하는 가습기에는 깨끗한 생수 이외에는 절대 아무것도 넣지 않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가습기에 넣어도 되는 방향제·살균제·세정제는 없다. 안전하다는 광고는 절대 믿지 말아야 한다. 자칫하면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수도 있는 일이다. 가습기와 똑같은 '초음파 디퓨저'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폐는 외부 공기에 들어있는 박테리아(세균)·바이러스·유해물질·먼지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그런데 우리 폐의 면역기능은 생각보다 훨씬 취약하다. 피부와 같은 차단 기능도 없고, 눈물과 같은 배출 기능도 없다. 그래서 호흡으로 들이마시는 공기 중의 유해·오염 물질이 폐에 염증과 엉뚱한 질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실내 공기를 깨끗하게 관리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우리 몸에 폐를 보호하는 기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코털·콧물이 먼지의 유입을 막아준다. 코의 후각(嗅覺) 기능도 사실은 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악취는 공기 중에 건강에 해로운 성분이 들어있다는 뜻이다. 나쁜 냄새를 애써 참고 견디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실제로 화장실에서 황화수소의 악취를 애써 참다가 목숨을 잃어버린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상쾌하고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향'(아로마)이 몸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어설픈 착각이다. 향기도 후각기관을 자극할 수 있는 생리활성물질에 의한 것이다. 그런 향기가 뇌에 작용해서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간접적인 효과를 내기도 한다. 향수와 향기요법(아로마테라피)이 바로 그런 효과를 이용한 것이다.

그렇다고 향기가 반드시 건강에 좋은 것이 아니다. 몇 해 전 폐암으로 사망한 원로 영화배우 신성일 씨의 마지막 회한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일찍 떠난 어머님을 추모하기 위해 무려 17년 동안 매일 아침 작은 방에 마련해놓은 제단에 향을 피웠던 일을 후회한다는 것이었다. 좋은 마음으로 피운 향이 오히려 자신에게 암을 일으키는 원인이 됐을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향기로운 냄새 덕분에 방향족(芳香族)으로 분류되는 벤젠도 인체 발암성이 확인된 1군 발암물질이다. 벤젠을 사용하는 산업 현장에서는 작업장 실내 공기 중의 벤젠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모든 작업자가 방독면을 착용해야만 한다. 누구나 향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고급 향수에 심한 알러지를 나타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방향제의 오남용은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 방향제는 강한 향기로 악취를 느끼지 못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악취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해주는 제품이 아니다. 방향제는 불가피한 경우에 일시적으로만 사용해야 하고, 사용 후에는 반드시 환기를 시켜야 한다. 방향제를 정기적으로 분사시켜주는 자동 스프레이를 사용하는 공간에는 너무 오래 머물지 말아야 한다.

향과 향초는 더욱 경계해야 한다.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가군 발암물질이고, 일산화탄소는 목숨을 앗아가는 맹독성 독극물이다. 화재의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빈 방에 향이나 향초를 피워두는 일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제조사의 잘못된 사용법 때문에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가습기의 물때를 제거하려면 세정·살균제로 닦아낸 후 맑은 물로 헹구고 말려서 쓰는 것이 상식이다. 살균·세정제를 넣고 가습기를 가동하라는 사용법은 그런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다시 등장한 가습기용 아로마 오일의 사용법도 가습기 살균제만큼 위험한 것이다.

분사형 방향제로 신고했더라도 가습 효과를 홍보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 환경부의 인식이 절망적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잘못된 '가습 효과' 때문에 발생한 일이 아니었다. 인체에 해로운 살균·방향·세정 성분을 장기간에 걸쳐 지속·반복적으로 흡입하도록 만드는 제품을 확실하게 규제하는 것이 환경부의 책무다.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