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69시간`에 묻힌 근로 유연화

2023. 4. 2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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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희 산업부 재계팀장

정부가 근로시간 유연성을 확대해 실근로시간을 줄이고자 마련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이 '주 69시간 근무제' 프레임으로 부정적 여론만 키웠다. 결국 고용노동부는 입법예고 기간 마지막날인 지난 17일까지 해법을 찾지 못해 의견 수렴 절차를 이어가기로 했다. 국민이 안심하고 노사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오는 9월 정기국회 때 새로운 개정안을 내겠다고 밝혔지만 그 마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고용부가 지난달 초 발표한 개편안은 '주 52시간제'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연장근로 단위를 '주' 외에 '월·분기·반기·연'으로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이렇게 되면 법정 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연장근로 시간이 12시간에서 29시간으로 늘어난다. 일주일 최대 근로시간이 69시간으로 계산돼 일각에서는 '주 52시간제'가 '주 69시간제'로 바뀌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장시간 노동을 우려한다.

주 69시간은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변경하고 11시간 연속휴식시간제를 도입하면서 주 6일 근무를 전제로 한 계산 결과다. 현재 대부분 사업장이 주 5일 근무를 하고 있어 장시간 근로로 회귀할 가능성은 낮지만, 이미 씌인 프레임은 어떤 설명에도 걸림돌이 된다.

정부는 노동계 반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의견 수렴 없이 개편안을 밀어붙였다. 발표 과정에서 대통령실은 "의견을 수렴해 60시간이 아니라 그 이상이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가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고 해 혼란을 키웠다.

대통령 직속 노사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김문수 위원장은 지난 18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주 69시간제'에 대한 저항이 많아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이 폐기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다만 고용부는 폐기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법정 근로시간이 주 40시간인 점을 강조하며 '주 52시간제'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근로시간 제도가 사실은 '주 40시간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 제도 개편안의 핵심은 주 40시간제를 확실히 안착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차라리 1년 근로시간을 1800시간으로 줄이겠다고 비전을 제시했으면 69시간 논란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은 근로자의 건강보호와 근로시간 효율적 운용이 취지다. 이는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와 '주 69시간제'는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특정 숫자를 해명하고 왜곡된 점을 지적하기 이전에 소통이 우선돼야 한다. 정부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개편 방안을 설명하고, 국민적 공감을 자아내도록 충분히 설득해야 한다.

기업 차원에서 효율성을 고려하면 근로시간 유연화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근로자의 경우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것이 눈치가 보이고, 대체인력도 충분치 않아 실행 가능한 조직은 제한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이정식 장관은 지난달 말 경제5단체 부회장들을 만나 "눈치 보지 않고 휴가·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환경 조성, 퇴근 후 업무 연락 자제 등 기업문화 혁신,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일하는 방식 개선 등을 통해 근로시간을 실질적으로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실제로 제도가 바뀌어도 주 69시간 이상 근로하겠다는 기업은 예외적이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에 대한 기업 의견 조사에 따르면 연장근로 관리 단위가 확대돼도 68시간 이상 근로하겠다는 기업은 3.6%에 불과했다. '52∼56시간 미만'은 40.2%, '56~60시간 미만'은 34.3%, '60∼64시간 미만'은 16.0% 등이었다.

또 연장근로가 확대되면 건강권 보호도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다수의 기업이 건강권 보호 방안으로 '선택가능한 더 다양한 건강권 보호제도 마련'(32.5%)과 '노사자율로 건강권 보호방안 선택'(30.8%)을 꼽았다.

개정안에는 근로자의 건강권과 복지를 확실히 보장하면서 근로시간 유연성을 확대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이 담겨야 할 것이다. 노사 합의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연장근로 한도 확대를 추가 검토하는 방안도 고려할 것을 추천한다.

박은희기자 e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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