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맡긴 세입자 ‘발등’… 공인중개사까지 낀 전세사기 [전세사기 사태 일파만파]

구윤모 2023. 4. 24.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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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10명 형사입건
전세가율 높은 지역 합동 조사
자격증 대여 등 72건 불법 적발
업계 “자정노력 기울여야” 강조
인천 피해자들 긴급주거 주택
10채 중 4채 ‘원룸’… 원성 높아

최근 전국적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급증하는 가운데 공인중개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지탄받고 있다.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공인중개사들이 오히려 건축업자 등과 짜고 범행을 벌여 이들을 믿었던 대학생, 신혼부부 등을 낭떠러지로 떠밀었다. 공인중개사의 일탈행위는 피해자 양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아파트 공동현관문에 피해 사실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는 지난 1~3월 깡통전세 피해 사례를 제보받아 수사를 벌여 전세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 6명, 중개보조원 4명 총 10명을 공인중개사법 위반으로 형사입건했다고 24일 밝혔다. 서울시 민생침해범죄신고센터에 따르면 범행은 주로 시세를 알기 어려운 신축빌라의 가격을 부풀려 전세계약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 과정에서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 등이 깡통전세 위험이 큰 줄 알면서도 성과보수 등을 노리고 불법 중개행위에 가담한 사실이 확인됐다. 전세사기 피해자는 대부분 대학 신입생, 취업준비생 등 부동산 계약 경험이 미숙한 청년층에 집중됐다. 범행수법 또한 갈수록 교묘해져 부동산컨설팅 업자까지 개입한 사례도 확인됐다.

시는 또 25개 자치구와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의 공인중개사무소를 대상으로 합동 조사한 결과 자격증 대여 등 72건의 불법행위를 적발했다. 금지행위 위반, 무자격자 광고 등 4건은 무관용 원칙으로 수사를 의뢰했다. 거래계약서 작성위반, 고용인 미신고,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 위반 등 11건은 업무정지 처분하고 중개대상물 표시광고 위반,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 부적정 등 18건에 대해선 과태료를 부과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부동산에 걸린 빌라 전세, 월세 정보. 연합뉴스
이번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에서도 건축업자와 결탁해 피해자를 현혹한 공인중개사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사기와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공인중개사가 6명이고, 3명은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피의자가 토지를 사들일 때 명의를 빌려주고, 월급과 성과급 등을 받으며 세입자를 끌어모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근저당이 잡힌 집임에도 전세 보증금 반환에는 문제가 없다며 피해자들을 안심시켰고, 문제가 생기면 보증금을 책임지겠다는 내용의 합의서까지 써주며 현혹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중개인은 중개대상물의 상태와 입지, 권리관계 등을 설명할 의무가 있다. 은행 대출 여부 등 보증사고 위험성을 막아야 할 공인중개사가 되레 범행에 가담하면 부동산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이 이를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황규훈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인천지부 부지부장은 “일반인들은 공인중개사라고 하면 전문 자격인이라고 생각하고 신뢰한다”며 “100명의 중개사 중 1명만 부정을 저질러도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1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에서 열린 '국민재산권 보호를 위한 전세사기 근절 결의대회 및 분회장 워크숍'에서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경기남부지부 회원 및 참석자들이 전세사기 근절 결의문을 낭독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업계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정하자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조원균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홍보팀장은 “회원이 많으니 협회에서 자정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아직 법정단체로 승격되지 않아 회원들에 대한 기초적인 조사나 단속 권한조차 없어서 부정행위를 한다는 제보가 들어와도 아무런 제재를 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와 함께 지방자치단체의 부실한 피해자 대책도 도마 위에 올랐다. 대규모 전세사기가 발생한 인천에선 공공기관이 확보한 임시거처 10채 중 4채가 방 한칸짜리 원룸으로 파악돼 피해자들의 원성이 나온다. 인천시 등에 따르면 관내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입주할 수 있는 긴급주거 주택 238호 중 91호(38.2%)는 전용면적 20㎡ 미만 원룸이다. 이보다 큰 면적의 20∼59㎡ 122호(51.2%), 60∼85㎡ 25호(10.5%)로 나타났다.

피해자들이 주거 불안정으로 도움을 원할 땐 기존 집과 면적이 유사한 5곳을 둘러보고 하나를 골라 이사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규모 59㎡ 미만이 전체의 90% 가량을 차지해 현실적으로 선택 범위가 넓지 않다. 식구가 2∼3명이라면 원룸에서 지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추홀구 일대의 대다수 피해 아파트와 빌라는 방 2∼3개 구조로 전해진다.

구윤모·이규희 기자, 인천=강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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