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판결문, 중학교 나오면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써야” [심층기획]

유경민 2023. 4. 2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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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언어가 어려우면 당사자들이 자기 방어 기회를 놓치고 입을 닫게 됩니다."

판결문에 쓰이는 언어는 대표적인 공공언어다.

이 대표는 199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감옥살이를 했을 때 쉬운 판결문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이 대표는 "이들이 할 수 있는 변론은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같은 것뿐이었으니 자기 방어가 안 됐다"며 "대학 졸업한 나도 판결문에 못 읽는 한자가 많아 대법전과 사전을 찾아보며 항소 이유서나 탄원서를 대신 써줬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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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정보 다루는 말은 공공언어
법률 용어 자체를 쉽게 순화해야”

“공공언어가 어려우면 당사자들이 자기 방어 기회를 놓치고 입을 닫게 됩니다.”

지난 18일 만난 이건범(사진)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23년간 ‘쉬운 우리말 쓰기 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 대표는 언어를 ‘인권’의 한 요소라고 말한다. 그는 “말은 의사소통 수단이지만 공적 정보를 다루는 말은 공공언어”라며 “공공언어는 국민의 온갖 권리와 의무, 건강과 생명, 재산권과 행복 추구에 대한 다양한 기회, 그걸 어떻게 분배받을 수 있는 건지 등이 다 표현된다”고 했다. 공공언어가 어려우면 의사소통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국민이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판결문에 쓰이는 언어는 대표적인 공공언어다.

이 대표는 199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감옥살이를 했을 때 쉬운 판결문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그는 2심 재판을 기다리며 혼거방에서 소매치기들과 함께 지냈다. 항소를 제기한 이들 대다수는 1심 판결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대표는 “이들이 할 수 있는 변론은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같은 것뿐이었으니 자기 방어가 안 됐다”며 “대학 졸업한 나도 판결문에 못 읽는 한자가 많아 대법전과 사전을 찾아보며 항소 이유서나 탄원서를 대신 써줬다”고 회상했다.

이 대표는 당시에 비하면 판결문이 훨씬 쉬워졌지만, 판결문을 쉽게 쓰려는 노력이 여전히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판결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해야 법적 권리를 추구하고 처벌이나 피해 구제를 제대로 받을 수 있다”며 “중학교 정도 나온 사람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판결문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법률 용어를 일상 어휘로 바꾸면 혼돈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 ‘쉬운 판결문’에 대한 반대 의견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법조인에게 익숙한 말을 버리는 게 불편한 것일 수 있다”며 “말로 울타리를 쳐놓고 국민이 들어올 수 없게 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다만 그는 판결문이 어려운 이유는 판결문을 쓰는 판사 때문만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법률 용어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판사들이 설명하기에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민법에 등장하는 용어나 문장을 알기 쉽게 바꾸기 위해 2015년과 2019년 두 차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 개정안은 ‘해태(懈怠)’를 ‘게을리한’으로, ‘최고(催告)’는 ‘촉구’로, ‘수취(收取)하는’은 ‘거두어들이는’으로 바꾸는 등 용어를 순화하는 내용이었다. 이 대표는 “민법은 국민 생활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법”이라며 “국회에서도 법률을 쉬운 용어와 말로 바꾸기 위한 장기적 노력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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