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100년前 일로 日이 무조건 무릎 꿇어야 한다는 인식 안돼"
유럽은 전쟁 당사국끼리 미래 위해 협력할 방법 찾아
안보 긴급해 日과 협력 미룰수 없어…설득 위해 최선
"당사국 관계 고려"…우크라 '군사지원 가능성'엔 신중
“유럽은 지난 100년 동안 수차례 전쟁을 겪었음에도 전쟁에 참여했던 국가들이 미래를 위해 협력할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100년 전에 벌어진 일 때문에 일본과의 협력이 무조건 안 된다거나 일본이 무조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24일 공개된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대해 “이 문제는 결단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며 설득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선 한·미·일 3자 간 협력 확대가 이번 방미의 핵심 의제 중 하나라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韓 안보 긴급해 日 협력 필요”
WP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90분간 진행된 인터뷰의 상당 부분을 대일 외교 필요성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윤 대통령은 “일본과의 협력을 더 이상 미루기에는 한국의 안보 상황이 굉장히 긴급했다”면서도 “이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절대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나온 1998년 김 전 대통령이 일본 의회 연설에서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6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정보공유를 영어권 정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 수준으로 격상하고, 일본이 포함되는 한·미·일 정보공유동맹을 추진하는 방안을 논의할 전망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15일 “한·미 정보동맹에 어떤 파트너를 추가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도 앞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일본을 포함할 가능성도 큰데, 단계적으로 사안에 따라서 검토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양국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핵 공격 시 미국의 핵 보복 대응 등 구체적인 확장억제 방안을 공동문서에 명문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핵 위협이 날로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기존에 미국이 밝혀온 확장억제 의지 표명만으로는 한국의 안보 불안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오는 30일까지 5박7일간 이어질 미국 방문에 대해 “한·미 동맹의 역사적 의미와 성과의 중요성을 양국 국민이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바이든 대통령 부부와 함께 6·25전쟁 참전용사 기념비를 참배할 계획이다.
우크라 무기 지원 한발 물러서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에 대해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불법 침공을 당한 상태이고 다양한 범위의 지원을 하는 것이 적절하다”면서도 “언제 무엇을 지원할 것인가는 우리와 전쟁 당사국 간 다양한 직·간접적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19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는 “만약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 학살이라든지,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인도적 지원이나 재정적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단서를 달았지만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것이라 파장이 작지 않았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하겠다며 다소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WP는 윤 대통령이 과거 검사 시절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수사를 하면서 외압에 맞서다 좌천되는 등 ‘강골 검사’의 모습으로 주목받아 대권까지 잡았다고 소개했다. 윤 대통령은 당시 상황에 대해 “정부 기관들이 조금이라도 선거에 개입했고 그로 인해 국민의 신뢰를 저해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아마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했다.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해 윤 대통령은 “나의 가장 행복한 기억은 아내를 만나 50대 늦은 나이에라도 결혼한 것”이라고 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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