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등 이해충돌 조율할 한미 경제안보 상설협의체 만들어야"
한미 동맹간 경제안보블록화 속
실무·장관급 소통창구 신설 필요
산업·외교 2+2협의체도 추진을
중장기 포괄적인 외교정책 위해
美의회와도 협력 토대 구축해야
한미 정상이 26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정상회담을 열기로 한 가운데 양국이 전략산업 분야를 비롯한 경제안보 분야에서 다층적 상설 협의체를 신설해야 한다는 제언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실무급부터 장차관급 고위급 채널에 이르기까지 양국의 당국자들에 상시적·정례적으로 전략산업 분야의 이해관계를 선제적으로 조정하고 세계 무대에서 함께 윈윈할 수 있도록 하는 소통 창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소재 및 에너지(배터리 포함), 디지털(반도체 포함)뿐 아니라 바이오·방위산업·우주산업 분야의 경우 단순한 산업적 의미를 넘어선 안보 차원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경제와 안보적 차원의 담론을 동시에 다루는 양국 간 채널이 복합적으로 조성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는 미국이 최근 중국의 불공정 무역과 군사적 팽창주의에 대응해 국제무역과 투자·안보 분야에서 주요 동맹 및 우방을 중심으로 경제안보 블록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제언이다. 미국과 안보적 이해를 함께하는 한국 정부로서는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며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등 다양한 상설 협의체를 가동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주요 첨단산업 분야 등에서 미국과 이해 충돌을 겪는 등 딜레마를 안고 있다. 자국우선주의를 통해 중국에 맞서려는 미국의 전략과 자유무역 확대를 통한 수출 및 투자 확대로 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하는 한국의 전략적 이해가 엇갈리는 것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방지법(IRA)과 반도체지원법 등이 최근 양국 사이 주요 현안으로 부상한 것이 대표적이다.이 같은 이슈를 계기로 양국 간 상설 협의체 확충에 나서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 경제안보 분야 이해 충돌 조정 필요=외교부 1·2차관을 지낸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2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미가 경제안보 분야의 상설 고위 협의체를 만든다면 경제안보를 둘러싼 양국 간 입장 또는 이해 차를 조정하는 기관으로서 상당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석영 전 경제통상대사도 한미 간 고위급 협의체가 설립될 경우 유용할 것임을 전제하면서 “양국 간 협의 채널은 점점 더 확대되고 포괄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최 전 대사는 “기업 입장에서는 과거 다자 규범만 따르면 됐는데 이제는 정부 간 협력 체제에 직접 영향을 받는 상황”이라면서 “이런 양자 조치를 기반한 정부 협력이 강화된다면 (협의체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최 전 대사는 지난해 5월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인공지능(AI), 바이오, 에너지, 우주 협력 등이 총망라됐던 점을 언급하고 “이런 분야에서 한미 협력은 점차 증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양국이 실무진 수준부터 장차관급까지 수직적으로 다양한 협의체를 운영해야 할 뿐 아니라 산업·외교(2+2) 협의체와 같은 형식으로 연례적 소통을 실시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더해 양국 당국에 제언을 줄 일종의 자문단으로서 양국 민간 전문가와 산업 단체 등이 함께하는 교류 조직도 상설화해 통상 갈등이 한미 동맹 균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도 있다. 최 전 대사는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윤석열 대통령 방미에 유수 기업 회장들이 따라가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이제 민관 협의가 보다 더 활성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중장기 외교정책 추진 위해 美 의회와도 소통해야=단기적으로는 정부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정책을 우회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신 전 대사는 “한국은 자유무역국가로서 글로벌 무역 체제와 공급망을 유지해야 생존할 수 있는 국가”라면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동맹에 대한 어떤 예외를 인정받는, 중요한 살을 붙이는 작업이 핵심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인도태평양 정책을 둘러싼 가치 동맹 차원에서 양국 사이 이뤄질 구체적인 협력을 양국이 논의할 것으로 본다”고 부연했다.
한미 간 고위급 협의체를 창설해야 할 뿐 아니라 정부가 미국 의회와의 소통에도 힘써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상회담이다 보니 바이든 행정부와의 협의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결국 안보든 경제든 한미 동맹과 한미 협력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리려면 미국 의회와 협력할 토대를 구축해 중장기적인 관계를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낮은 단계의 동맹을 넘어 입법부를 끼고 하는 중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외교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도 4년마다 대선을 치르며 정권이 바뀔 가능성이 있는 만큼 중장기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특정 행정부는 물론 의회와의 소통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밖에 정부가 미중 갈등의 틀 내에서 한미 관계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미는 양국만 놓고 볼 수 없는 관계”라면서 “미국과 협력할 때 중국과 관련된 리스크(위험 요소)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얻어낼 것이 더 많을 수도 있고 피해를 더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연구위원은 “한미가 협력을 키울 때 중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가 계산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박경은 기자 euny@sedaily.com이승배 기자 bae@sedaily.com주재현 기자 joojh@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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