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시장 中에 팔지말라니 … 삼성·SK, 도넘은 美압박에 속앓이
◆ 위기의 K반도체 ◆
미국 마이크론에 대한 중국 당국의 제재가 현실화되면 그 공백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채우지 않도록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에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는 중국 당국이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 금지를 가정한 것이지만, 미국 정부가 반도체 수출 자체를 통제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기에 파장이 크다는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과도하며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4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가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한국의 메모리반도체 수출 자체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은 미국의 대중 압박 속에서 주로 장비와 투자 측면에서 제한을 받아왔다. 미국 정부가 지난해 10월 시행한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조치는 반도체 장비의 중국 반입에 제한을 둔다. 미국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을 통해 생산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중국에 10년간 투자를 제한한다는 가드레일(안전망) 조항 역시 기업들의 중국 내 생산시설 투자와 연관됐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인공지능(AI)과 슈퍼 컴퓨터용 최첨단 시스템반도체의 대중 수출을 금지하며 엔비디아와 AMD 등 자국 기업 일부 제품의 수출을 제한했지만, 한국 기업에는 특별한 해당 사항이 없었다.
이에 미국 정부가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조치에 일본·네덜란드 등 동맹국을 합류시킨 것처럼, 한국 정부와 기업도 미국의 정책에 보조를 맞춰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분의 1을 넘는다. 최악의 경우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놓칠 수 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물론 한국과 미국 양국 정부 역시 FT 보도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가 어떤 후속 조치를 요구하고 있는지도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미국 정부의 이 같은 요구가 어떤 실효적 결과를 얻게 될지에 대해 제기되는 의문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메모리반도체는 시스템반도체와 달리 규격화된 제품이 생산되는 만큼, 반도체가 국경을 넘는 것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대량 생산된 뒤 다양한 유통망을 거치는 메모리반도체의 특성상 다른 국가를 우회해 중국에 반입되는 사례까지 막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지 않도록 기업들에 주문하는 것은 더 어려운 부분이다. 우선은 마이크론의 공백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파악할 방법도 마땅하지 않다. 중국 내 시장 점유율에 변동이 없도록 유지하거나 판매량의 절대 수준에 제한을 두는 방법이 있을 수는 있지만 시장 경제의 기본 방향과도 배치된다.
무엇보다 이 같은 통제는 애플·테슬라 등 중국 내에 생산기지를 둔 미국 기업의 반도체 수급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미국 입장에서는 마이크론을 살리려다 다른 기업에 타격을 입히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결과적으로 시장이 왜곡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며 "미국이 중국에 대해 신호를 보내는 의미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FT 보도에 따르면 이 사안에 정통한 한 인사는 중국이 마이크론을 미국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지렛대로 쓸 수 없도록 하겠다는 차원에서 이 같은 요청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마이크론에 대한 안보 심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 3기를 시작한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지난달 31일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핵심 데이터, 기초 설비 및 공급망의 안전과 잠재적인 사이버 보안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며 안보 심사에 들어갔다. 중국 당국이 조사 결과 마이크론 반도체의 중국 내 판매를 금지할 경우 마이크론 입장에서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마이크론의 전체 매출 중 중국 비중은 11%에 해당한다.
메모리반도체 가운데 D램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3개 기업이 세계시장의 95%를 차지하고 있고, 기술적으로도 마이크론을 대체할 수 있다. 중국 측이 마이크론 제품의 중국 내 판매를 금지한다고 해도 중국 입장에서는 큰 영향이 없는 셈이다. 중국이 거대한 시장을 무기로 미국의 대중 반도체 압박에 맞대응하려 한다는 부분이 미국 정부가 가장 주시하는 지점으로 보인다. 자국의 반도체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 기업이자 세계 3위 메모리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이 경쟁력을 잃도록 놔둘 수도 없는 상황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요구 수준이 더 높아지면 한국 기업 처지에서는 타격이 불가피하고 다른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안 좋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승진 기자 / 이새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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